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시설 사칭, 명함과 공문 등으로 안심시킨 뒤 대납 유도

안동교도소 총무과 직원이라면서 보내온 명함. 독자제공
경북 안동의 한 육가공 업체로 걸려온 대량주문 전화 한 통. 전화를 건 남성은 자신을 안동교도소 총무과 직원이라고 소개하며, 수천 만 원 상당의 소고기를 대량 주문했다. 최근 어려운 경기에 업체 대표 A씨는 너무나 기뻤다. 그는 명함까지 모바일 메신저로 전송하며 신뢰를 구축했다. 하지만 A씨는 순간적인 의심으로 교도소에 전화를 걸었고, 그 한 통이 정교한 사기극을 막았다.
이처럼 실제 기관을 사칭한 '노쇼 사기'는 경북 전역에서 확산 중이다. 교도소나 군부대를 앞세운 단체주문 방식으로 접근해 신뢰를 유도하고, 다른 품목의 대리구매를 요청한 뒤 돈을 받아 잠적하는 수법이다. 최근 한 달 새 경북에서만 62건이 접수됐고, 경찰은 해외 조직 연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사기 수법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김천소년교도소를 사칭한 전화금융사기범은 가구점에 30개의 의자를 주문한 뒤, “예산이 부족하다"며 방탄복 납품업체에 수백만 원을 대신 결제해달라고 요구했다. 피해자는 돈을 송금한 뒤 연락이 끊긴 뒤에야 사기를 인지했다. 김천교도소에 확인된 유사 사례만 10건 이상, 전국적으로는 90건이 넘는다.
피해 업종도 다양하다. 구미의 삼계탕집, 꽃집, 과일가게까지 사기 대상이 됐다. 심지어 구미에서는 군인증 사진과 '부대 식품비 지불 확약서' 공문까지 보내 신뢰를 유도했다. “방문 당일 선금을 주겠다"는 말에 속아 자영업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 같은 범죄가 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실명, 명함, 직인 등으로 철저하게 '진짜처럼' 위장했기 때문이다. 정식 기관을 사칭한 데다 물품 수량도 수십 개 단위로 설정돼 상인들 입장에서는 반가운 대량 거래였다. 여기에 “예산 문제로 대납만 해주면 곧바로 결제하겠다"는 말은 곤란한 상황을 설명하는 듯해 의심을 덜게 만들었다.
경찰은 현재 이 범죄의 발신지를 추적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등 해외 범죄조직과의 연계 가능성도 수사 중이다. 오부명 경북경찰청장은 “단체 주문을 받았을 때는 반드시 선결제를 요구하거나 공식 기관에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동교도소의 빠른 대응은 사기 피해 예방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명함과 공문서만으로 상대를 믿지 않고 기관에 직접 사실 여부를 확인한 육가공 업체 대표의 판단과, 이를 신속히 대응한 안동교도소의 체계적인 대응이 대형 피해를 막았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민간 업체에 대납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반복 강조하며, 각 자치단체와 교정기관이 협력해 예방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북 전역을 휩쓸고 있는 '노쇼 사기'는 단순한 개인 피해를 넘어선 조직적 범죄다. 안동의 선제 대응처럼, '의심하고 확인하는' 경계심이야말로 유일한 방어막이 되고 있다. 피해를 막는 첫 걸음은 '전화기 너머의 신분'을 확인하는 일이다.

손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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