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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조문국으로 떠나는 역사기행] 1. 374개의 가능성을 품은 우주

2025-05-01 17:25

말없이 엎드린 고분,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미지의 세계

[의성 조문국으로 떠나는 역사기행] 1. 374개의 가능성을 품은 우주

의성군 금성면의 조문국사적지. 삼한시대 부족국가였던 조문국의 고분 374기가 밀집한 곳으로 5월이면 모란과 작약이 장관을 이룬다. 고분 사이로 형성된 꽃밭과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분의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는 고분전시관도 만날 수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무려 374개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주인추정 가능 조문국 경덕왕릉

금관 쓴 백발노인이 꿈 속서 묘자리 점지 전설

왕릉 바로 옆은 전시관 진짜 무덤 속을 걷는 기분

해 넘어가고 조명 더해져 고분주변은 우주같은 장관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조문국 사적지를 향해 가는 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다는 가수 윤하의 노래가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둥그스름한 고분의 모양새를 꼭 닮은 노래 '사건의 지평선'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그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너머의 관찰자와 상호작용하지 못하는 시공간의 경계면을 말한다.

의성 금성산 서쪽 자락의 모지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 사면에 말없이 엎드린 5~6세기의 조문국 고분들은 마치 '사건의 지평선' 같았다.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지만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광활한 우주.

거대한 고분 사이를 거니는 일은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이었다.

별과 별 사이, 세계와 세계 사이. 그 어딘가의 시간에 우리가 살고 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그 광활한 우주에서 마주한 사소한 인연과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시공간의 경계를 뚫고 사건의 지평선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총3회에 걸쳐 비밀의 고대왕국, 조문국의 세계로 통하는 비밀통로를 공개한다.

◆ 고고학 논문 읽기가 취미인 해설사

“조문국(召文國)은 이곳 의성에 존재했던 삼국시대 진한계 부족국가예요. 185년(신라 벌휴왕 2) 신라에 병합되었고, 고려시대에 이르러 현재의 이름인 의성이 되었죠. 당시 의성은 경주에서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중요 교통로에 있었기 때문에 신라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으로 여겼습니다."

의성토박이이자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오래 했다는 이천호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난 건 천운이었다. 召文國의 '召'자는 '조'와 '소' 두 가지로 읽히기에 학자에 따라 소문국이라고도 하는데, 1960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분군을 발굴한 이래 1965년 경희대학교와 1995년 경북대학교가 각각 발굴 조사에 참여했고, 이후 어떤 논문이 발표되었는지까지 숨 쉴 틈 없이 설명이 이어졌다.

때는 바야흐로 봄. 의성조문국사적지 일대는 온통 꽃밭인데, 조문국의 꽃시절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이 꽃보다 더 환했다.

도착하자마자 입구 주차장에 자리한 푸드 트럭에서 의성 마늘빵을 하나 사서 입에 물고 나니, 그냥 설렁설렁 꽃구경이나 하며 산책만 해도 충분하겠다 싶은 봄날이었다. 그런데 조문국사적지는 화장실마저 고분처럼 둥그스름한 모양새라 없던 호기심이 생겨났고, 화장실을 나서자마자 건너편에서 똑같이 고분 모양새를 한 건물과 마주하게 됐다. 거기엔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 '문화유적 해설해 드립니다'라는 글귀가 붙어있었다. 예약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 가능할까 싶어 머뭇거리던 그 짧은 순간, 고분을 둘러보고 들어서던 그와 딱 마주쳤다. 온 우주의 기운이 한 곳으로 모인 순간이었다.

“꿈에 경덕왕이 나왔답니다."

무려 2천년을 거슬러가는 고대왕국에 관한 유구한 역사 이야기 끝에 마치 어젯밤 꿈 이야기를 하듯 그의 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그는 틈날 때마다 고고학 논문을 즐겨 읽는 학구파일 뿐 아니라,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역사에 설화와 전설을 버무려 듣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 수준급 이야기꾼이었다. 함께 해설을 듣던 방문객들과 함께 우리는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고분을 향해 블랙홀처럼 빠져 들어갔다.

◆조문국 경덕왕과 신비로운 전설

[의성 조문국으로 떠나는 역사기행] 1. 374개의 가능성을 품은 우주

의성 조문국 사적지 경덕왕릉.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지금은 이렇게 단장해놓았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여기는 다 밭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밭 사이에 이런 무덤들이 있었던 거죠. 특히 무덤이 이만큼 크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권력자였다는 걸 보여주는 거거든요. 그래서 당시 조문 마을 사람들도 무덤을 엄청 많이 파헤쳤던가 봐요."

185년에 조문국이 신라에 병합된 이후에도 5~6세기까지 의성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에 이런 고분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조문국의 통치자들은 병합 이후에도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조문국은 터가 좋아 곡창지대였을 뿐 아니라 금광이 많은 금의 나라라고 불렸을 정도이니, 권력자의 무덤에 묻혀있을 보물을 탐낸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여기, 경덕왕릉은 조문국사적지 374개의 무덤 중에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을 추정할 수 있는 고분인데, 여기에 참외밭을 가지고 있던 오극겸이라는 사람의 꿈에 어느 날 금관을 쓴 백발노인이 나타났다고 해요."

