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지역 어업 분야 피해액 190억원 달해
수협 “산불 인한 화재는 피해보상 대상 아냐” 통보
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매캐한 탄내가 진동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해안도로 변에 위치한 한 육상 양식장. 평소라면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펌프 소리로 활기찼을 이곳엔 정적만 감돌았다. 검게 그을린 수조 바닥에는 출하를 앞두고 폐사한 광어와 강도다리 수만 마리가 겹겹이 쌓여 말라붙어 있었다. 지난달 의성에서 발화해 영덕 해안까지 번진 산불이 남긴 상흔이다.
이곳에서 30년간 양식업을 이어온 최용태(75) 씨는 그을음이 가득한 장화를 신고 폐사한 고기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최 씨는 "30년 넘게 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키웠지만, 산에서 불이 내려와 물속 고기를 다 죽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번 산불로 영덕군 석리에서 30년째 육상 양식장을 운영중인 A 수산은 광어와 강도다리 18만미 가 폐사하는 등의 큰 피해를 당했다. <영덕군 제공>
◆ 산불 피해 190억 원…보험 보상 사각지대 논란
영덕군 집계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한 어업 분야 피해액은 약 190억 원에 달한다. A수산과 B수산 등 육상 양식장 2곳에서만 32만 마리의 어류가 폐사해 25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여기에 선박 25척이 전소되고 어망과 가공업체 시설이 불타면서 지역 수산업계 전체가 마비된 상태다.
문제는 피해 복구를 위해 가입해 둔 '양식수산물재해보험'이 이번 산불 피해에 대해 보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어민들의 지적이다. 최 씨는 매년 700만 원에서 1천만 원에 달하는 보험료를 Sh수협에 성실히 납부해 왔다. 그러나 수협 측은 최근 이번 피해가 보상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보내왔다. 보험 약관 제4조가 규정하는 '보상하는 손해'에 산불로 인한 화재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이번 산불로 영덕읍 석리 육상양식장 2곳에서 키우던 광어와 강도다리 등 약 32만미가 폐사했다. 사진은 산불로 폐사한 광어를 치우고 있는 모습. 영남일보 DB
◆ '강풍'인가 '화재'인가... 쟁점 된 사고 원인
현장 어민들과 보험사 간 사고 원인에 대한 시각차가 크다. 사고 당시 영덕 일대에는 초속 25m에 달하는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산불이 해안가 양식장까지 순식간에 번진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이 '자연재해'였다는 것이 어민들의 주장이다.
최 씨는 "태풍이나 강풍이 불면 그 여파로 불이 날 수도 있고 시설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강풍 때문에 불씨가 날아와 고기가 죽었는데, 바람은 자연재해고 거기서 번진 불은 화재니 보상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반면 수협 측은 약관상 태풍, 강풍, 풍랑 등은 자연재해로 인정되지만, 산불은 이와 별개의 화재 사고로 분류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약에 가입하지 않은 이상 일반적인 재해보험으로는 보상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은 기후 변화로 재난 형태가 복합적으로 변하는 현실을 보험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은 "기후 위기로 인해 예상치 못한 경로로 재난이 확산되고 있다"며 "보험에 가입하고도 보장받지 못하는 어민들의 절망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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