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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의 민초통신] 풀보다 먼저 눕는 사람

2025-04-15

권력에 맞춰 고향 바꾸기 예사

반세기 10개 정권 '官運 대명사'

이번엔 대선 최고관리자건만

출마 "고민중" 간 보는 韓대행

대망론에 기대 헛꿈 꾸기 바빠

[민병욱의 민초통신] 풀보다 먼저 눕는 사람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지난주 한 방송사 앵커는 '그'를 가리켜 "풀보다 빨리 눕는 사람"이라고 했다. "관료사회에서 한때 그를 대한민국 '관운(官運)의 대명사'라 부르더니 요즘은 풀보다 먼저 눕는", 누구보다 권력 풍향에 재빠른 기회주의자로 칭한다는 얘기였다. 같은 날 다른 방송의 앵커는 보도를 마무리하면서 "나라가 '그'에게 수십 년간 국내외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도록 해준 이유가 뭐냐, 그저 영어 잘하고 본인과 가족들 호의호식하라고 그런 것이냐?"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국가와 국민 안위보다 권력 바라기나 하며", 제 보신만 하는 약삭빠른 행태를 보인다고 비판한 거였다.

#약삭빠른 기회주의 행보

앵커들이 말한 약삭빠른 기회주의자, '그'란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를 지칭한 것이다. 한 대행은 8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2명을 전격 지명하며 국회에 인사청문을 요구했다. 윤석열 씨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나흘째였다. 12·3 비상계엄으로 윤 전 대통령이 국회에 탄핵 소추됐을 때만 해도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 등 대통령 고유 권한의 행사를 자제하라는 게 헌법정신"이라며 국회 선출 재판관 3인의 임명을 완강히 거부한 그다. 그런 그가 제 말을 손바닥처럼 뒤집어 국민이 뽑은 정통성 있는 대통령인 양 덜컥 헌법재판관을 지명해버리니 정치권은 벌집 쑤신 듯 요동쳤다.

더구나 헌법재판관에 지명된 1인은 내란동조 혐의를 받는, 윤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대선 캠프 법률팀 핵심 이완규 법제처장이었다. 내란죄 피의자를 헌법재판관에 보임하는 것도 황당하지만 두 달 후면 취임할 대통령 권한을 낚아채 헌법재판소에 '알박기'를 하자는 게, 본인도 자유롭지 않은 내란 수사와 헌법재판에 미리 물막이를 대는 것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 판에 또 새 뉴스가 더해졌다. 한 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 통화'를 했고 거기서 "대선에 출마할지" 질문을 받았다는 것. 한 대행은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된 건 없다"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앵커들이 분노한 것은 그 지점이었다. 코앞의 국가 위기부터 추스르고 공정한 대선 관리를 하기도 빠듯한데 내란 세력을 감싸고 돌며 아예 자신이 직접 뛰는 대선 '간 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질타였다.

#출마 여부는 고민 중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순간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은 60일 이내 치러지는 대선의 정부 최고 관리자가 된다. 철저히 중립적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걸 모를 리 없는 한 대행이 자신의 출마를 "고민 중"으로 답했다면 이미 대선 관리자로서 자격을 잃은 것이다. 어느 한 편의 선수로 뛸지 말지를 고민하는 심판이라니, 어찌 그 경기의 공정한 관리자가 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정상 통화에서 오간 얘기는 당사자 입이 아니고선 밝혀질 수 없는 일이다. 출마 여부 등 대화 내용을 일부러 알려주지 않는 한 보도될 리 만무하단 얘기다. 한 대행은 이를 두고 여러 말이 나왔을 때도 "출마하지 않는다" 단 한마디면 끝날 일을 아리송한 침묵으로 얼버무려 정치권과 국민 상대로 간을 보는 것처럼 비추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통령을 잃어 여당 지위를 상실한 국민의힘 일각은 환호하고 있다. 진보 진영 반대를 무릅쓰며 헌재를 보수 우세 구도로 바꾸겠단 결기를 한 대행이 과감히 밝혔고, 트럼프와 대화로 관세 폭탄을 피해 갈 돌파구도 열었다는 것이다. 당 대선후보로 추대하자는 의견이 급물살을 탔다. 한 대행은 지난 50여 년 10개 정권에서 차관급 이상 고위직만 십수 개를 거쳤다. 장관과 대통령 수석, 주요 대사, 총리를 두 번씩 지냈으며 총리 권한대행, 대통령 권한대행에 무역협회장 등 화려한 요직을 두루 꿰찼다. 주로 통상 외교 분야 자리로 국민의힘은 트럼프 주도 관세 전쟁과 미중 무역 갈등에 대비하는 데 그가 최적임이라는 자평을 내세웠다.

호남 지역 당협 위원장들이 특히 앞장서 나섰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반감이 만만찮은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전북 출신 한 대행을 후보로 낸다면 '내란 정당'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붙어볼 만하다는 여론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호남 출신 통상 전문가' '유창한 영어' '무역 전쟁 시대의 인재' 간판을 들면 숙원이던 지역 한계 극복은 물론 확장도 가능하다는 희망가(希望歌)가 국민의힘에서 흘러나왔다. 경선 후보로 나오지 못하면 일단 무소속 출마 후 보수 대연합 형식으로 자당 후보와 단일화한다는 시나리오도 알음알음 퍼트렸다. 이른바 '한덕수 대망론'이다. '윤심'이 거기 실렸다는 얘기도 돌았다. 지레 질리고 실망한 유력 주자들이 잇따라 출마 포기를 선언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 "나는 호남 출신이 아니오"

국민의힘의 이런 희망 섞인 전망은 과연 현실화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닐 것'이란 대답이 다른 곳 아닌 그의 고향에서부터 나온다. 전북 출신 언론인 김기만(전 청와대 춘추관장)씨는 한 대행이 정권에 맞춰 고향을 이리저리 바꿔 말하는 등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지역 신망을 잃은 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한 대행은 1996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 차관급 특허청장에 기용됐다. 당시 언론이 고향을 '전북'이라고 보도하자 해당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자신은 서울 출신이니 정정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그 이전 상공부 국장 때는 전북 민선 지사가 찾아와 고향을 위한 지원을 당부하자 "나는 호남 출신이 아니오. 앞으로 찾아오지 마시오"라며 문전 박대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정권이 바뀌어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그는 통상교섭 본부장으로 영전했다. 언론이 그의 옛 주문대로 고향을 서울로 표기하자 이번엔 전혀 다른 얘기가 팩스로 들어왔다. "전주가 고향이며 초등학교 일부도 전주에서 다닌 전북 출신"이라는 거였다. 그야말로 '바람보다, 풀보다 빨리 눕는' 처신이었다.

물론 오래전 지역감정이 기승부리던 시절의 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그러나 1년 전 의료대란으로 나라가 뒤숭숭할 때 오직 한 사람 들으라는 듯 "누가 죽어 나갑니까. 그건 가짜 뉴습니다"라며 국회에서 소리치던 모습, 이태원 참사 기자회견 중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을 묻는 질문에 "회견장 통역기가 고장난 데 대한 책임의 시작과 끝은 누가 지느냐"고 천연덕스레 되묻고 웃던 모습은 아직 국민 뇌리에 생생히 남았다.

내란 우두머리는 파면당해 집으로 돌아오며 '다 이기고 돌아왔다'라는 흰소리나 하고 공수처가 내란죄 수사 대상이라고 공언하는 총리는 대망론에 기대 헛꿈을 꾸고 있는 이 현실, 내란은 정말 끝났는가.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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