참외밭 원두막 자리가 자신의 무덤자리이니 속히 철거하라며 한시 한 수를 남겼다는 것이다.

'조문국 임금의 일을 누구와 함께 의논하랴

천 년이 지난 오늘 경덕왕의 무덤만 남았구나

비봉곡조 사라지고 사람도 볼 수 없고

조문의 거문고 가버린 지금 그 소리도 묘연하다'

참외밭 주인이 놀라 깨어보니 꿈속 노인의 시가 그대로 자기 몸에 새겨져 있었다. 오극겸이 현령에게 이 사실을 고하고 나서야 몸에 새겨진 한시가 사라졌다고 한다. 조선 영조 때 전국 읍지를 엮어 편찬한 '여지도서'에 기록된 전설이다. 이 외에도 참외밭을 갈던 한 농부가 석실의 금관을 발견하고 탐을 내자 손이 금관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는 신비로운 전설이 조선 숙종 때 출간된 '허미수 문집(1596~1682, 조선 후기 문신)'에 실려 있기도 하다.

이 고분의 주인인 조문국의 경덕왕은 신라 경덕왕(景德王, 742~765년 재위)과 이름이 같아서 한때는 이 고분 앞에 다른 한자를 쓴 비석을 세우기도 했지만, '신라사초'의 기록에 따라 조문국의 10대 왕(10~74년 재위)으로서 원래의 한자 이름대로 '조문국 경덕왕릉 召文國 景德王陵'이라는 비석을 세웠다고 했다.

그저 똑같이 생긴 고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속에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무덤 속 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의성 조문국으로 떠나는 역사기행] 1. 374개의 가능성을 품은 우주

고분의 내부가 궁금하다면 고분전시관에 들러보자. 발굴한 대리리 2호분을 활용해 그 내부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의성 토기 및 당시의 순장문화를 엿볼 수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조문국고분전시관, 대리리 2호분 순장문화의 비밀

이제 고분 속으로 들어가 본다. 경덕왕릉 바로 옆에는 고분의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는 조문국고분전시관이 있다. 2009년 발굴한 대리리 2호분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환한 봄 햇살 아래 있다가 조도를 낮춘 전시실로 들어서니 진짜 무덤 속을 걷는 듯 기분이 묘해진다.

고분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전망대 역할을 하는 정자인 조문정에 올랐을 때 둥그스름한 고분들의 모양새가 마치 어린 생명을 품고 있는 어머니들의 둥근 배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그곳에 아기가 있었다!

“순장 문화라고 하죠. 고대인들은 지배층이 죽고 나면 사후세계에서도 그 일상을 그대로 이어간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토기 같은 일상 생활용품을 함께 묻고, 가족이나 종들도 따라갔죠. 아마 여기 함께 잠든 이들은 한 가족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특히 규모가 큰 대리리 고분에서는 시신을 묻는 주된 공간인 주곽(主槨)과 여러 개의 부곽(副槨)이 출토됐다. 주곽에서도 발을 맞대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누운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는데, 한쪽 부곽에는 무려 네 사람이 누워있다. 인골 4구는 모두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양 가장자리에 성인을 한 명씩 안치하고 중앙에 유아를 위아래로 한 명씩 놓았다. 얼핏 봐서는 인골인지도 모를 만큼 작은 아기였다. 이 아기들은 어떤 시대에 태어나 그 짧은 생애를 마감해야 했던 걸까. 그리고 천 년의 기나긴 어둠을 건너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밖을 나와 이제 막 꽃 틔울 준비를 마친 작약 꽃단지 사이로 조무래기 아이들이 통통 공처럼 튀어 다니는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그 사이 해가 지고, 야간 조명이 더해져 고대 의성이 빚어놓은 374개의 고분은 그야말로 우주 같은 장관을 연출했다. 이제 그 아름다운 우주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려 한다. 그 이야기는 조문국 박물관과 보물 이야기로 이어져 있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함께 둘러보면 좋을 곳

[의성 조문국으로 떠나는 역사기행] 1. 374개의 가능성을 품은 우주

의성 문익점 면작 기념비.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문익점 면작기념비

조문국사적지 바로 옆에 있는 기념비로 조선태종 때 의성 현령으로 재직했던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의성 땅에 목화씨를 파종한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 기념비를 둘러본 후 130년 전 목화솜 타는 기계를 볼 수 있는 카페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의성전통시장 한가운데, 지역색을 살려 문을 연 사회적기업 '향촌당' 카페는 정미소를 개조해서 만든 이색쉼터다.

▲의성 금성산성

조문국 시대에 조성한 길이 2천730m, 높이 4m의 산성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어 산성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바위와 봄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조문국 고분이 분포한 금성산은 산정에 묘를 쓴 사람은 운수대통하여 큰 부자가 된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등산하기에도 좋고 성곽 유적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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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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