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학폭 심의 1천79건…신체·언어·사이버 폭력 순
사건 인과보다 감정싸움…학부모 법적대응이 문제 키워
학교 측 중재 역할 한계…시교육청 갈등 조정단 운영 중
최근 학생 간 단순 갈등이 학폭으로 변질되고 있어 당사자와 학부모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학교폭력(이하 학폭)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늘 위협이 되는 요소다. 학생에 직접적인 위해가 될 수 있고, 학급 전체로는 어두운 학업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최근엔 학생 간 단순 갈등이 학폭으로 변질되고 있어 당사자와 학부모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 사소한 갈등도 법적 심의를 받는 구조로 바뀌면서 교내 원만한 교육적 해결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2일 대구시교육청에 확인 결과, 지난해 대구지역 학교에서 열린 학폭심의 건수는 1천79건이다. 최근 3년을 기준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2022년 863건이던 학폭심의 건수는 2023년 923건으로 늘었다. 지난해는 1천건을 넘어섰다.
지역 초·중·고교별로 보면 초등학교 학폭심의 건수는 297건으로 전년 대비 48건(22.4%)이 늘었다. 중학교는 66건이 늘어난 577건, 고교는 200건으로 54건이 증가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신체 폭력(31.2%) 비중이 가장 컸다. 이어 언어폭력(30.9%), 사이버폭력(11%), 성폭력(9.1%), 금품 갈취(5.9%) 순이었다.
다만, 대구는 다른 시·도와 비교하면 최저 수준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학생피해 응답률은 0.9%로, 전국 평균(2.1%)에 비해 낮았다. 세부적으로 초등학생 1.7%(전국 평균 4.2%), 중학교 0.8%(1.6%), 고교 0.2%(0.5%)로 확인됐다. 모두 전국 평균에 절반 수준이다.
응답률은 낮지만, 실제 대구지역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폭심의 건수는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대구 교육계는 지금의 학폭이 흔히들 떠올릴 수 있는 주먹다짐보다는 학생 간 작은 갈등에서 비롯돼 법적 대응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소한 갈등, 심의로 가는 이유
최근 가벼운 갈등이 학폭 신고로 이어지는 사례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교육학폭 신고 사례를 보면 '지나다가 어깨를 부딪쳤다', '친구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 '특정 신체 부위를 놀려 감정이 상했다' 등이 학폭 원인의 대부분이라는 게 시교육청의 설명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폭 발생 장소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비중이 72.1%로, 학교 밖 27.9%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안에선 교실 안이 29.8%로 가장 많았고, 이어 복도(15.2%), 운동장 및 체육관 9.5% 등의 순이었다. 학교 밖에서는 사이버 공간 6.8%, 놀이터 및 공원 5.5%, 학원 및 주변 4.2%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실은 학생들이 늘 모여있고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어서 갈등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는 장소로 분석되고 있다.
학생은 사소한 문제나 본인의 감정 기복으로 갈등을 만든다. 작게는 말싸움에서 크게는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학교와 양측 학부모가 사안을 인지하면 학교 내부 확인에 이어 교육지원청의 학폭심의를 통해 최종적인 결과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법적 처분을 원하는 양측 학부모의 의지는 작은 갈등에 불을 지핀다.
초등생 자녀를 둔 주현영(45·서구 내당동)씨는 "사소한 문제로 학폭심의까지 가는 주변 사례를 많이 봤다. 특히 학부모가 재발 방지를 위해 강하게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심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조사에 여러 번 응해야 해 피해 및 가해 학생이 도두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학폭 사안의 주체인 자녀가 갈등으로 상처를 받고, 학교생활이 힘들어질까 봐 걱정하는 학부모의 심정도 헤아릴 수 있다.
학부모 이희정(37·달서구 감삼동)씨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학폭 사례를 보면 가해 학생의 작은 실수였지만, 피해 학생 측에서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가해 학부모 입장에선 '우리 애가 잘못은 했으나, 죽을죄를 지었나'라는 생각에, 자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맞대응하면서 사안이 커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녀의 보호와 피해를 막기 위해 시작된 분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맞고발을 하면서 피해자·가해자는 없어진다"고 말했다.
