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쟁에 추경 표류… 경주는 ‘국가행사’ 혼자 준비 중

2025년 APEC 정상회의 주 회의장인 경주 화백컨벤션센터(HICO) 전경. 장성재 기자

지난 18일 국회 2025 APEC 정상회의 지원 특별위원회가 회의장인 경주HICO를 방문해 준비상황을 점검했다. 경주시 제공
경북 경주시가 국가행사인 APEC을 준비하기 위해 자체 예산을 편성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쟁으로 정부 예산 반영이 지연되면서 경주시가 216억원 규모의 자체 추경을 편성해 주요 기반공사에 착수한 것이다. '국가가 주최하고 지방이 책임지는' 이 희한한 구조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경주시는 APEC 개최와 관련해 지난해 정부 본예산에 13개 사업, 총 981억원의 국비를 요청했다. 하지만 예산에 반영된 사업은 '만찬장 조성(총사업비 80억원)' 단 한 건이며, 그마저마도 절반이나 깎였다. 11면에 관련기사
이에 경주시는 숙박시설 정비(100억원), 응급의료센터 구축 및 VIP전용병동 조성(30억원) 등 10개 사업으로 축소 선별해 정부에 459억원 규모의 추경 반영을 다시 요청한 상태다. APEC 행사 준비 관계자는 “국가 행사인 데도 지방비를 들여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라며 “국회는 APEC을 국가브랜드의 행사라고 말하면서도 예산심의는 외면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경주시 관계자도 “인프라 구축과 행사운영을 위한 재정적 뒷받침이 절실하지만 예산지원이 지연돼 우선 지방비로라도 투입해 이달 중 기반공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주시가 자체 추경예산 편성(216억원)으로 추진 중인 사업은 보문단지 야간경관 정비(75억원), 회의장 진입로 정비(59억원), 교통인프라(29억원), 북천 하천정비(15억원), 주요 사적지 정비(18억원) 등이다. 각국 정상이 직접 방문하는 장소가 다수 포함돼 있는 만큼 경주시는 “착공이 지연되면 미흡한 준비 상태가 국제무대에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부분의 공정은 9월 이전 완료가 목표지만 공사가 늦어지면 우기와 겹쳐 일정 전반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현재 미디어센터, 숙박시설, 수송·의료 대응체계 등의 행정적 검토는 완료된 상태다. 하지만 실질적인 운영 예산이 미확보된 상태에서 인프라 조성이 얼마나 속도를 낼지 미지수다. 정부는 APEC 예산을 포함한 12조2천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편성해 22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 APEC지원특별위원회도 지난 18일 경주를 찾아 회의장(HICO)·불국사·국립박물관 등 주요 시설을 둘러보며 국회 차원의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국이 대치 상태여서 예산안 심사와 통과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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