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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대구에는 진심’이었던 尹…탄핵으로 불명예 마무리

2025-04-04 16:48
[대통령 탄핵] ‘대구에는 진심’이었던 尹…탄핵으로 불명예 마무리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 선고를 했다. 탄핵 소추 111일, 변론 종결 38일 만이다. 사진은 지난해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 뒤 퇴장하는 윤 전 대통령. 연합뉴스

검찰 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 여정은 4년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에 종료됐다.

윤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추락도 한 순간이었다. 첫 검사 출신이자 서울 출생 대통령,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은 0선 대통령이라는 '최초'의 기록을 남겼지만 이는 동시에 국민들의 '정치실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현직 대통령으로서 파면당하면서 한국의 정치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다.

文정부 검찰 총장에서 보수 정당 후보로 당선

윤 전 대통령은 9수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1994년 대구지검에서 첫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의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었다. 수사팀장으로서 그해 10월 서울 고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윗선의 부당한 수사 지휘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때 남긴 말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장 '항명' 파동으로 징계받고 한직을 돌았다.

그러던 중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을 맡으며 복귀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의 탄핵까지 이어져 2017년 5월 조기대선의 문을 연 장본인이 됐다. 다만 윤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박 전 ]대통령의 대구 사저를 찾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도 초청하는 등 여러 차례 회동을 통해 관계 회복을 모색했다.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 개국 공신 중 한명이었던 윤 전 대통령은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윤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중용했다. 이후 2년여가 지난 후에는 검찰총장으로 발탁돼 정점을 찍었다.

다만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취임 두 달여 만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일가를 수사했다. 조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 씨는 구속기소 됐고, 조 전 장관도 결국 지난해 12월 딸의 입시 비리로 수감돼 의원직까지 잃었다. 윤 전 대통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까지 파고들었다. 조 전 장관에 이어 2020년 1월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추미애 의원은 그런 윤 전 대통령을 막아서려 했다.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고, 감찰을 통해 정직까지 내린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의 갈등이 지속될 수록 윤 전 대통령 인기는 올랐고, 문재인 정부는 강한 역풍을 맞아야 했다.

2021년 윤 전 대통령은 결국 검찰을 떠났고, 이후 21년 6월29일 정치 입문선언을 했다. 이후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경선을 거쳐 2021년 11월 대선 후보로 당선됐다. 탄탄한 지역 기반이나 당내 강력한 우군이 없던 윤 전 대통령은 유세를 거듭하며 지지세를 끌어올렸다. 이때 등장한 어퍼컷 세리모니가 지지층에는 강력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외연 확장이 필요했던 윤 전 대통령은 사전 투표 직전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단일화를 성사하며 정권교체를 달성했다.

[대통령 탄핵] ‘대구에는 진심’이었던 尹…탄핵으로 불명예 마무리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 봉황기가 내려져 있다. 연합뉴스

불안한 '용산 시대' 김여사 리스크도 극복 못해

윤 전 대통령은 청와대 대신 국방부 자리로 대통령실을 옮겨 '용산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이후 관저 입지 선정 과정에서 무속인 개입설을 포함한 숱한 의혹의 불씨가 됐다.

집권 후의 문제는 늘 불안했던 '당정 관계'로 요약된다. 이준석 당시 대표를 비롯해 지속해서 당정 관계가 삐걱거리자 '정치 초보'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당은 윤 대통령 집권 내내 대표가 대뀌고 '비상대책위'가 지속되는 불안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이는 지난해 4월 여당의 총선 대패로 이어졌고 사실상 권력을 야권에 빼앗긴 셈이 됐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각종 특검법과 당시 여권과 상충하는 법률안으로 휘몰아쳤고, 윤 전 대통령은 그때마다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막아섰다. 취임 후 무려 25건의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45건 이후 최대일 만큼 여야 협치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부인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까지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여권에서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이나 사과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됐지만, 윤 전 대통령은 완고했다. 잇따른 기자회견에서도 사과는 있었지만 이후 별다른 후속 조치는 없었고 '명태균씨 의혹' 등으로 사태는 더욱 커져만 갔다.

갈등은 지난해 12월 3일 감사원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로 정점을 향해갔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로 응수하며 결과적으로 자충수를 뒀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1월 15일 체포영장이 집행됐다. 국가 원수의 고유 통치 권한으로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방어벽을 쳤으나 계엄의 후폭풍은 이를 넘어섰다.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됐던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구치소에 수감된 채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계엄은 야당의 입법 폭거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항변했으나, 결국 파면을 막지는 못했다.

[대통령 탄핵] ‘대구에는 진심’이었던 尹…탄핵으로 불명예 마무리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3년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당시 지지자들과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구의 아들' 인연 수차례 강조했던 尹

윤 전 대통령은 정치 입문과 이후 대통령 재임 시절 대구와의 인연을 늘 강조했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20여 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며 세 차례나 대구에서 근무했다. 때문에 대구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며 방문 때마다 지역에서의 일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22년 2월 선거운동을 위해 대구를 찾았을 때에는 “대구를 찾았을 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사회생활을 대구에서 시작을 했고 제가 어려울 때 대구가 따뜻이 맞아줬고 이렇게 키우셨다"면서 “그럼 면에서 저는 대구의 아들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평소 지역에 대한 언급을 자주했다. 그는 지난해 3월 대구 팔공사 국립공원 기념식에 참석해서도 “공직 생활을 처음 시작해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배운 곳이 대구와 경북"이라며 “대구와 경북이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든든히 뒷받침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은 23년 4월 대구 서문시장 100주년 행사에 참석해서는 “대구시민의 땀과 눈물이 담긴 역사의 현장인 서문시장에 이러한 우리의 헌법정신이 그대로 살아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서문시장에 오니)왜 정치를 시작했고, 왜 대통령이 되었는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지 가슴 벅차게 느낀다"고도 강조했다.

또한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선 윤 전 대통령은 “대구경북 지역의 절대적인 지지가 저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면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대구경북행정통합이나 대구경북통합신공항과 같은 지역 현안들에 대해 국무회의 또는 참모진에게 직접 당부하는 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이는 결국 윤 전 대통령 탄핵 찬·반 또는 지지율 조사에서 늘 권역별 1위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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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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