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 서글픈 현실
정치 권력자, 감언만 들을 때
이성적이고 현실적 판단 못해
정부·대구시 모두 권력 교체기
부디 달콤한 말은 경계하기를
![[하프타임] ‘달콤한 말’을 조심하라](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515.ab0fc94c4ad047eaa2f0e77dfad18058_P3.jpg)
노진실 사회1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유명한 우화가 있다. 임금이 거짓말에 속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옆에 있던 측근(신하)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이를 막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상황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서로 눈치만 보느라 그 우매한 짓이 불러온 파국을 막지 못한다.
임금이 벌거벗은 상태가 될 때까지 옆에서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그렇다고 임금의 눈을 가린 신하들 탓만 할 순 없다. 자신에게 바른 말을 해줄 충신을 두지 못한 것은 결국 모두 임금의 탓 아니겠나.
이 우화가 작금의 우리 정부, 그리고 지방정부에서 쓰였다면 한편의 '잔혹동화'가 됐을지 모른다.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말한 아이에겐 어떤 식으로든 벌이 가해졌을 것이다. 임금 옆에서 달콤한 말만 해온 신하나 그 신하의 부하를 자처한 일부 국민은 그 아이를 불러 가스라이팅을 할 수도 있다. "임금은 벌거벗지 않았다"고. 아이처럼 진실을 보는 국민은 침묵하고, 그 나라는 '벌거벗은 나라'가 된다... 잔혹동화는 그렇게 결말이 날 것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20일도 채 남지 않았고, 지방선거도 일 년 앞으로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이 나라와 대구시 모두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이어진 일련의 일들로 전직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대통령 자리가 비었다. 또 최근엔 전직 대구시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하며 시장 자리도 비었다. 지금 우리는 권력 공백기와 교체기를 함께 지나고 있는 것이다.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권력 공백기에는 지난 권력들에 대해 되돌아 볼 여유가 생긴다. 혹자는 그걸 '성찰'이라고도 한다.
그동안 기자생활을 하며 많은 정치 권력자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났다. 대통령은 박근혜-문재인-윤석열이 있었고, 대구시장은 김범일-권영진-홍준표가 있었다. 극성 지지자들에게는 그들이 '신'이겠지만, 기자의 눈에는 그저 사람이다. 공이 있으면 과도 있다.
권력자들은 재임 중 비슷한 '난제'를 마주하는 듯 했다. '달콤한 말을 가까이 할 것인가, 쓴 말을 가까이 할 것인가'. 그 문제를 두고 많은 번민 끝에 쓴 말을 들어보려 노력한 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선배 기자에게 "감언(甘言)으로 현혹하는 사람보다 가끔은 쓴소리를 하는 이가 그를 더 생각해주는 사람이 아닌가. 정치 권력자들은 왜 그걸 모르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선배가 말했다. "대중의 인기로 사는 사람들은 객관적 평가를 해주는 이를 곁에 두지 않는다. '당신이 최고'라며 치켜세워주는 사람을 곁에 둬야 자신이 더 빛난다고 믿는다."
여기다 진영논리가 극심한 환경 속에 '비판은 곧 상대 세력의 음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도 또 다른 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비판과 작업용 음해의 차이는 국민들도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 이에 정치 권력자는 마음을 열고 자신이 생각하는 다른 진영의 비판에도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권력의 시작 앞에선 늘 기대와 우려가 함께 한다. 부디 주변의 '달콤한 말'을 경계할 줄 아는 인물이 새 대통령, 단체장으로 선출됐으면 한다. '아첨'이 아닌 '진심'을 보는 눈을 가진 현명한 자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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