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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공포정치

2025-03-31
[월요칼럼] 공포정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은 공포다. 물론 성선설(性善說) 주장처럼 긍정적인 감정도 있지만 공포감에 압도당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공포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공포는 인류가 원시시대 때부터 장착해온 자기보호 본능이다. 무시무시한 천적을 만나면 맞서 싸우기보다 겁을 집어먹고 줄행랑을 치는 게 상책이었다. 어쩌면 그게 초기 인류의 생존 비결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인간 내면에 각인된 공포의 역기능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외부의 적과 무관한 심리적 공포를 쌓아 인간 스스로가 위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는 "공포의 본질은 죽음에 대한 자아(ego)의 두려움이기에 인간이 공포에서 벗어나는 건 지극히 어렵다"고 했다. 톨레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 우울, 분노, 혐오, 죄책감 등을 그 증거로 들었다. 이 모든 게 공포에서 파생됐다는 것. 다시 말해 공포가 약한 강도로 변형돼 표출되는 게 인간의 부정적 감정인 셈이다.

지구상에서 인류의 천적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도 현대인의 공포가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커져 간다. 인간 자체가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인 탓이다. 공포사회의 중심에는 정치가 있다.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건 정치의 대표적인 역기능이다. 하지만 공포가 권력 유지에 유용한 수단인 건 사실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수많은 독재자들이 대중 통제를 위해 집단적인 공포 분위기를 연출했다. 폭력과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이른바 '공포정치'다. 프랑스 대혁명 때 로베스피에르가 주도한 무자비한 정적 제거가 공포정치의 연원으로 꼽힌다. 당시 로베스피에르는 약 4만명을 단두대로 처형했다. 그 역시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기 전까지 프랑스 국민은 혁명이라는 이름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공포정치 명맥은 이어졌다. 되레 국가적 폭력 대상이 더 넓어지고 수법이 악랄해지기도 했다. 히틀러, 스탈린 같은 빌런들이 저질렀던 짓을 떠올려보면 된다. 물론 지금도 공포정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중에서 북한이 가장 살벌하다. 알다시피 툭 하면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다. 공포의 일상화다.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이 가능했던 비결도 별 게 없었다. 주민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뼛속 깊이 공포를 각인시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물론 북한식 공포정치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과거 독재정권이 자행한 공포정치의 흑역사가 있다. 더구나 민주화 이후 사라진 것으로 믿었던 공포정치의 망령이 다시 어른거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감행한 비상계엄은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계엄이 해제된 건 다행이지만 트라우마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일상화된 공포도 여전하다. 계엄과 탄핵 정국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탓이다. 3월 안에 결판날 것이라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이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 오리무중이다. 탄핵 찬반 진영 간 목숨 건 대결에 마치 나라가 둘로 쪼개질 듯하다. 이에 더해 이재명 대표의 끊임 없는 사법리스크도 사회 혼란과 갈등을 극도로 부추긴다.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 2인이 국민적 공포의 진원지인 셈이다. 정치든 뭐든 불확실성이 가장 문제다. 두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기 전까지 공포와 분노의 정치가 극성을 부릴 게 뻔하다. 답답한 노릇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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