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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3월은 가장 잔인한 달?

2025-03-03
[월요칼럼] 3월은 가장 잔인한 달?
허석윤 논설위원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T.S. 엘리엇은 그의 대표작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영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패러디한 구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초서는 4월을 만물이 생동하는 '희망의 달'로만 묘사했지만 엘리엇은 그 이면의 아픔을 그렸다. 즉, 4월로 상징되는 봄의 생명력이 되레 인간 내면의 슬픔과 상실감을 일깨운다는 것. 엘리엇의 '잔인한 4월'은 1차 세계대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유럽의 정신적 황폐화를 뜻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엘리엇은 4월을 봄의 시작으로 삼았다. '황무지'가 발표됐던 100년 전 유럽에선 그 때가 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3월부터가 사실상 봄이다. 엘리엇의 잔인한 4월이 이제는 3월로 재해석돼야 할 듯하다.

엘리엇이 말한 뜻과는 무관하게 우리나라에선 말 그대로 잔인한 봄이 펼쳐질 수도 있다. 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지속되는 혼란스러운 정국 상황이 3월에 정점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있다. 3월은 두 사람의 운명뿐 아니라 나라의 앞날을 좌우하는 역사적인 달로 기록될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2인이 나란히 사법부만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유례가 없는 국가적 불행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가 이변이 없으면 이달 중순쯤 나올 전망이다. 탄핵 인용 여부는 오로지 헌법재판소 몫이다. 정치에 목숨 건 사람이 아니라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동안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불거진 핵심 쟁점을 짚어볼 필요는 있다. 윤 대통령은 헌재에서의 변론 내내 비상 계엄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망국적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한 대국민 호소였다는 것. 거대 야당의 패악질(탄핵 남발과 예산 삭감 폭거,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박탈, 간첩 사건 방치 등)과 반국가세력의 준동, 부정 선거 의혹을 망국적 위기 사례로 들었다. 그리고 계엄이 법률에 따른 정당한 절차였고 국회의원 체포 등 국헌 문란 행위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윤 대통령 주장에 진실과 거짓이 섞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거대 야당의 횡포가 도를 넘었다고 해도 계엄 명분이 되기는 어렵다. 계엄의 숨겨진 트리거가 따로 있을 것이란 의심이 보다 합리적이다. 과거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격노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계엄 이후에는 더 분노했어야 옳지 않을까. 진정 구국의 일념으로 결단을 내렸다면 이 상황이 얼마나 화가 나겠나.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윤 대통령이 끝까지 헌재 결정 수용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꺼림직하다. 행여 자신의 지지세력을 의식해서라면 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오는 26일 예정된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에 정치 생명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또 유죄를 받으면 대권 주자로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물론 이 대표는 대법원 상고로 시간을 벌어 5~6월 조기 대선을 치르려고 하겠지만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尹과 李가 3월을 어떻게 넘길지 알 수 없다. 둘 다, 아니면 둘 중 한 명이 쓰러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 결과가 어떻든 국민들에게는 잔인한 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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