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청송 이어 예천-영양 향해 세력 넓혀 나갈 듯
27일 비 소식 있지만 강수량 적어 진화 ‘미지수’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나흘 만에 안동 일직면 야산까지 덮쳤다. 25일 오후 10㎞가량 떨어진 안동시청 옥상에서 바라본 일직면 야산의 불길은 당북동 자이 아파트를 삼킬 듯한 기세로 타오르고 있다. 피재윤기자
의성 산불이 경북 북부를 집어삼키고 있다. 몸집을 한껏 부풀린 화마는 강풍을 타고 안동·청송·영양·영덕까지 세력을 넓혔다. 따뜻하고 건조한 대기에 강한 바람이 불면서 불길은 북진과 북동진을 거듭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안동시 전역에 대피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27일 비 소식이 있지만 강수량이 적어 산불의 장기화가 우려된다.

25일 산림청 중앙사고수습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의성 안평면 괴산리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은 나흘 만에 안동시 일직면·풍천면, 청송군 파천면·안덕면·청송읍·진보면, 영양군 석보면, 영덕군 지품면 등지로 초고속 확산했다. 오후 들어 남남서풍이 불면서 불길은 북동진을 거듭하고 있다. 예천마저 뚫리면 경북 북부권이 초토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오후 7시 현재 의성 산불 진화율은 68% 수준이다. 오전 7시(55%) 이후 12시간 동안 13%포인트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 전체 화선 길이는 279㎞에 달한다. 이 가운데 192㎞는 진화가 완료됐고, 나머지 87㎞에 대한 진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산불 영향구역은 1만5천185㏊(축구장 2만1천268개)로 추정된다. 피해 규모가 1만㏊가 넘는 역대급 재난 산불이다. 당국은 이날에만 헬기 77대와 인력 3천708명을 투입했지만 불길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순간 풍속이 초속 10∼20m에 달하는 강한 바람이 불면서 '도깨비불'에도 비유되는 비화(飛火) 현상이 당국의 애를 끓이고 있는 것. 비화는 산불 불기둥으로 인해 상승한 불똥이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현상이다. 나무 상단부로 불이 번지는 '수관화' 현상과 열기에 의해 공기를 빨아들이는'열기둥' 현상 후에 비화가 발생한다. 의성 산불현장에선 불티가 10초 내에 1㎞ 이상 날아가는 게 확인됐고, 상승 기류가 더해지면 2㎞ 이상 날아갈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후 5시 이후부터는 바람이 초속 25m 이상으로 더욱 거세지면서 헬기 가동이 중단됐고, 진화 인력도 산에서 내려와 주요시설을 보호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았다. 하회리 마을주민에게는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천년 고찰인 의성 고운사는 이미 화마에 휩쓸렸고 만휴정·용담사·묵계서원 등 역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생태계 보고인 주왕산국립공원에도 산불이 옮아 붙었다. 철도·도로 통제 구간과 이재민 규모는 갈수록 늘어나는 중이다. 의성·안동·청송에 이어 예천·영양까지 주민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문제는 여전히 큰 불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는 27일 새벽 내릴 것으로 예보됐지만, 예상 강수량(5㎜)이 적어 진화 작업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27일 비가 조금이라도 내려주면 대기 중 습도가 올라가 진화 작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이번 산불 진화의 관건은 역시 바람이다. 바람이 잦아들지 않으면 장기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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