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 서글픈 현실
정치 권력자, 감언만 들을 때
이성적이고 현실적 판단 못해
정부·대구시 모두 권력 교체기
부디 달콤한 말은 경계하기를

노진실 사회1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유명한 우화가 있다. 임금이 거짓말에 속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옆에 있던 측근(신하)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이를 막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상황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서로 눈치만 보느라 그 우매한 짓이 불러온 파국을 막지 못한다.
임금이 벌거벗은 상태가 될 때까지 옆에서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그렇다고 임금의 눈을 가린 신하들 탓만 할 순 없다. 자신에게 바른 말을 해줄 충신을 두지 못한 것은 결국 모두 임금의 탓 아니겠나.
이 우화가 작금의 우리 정부, 그리고 지방정부에서 쓰였다면 한편의 '잔혹동화'가 됐을지 모른다.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말한 아이에겐 어떤 식으로든 벌이 가해졌을 것이다. 임금 옆에서 달콤한 말만 해온 신하나 그 신하의 부하를 자처한 일부 국민은 그 아이를 불러 가스라이팅을 할 수도 있다. "임금은 벌거벗지 않았다"고. 아이처럼 진실을 보는 국민은 침묵하고, 그 나라는 '벌거벗은 나라'가 된다... 잔혹동화는 그렇게 결말이 날 것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20일도 채 남지 않았고, 지방선거도 일 년 앞으로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이 나라와 대구시 모두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이어진 일련의 일들로 전직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대통령 자리가 비었다. 또 최근엔 전직 대구시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하며 시장 자리도 비었다. 지금 우리는 권력 공백기와 교체기를 함께 지나고 있는 것이다.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권력 공백기에는 지난 권력들에 대해 되돌아 볼 여유가 생긴다. 혹자는 그걸 '성찰'이라고도 한다.
그동안 기자생활을 하며 많은 정치 권력자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났다. 대통령은 박근혜-문재인-윤석열이 있었고, 대구시장은 김범일-권영진-홍준표가 있었다. 극성 지지자들에게는 그들이 '신'이겠지만, 기자의 눈에는 그저 사람이다. 공이 있으면 과도 있다.
권력자들은 재임 중 비슷한 '난제'를 마주하는 듯 했다. '달콤한 말을 가까이 할 것인가, 쓴 말을 가까이 할 것인가'. 그 문제를 두고 많은 번민 끝에 쓴 말을 들어보려 노력한 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선배 기자에게 "감언(甘言)으로 현혹하는 사람보다 가끔은 쓴소리를 하는 이가 그를 더 생각해주는 사람이 아닌가. 정치 권력자들은 왜 그걸 모르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선배가 말했다. "대중의 인기로 사는 사람들은 객관적 평가를 해주는 이를 곁에 두지 않는다. '당신이 최고'라며 치켜세워주는 사람을 곁에 둬야 자신이 더 빛난다고 믿는다."
여기다 진영논리가 극심한 환경 속에 '비판은 곧 상대 세력의 음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도 또 다른 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비판과 작업용 음해의 차이는 국민들도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 이에 정치 권력자는 마음을 열고 자신이 생각하는 다른 진영의 비판에도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권력의 시작 앞에선 늘 기대와 우려가 함께 한다. 부디 주변의 '달콤한 말'을 경계할 줄 아는 인물이 새 대통령, 단체장으로 선출됐으면 한다. '아첨'이 아닌 '진심'을 보는 눈을 가진 현명한 자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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