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恨과 연결지점 있어…우리 정서 녹여내는 무대 선보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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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5일 아양아트센터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갖는 정은주 재즈 보컬리스트는 "재즈에는 한국의 '한'이 녹아 있다"며 "언젠가 한국의 정서를 녹여낸 재즈 무대를 꼭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
"음악은 제 첫사랑이에요. 힘들어 도망치고 싶어도, 음악을 떠올리면 다시 돌아오고 말죠."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재즈 보컬리스트 정은주(46)는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식 데뷔는 2021년 '정은주 재즈 퀄텟' 1집 발매로 이뤄졌지만, 음악을 향한 그의 발걸음은 2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울산에서 나고 자라 영남대 성악과에 진학한 그는 흑인영가와 가스펠, 블루스에 매료돼 재즈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제이 아크 뮤직 대표이기도 한 그는 대구가톨릭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M.I(MUSICIANS INSTITUTE) 한국 경연대회 2위(보컬부문 1위·2009), 제1회 대구재즈콩쿨 대상(2010), 제24회 극동방송 가스펠 싱어 금상(2017)을 수상하고 대구국제재즈페스티벌, 대구포크페스티벌 등 여러 무대에 서며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배움에 목마르다.
경기침체와 대선 국면에 들어서며 공연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오는 25일 아양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그의 첫 단독 콘서트 '뮤직 파노라마'가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300~400석도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2층 좌석까지 추가로 오픈하게 됐다. 공연을 앞둔 지난 21일, 개인 녹음실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흡수되는 음악' 재즈 장르에 매료
성악가 발성 바탕으로 본격 공부
'보이스퀸' 통해 강약 조절법 배워
즉흥 재즈는 관객 입장서 낯설어
익숙한 대중적인 곡으로 접근 중
생계 때문에 쓰리잡 고충 알지만
후배들 실력 키워 기회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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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원 감독 제공 |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 생계형 뮤지션은 '투잡' '쓰리잡'이 기본인 경우도 많다. 지역 내 공연 기회도 한정적이고, 예산 문제도 항상 따라붙는다. 2021년 발매한 '정은주 재즈 퀄텟'의 1집도 펀딩을 통해 제작했다. 그럼에도 계속 대구에서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건, 이곳이 제 음악의 시작점이자 저를 만든 곳이기 때문이다. 20살에 대구에 와서 아무런 기반 없이 음악을 시작했고, 대구에서 만난 인연과 경험이 자양분이 됐다."
▶재즈가 아닌 성악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팝을 좋아했다. 영남대 성악과에 진학해 성악가로 무대에 올랐고, 필그림 미션콰이어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즈에 매료돼 그 길을 걷게 됐다. 재즈는 '흡수하는 음악'이다. 거의 모든 장르에 영향을 미쳤으며 감정선이 깊고 즉흥성이 살아있다. 성악으로 다진 발성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재즈를 공부했고, 30대 후반에야 '재즈 보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재즈 보컬로 활동한 건 10년도 채 되지 않은 셈이다."
▶대중에게는 재즈가 어려운 음악이다. 어떻게 대중적으로 풀어내나.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비밥(Bebop)'처럼 연주자 중심의 즉흥 재즈는 관객 입장에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연을 기획할 때 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생각하고자 한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 편곡이었다. 2022년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했던 '보컬리스트 정은주의 재즈 프로젝트' 공연이었다. 대구 출신 박태준 작곡가의 '가을밤' '동무생각'을 서정적으로 편곡해 불렀다. 같은 공연에서 동요 '도깨비'를 블루스로 편곡해 마당극 형식으로 선보였다. 관객들의 고민을 듣고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 부르는 형식이었는데 두 무대 모두 반응이 좋았다."
▶이번 콘서트는 정통 재즈보다 팝 위주의 무대다.
"재즈만으로 관객을 모으기 쉽지 않다. 그래서 관객에게 익숙한 대중적인 곡들로 접근한 후, 재즈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연출과 영상작업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시기도 해서 이를 계기로 앞으로 브랜드화해서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레퍼토리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음악을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하다.
"음악이 좋다. 정말 그게 전부다. 물론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다. 무엇보다 책임감이 큰 영향도 있다.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배우고 연습한다. 물론 고난이 많았다. 아이를 낳고 활동하는 지역 여성 뮤지션은 보기 드물다. 임신 중 고관절 골절로 3년 가까이 제대로 된 생활을 못 했을 때도 있었고, 공연을 하며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애를 먹은 적도 많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무대 기회가 계속해서 찾아왔다. 이러한 근성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다."
▶MBN 프로그램 '보이스퀸' 출연으로 '재즈 보컬' 입지를 다졌다.
"처음엔 망설였다. 자칫 재즈 보컬리스트로서의 이미지가 훼손될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 '절제'를 배웠다. 전에는 모든 걸 쏟아붓는 무대가 많았다면, 방송 이후 70~80% 정도로 강약을 조절하는 법을 익혔다. 비록 방송은 준준결승에서 끝났지만, '재즈 보컬리스트 정은주'라는 이름을 더 많은 분들께 알릴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역 예술인으로서 아쉬운 점은.
"팬덤 형성이 어렵다는 점이다. 뮤지션이 기획사나 방송의 도움 없이 꾸준히 활동하기란 쉽지 않다. 이번 공연은 다행히 1층 좌석이 하루 만에 매진됐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무엇보다 공연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 최근 대선, 경기침체 등으로 공연이 줄어든 상황이다. 대구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인 만큼 클래식을 비롯한 여러 음악적 인프라는 잘 형성돼 있다. 다만 생계를 이어가는 뮤지션으로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늘 어렵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긴장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역이라는 이유로 안주해서는 안 된다. 무대의 크기와 관계없이 실력을 갈고 닦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생계 때문에 연습할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도 알지만, 음악에 진심이라면 결국 계속해서 갈고 닦는 수밖에 없다.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감정을 기억하고 돌아보길 바란다."
▶해보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
"'재즈창극'을 꼭 해보고 싶다. 전래동화를 재해석해 즉흥성과 이야기를 재즈에 녹여내는 공연을 구상 중이다. 클래식, 재즈, 국악을 아우르는 실험적인 무대로, 관객과 호흡하며 풀어가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 재즈를 공부할수록 한국의 '한'의 정서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국악과 접목하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서를 녹여내는 무대를 선보이고 싶다. 최근에는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와 '아리랑'을 접목하는 편곡 작업을 했다. 5월 중 디지털 싱글로 발매할 예정이다."
▶공연을 찾아줄 관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이번 공연 제목은 '뮤직 파노라마'지만, 저에게는 '인생 파노라마' 같은 무대다. 특히 지금껏 제 음악인생을 함께해준 분들이 많이 참석해 주셔서 무대에 서는 감회가 남다르다. 또 이번 공연을 찾는 관객들께서는 저뿐만 아니라 지역의 대중음악·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도 함께 응원해주셨으면 한다. 지역에서 받은 사랑, 음악으로 꼭 보답하겠다."
글·사진=정수민기자 jsmean@yeongnam.com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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