학교 측도 사건의 인과관계보다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학폭 문제에 중재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교사가 중재 역할을 하게 되면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학부모가 본인의 자녀에 조금만 불리한 정황이 나타나면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면서 교사에 책임을 지우는 사례는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큰 학폭 사례가 발생하면서 규정이 만들어졌지만, 이마저도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 해법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다.
10년 경력의 대구 수성구지역 한 중학교 교사는 "정말 작은 문제로 학폭심의위원회까지 열리는 경우가 많다. 교사 선에서 개입해 일단락 짓는 것은 자칫 형평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조심스럽다"며 "왕따, 집단 폭행 등 악의적이고 큰 사안이 아니라면 학생들이 싸운 이후 화해하는 힘도 길러야 하지만 쉽지 않다. 학교 자체적으로 계도가 가능한 사안도 많지만, 학부모의 강한 의지로 심의까지 가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달서구의 초등학교 교사는 "학년이 어릴수록 학부모가 자녀의 학교생활에 관심이 높다. 학부모는 자녀의 작은 행위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학폭 절차를 밟게 되면 점차 학부모 간 자존심 싸움이 되면서 갑론을박의 핵심은 흐려질 가능성이 있고, 그 사이 싸웠던 학생들은 다시 화해하고 놀이터에서 같이 놀고 있는 황당한 경우도 더러 있다"고 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갈등 해결 역량 길러야
시교육청은 올해 갈등조정지원단을 신설·운영해 학폭에 대한 대응 체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교사의 행정 부담을 줄이면서 '교육적 해결'과 '학생 회복'에 집중할 계획이다.
갈등조정지원단은 올해 남부교육지원청 관할구역 내 중학교(34개교)와 고교(30개교)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다. 갈등조정지원단은 장학사, 일선 학교 생활부장, 상담교사 등으로 구성된다. 학폭이 발생하면 갈등이 유발된 원인을 찾아 당사자 간 이른바 '신사협정'을 체결하도록 지원한다. 갈등조정지원단은 학폭심의 절차까지 가기 전에 학생 간 마찰을 조기에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시교육청 생활인성교육과 측은 "예전에는 친구끼리 싸우더라도 이후에 화해하고 같이 뛰어노는 문화와 분위기가 자연스러웠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갈등 후 화해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아이들에게 화해하는 방법이나 표현도 하나씩 알려줘야 하는 게 현실이다. 앞으로 전문가로 구성된 갈등조정지원단의 역할은 점차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시교육청은 앞서 2017년부터 운영하던 '관계회복지원단'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하고, 갈등조정지원단은 중·고교를 대상으로 관리한다.
시교육청은 갈등조정지원단 운영 이후 3월 한 달간 총 4건의 신청이 있었고 지원단을 통해 학생 갈등을 해결했다고 밝혔다. 짧은 기간 운영했지만, 학교들이 지원단에 대한 관심이 많아 앞으로 활동 범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2027년까지 대구 전체로 지원단을 확대해 학생들 간 갈등이 큰 사안으로 번지는 것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실효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학폭 방지 대책도 점차 확산하고 있다. 교육부가 2023년 '학폭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이 중에서도 학폭 가해 학생의 이력 정도에 따라 대입에 반영해 감정 및 부적격 처리하는 제도다. 학폭으로 조치 사항 징계를 받으면 유형에 따라 대학이 차등 감점 처리하는 방식이다. 전학 및 퇴학의 경우 부적격 처리돼 점수와 상관없이 불합격될 수 있다. 고교 3년 동안 기록된 학폭 이력이 대상이다. 서울대를 비롯해 수도권 주요 대학들이 도입했고, 2026학년도부터는 대구권을 포함한 전국 모든 대학이 의무적으로 반영한다.
대구시교육청 이해연 생활인성교육과장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학폭법) 시행되면서 사소한 갈등이나 다툼이 생겨도 바로 학폭 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 간 대화와 소통 역량을 길러주겠다는 방향성을 갖고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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