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12편은 화공(火攻)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불공격법을 쓸 수 있는 때는 '천지가 건조할 때, 그리고 바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날'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제갈량은 화공작전으로 조조의 80만 대군을 궤멸시켰다.
의성군을 비롯, 경북의 5개 시·군에 큰 피해를 입힌 산불 이후 산불예방과 산불확산 방지를 위한 여러 대책이 나오고 있다. 대형 산불에 대응할 수 있는 진화장비 도입과 전문 인력 양성, 임도 확충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산림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불에 강한 수종을 심을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이 너무 한가롭고 여유로운 담론으로 들린다.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과 청송·영양·영덕을 휩쓸고 동해에 이르러서야 동진을 멈췄다. 헬리콥터를 비롯,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장비와 인력을 동원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비와 바다의 도움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이 불로 산림 10만㏊가 잿더미가 되고 27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주택 4천700여 채가 불타고 3천5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전쟁 수준의 피해다. 실화범은 일회용 가스라이터 하나로 전쟁 같은 피해를 발생시켰다.
우리나라의 봄은 천지가 건조하고 산에는 불에 잘 타는 연료가 가득하다. 제갈량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때를 예측하여 화공작전을 썼으나 우리나라는 봄 내내 북서풍이 분다. 몇몇이 모의하여 한반도의 서쪽 산림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회용 라이터를 켠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봄철에 적이 의도적으로 화공작전을 쓴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산불은 산림피해를 넘어 국가안보의 문제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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