반도체·AI 기술戰 격화에도
정치권 위기감은 안 느껴져
절박한 반도체법 제쳐두고
2조원 지역화폐 추경 압박
정책순위 진지한 고민 필요
![]() |
권 업 객원논설위원 |
작년 12월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다음 날 국회에서 계엄해제 결의안이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되고, 열흘 뒤인 12월1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었다. 이어진 국정공백 사태는 사실상 2023년 1월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 출석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정부의 행정기능을 마비시키는 고위직들에 대한 줄 탄핵과 정책 실행의 아킬레스건을 잘라버리는 예산 삭감으로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탄핵 정국은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허덕이던 내수를 더욱 악화시키면서, 모건 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올해 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1.7%, 심지어 1.3% 성장에 그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작년 소비는 2.2% 감소하며 3년 연속 뒷걸음질했다. 이는 1995년 이래 최장기간 마이너스 행진이다. 고물가·고금리로 실질소득이 줄어든 데다 임금 역시 감소했기 때문이다. 장기간 불황에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유통업계 역시 직격탄을 맞고 사상 최대의 폐업사태를 낳았다. 올해 2월 소상공인들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경기전망지수(BSI)는 69.3(100미만이면 경기악화 전망)으로 전월 대비 6.2포인트(p) 하락했다. 지역별로는 세종(-25p)과 대구(-23.9p), 서울(-15.4p)을 포함한 전국 모든 지역에서 BSI가 하락했다. 지난해 그나마 어려운 경제를 이끌었던 수출이 트럼프발 관세전쟁 여파에 한풀 꺾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정 컨트롤 타워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한국의 현재와 미래 대표적 먹거리 산업인 반도체와 AI 산업에서 미·중 기술전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반면, 우리 정치권의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작년 사상최대를 기록한 수출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반도체 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특별법의 최대 쟁점인 주 52시간제 때문에 발목이 잡힌 우리 기업들을 보면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알 수가 없다. 수출 경쟁국인 중국은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9·9·6 체제'를 가동 중이고, TSMC의 대만은 연구개발자들이 24시간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듯 보인다. 최근 중국이 내놓은 저비용·고성능 AI, 딥시크 쇼크도 AI 연구인력에 대한 근로 예외 조항 필요성에 기름을 부었다. 반도체와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핵심 인프라인 전력망 확충도 시급한 문제다. 관련 기업들이 절박하게 요청하는 국가기간전력망 확충법 처리를 서둘러야 하지만 탄핵정국에서 아예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경제 활성화 대책으로 35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내놓고, 정부도 필요한 추경의 국회 통과를 빌미로 정부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 가운데 내수 진작 방안으로 최소 2조원 규모의 지역화폐가 포함됐다. 예산의 조기 집행을 우선시하는 정부의 입장을 고려할 때 행정부의 예산편성권(헌법 제 54조) 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지역화폐로 재난기본소득을 지원한 1조5천억 원은 현재 고스란히 경기도의 빚으로 남아 2029년까지 매년 3천100억원씩 도민세금으로 갚는 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우리 경제를 더이상 주저앉힐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정책의 우선순위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권 업 객원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