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형식 거리활동가
대구 최초의 호텔은 '대구공회당 호텔'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3년, 당시 복합문화공간이었던 대구공회당(현 대구콘서트하우스)의 4층에 호텔 건설 계획이 세워진다. 당시 대구의 여관업자들은 맹렬히 반대했는데 논란 끝에 끝내 완공된다. 객실은 귀빈실과 보통실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왕실 귀족이나 고위 관리 등이 주로 머물렀다. 당시 조선 총독이 투숙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단체의 창립총회가 열렸고, 1937년 내한해 대구를 방문한 20세기의 기적 '헬렌 켈러'도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건물의 한 층만을 이용한 형태로 정상적인 호텔로 보기는 힘들었다. 1938년 열린 지금의 시의회 개념인 '대구부세심의회'의 안건으로 조선 4대 도시의 명성에 걸맞은 여관의 부재, 일류 호텔의 신설을 종용했던 기록이 확인된다. 비슷한 시기 존재한 화월호텔(현 판코리아 자리)도 명칭은 호텔이지만 현대적 개념의 호텔이 아닌 호텔급 여관에 가까웠다.
1960년대에는 관광사업진흥법으로 본격적인 관광호텔 시대로 진입하고, 1970년대에는 본격적인 민간 호텔 운영이 시작된다. 대구 최초의 특급호텔은 금호호텔로 1982년 화재 사건으로 위기를 맞기도 한다. 대구 최초의 관광호텔은 수성호텔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초 만해도 대구의 관광호텔은 금호호텔, 수성호텔, 뉴영남호텔 뿐일 정도로 그 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호텔 설립 자유화로 호텔 건설이 급증하며 본격적인 대구 호텔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호황은 이내 끝났고 IMF 이후 경기침체가 지속되며 금호, 뉴영남, 동인, 프린스 등 이름난 호텔들이 경영난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져 갔다.
최근 관광도시로서의 대구가 주목받으며 지역 호텔업계도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매년 대구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늘고 있는데 한국관광데이터랩에서 제공하는 대구 방문자 체류 특성 분석 시, 체류시간에 비해 숙박 일수가 적은 편이었다. 이는 숙박시설이 미비한 탓으로 기반 시설 구축이 시급한 실정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동성로 관광특구 지정과 더불어 신라 호텔 계열의 신라스테이가 건설 예정이고, 코로나 이후 영업 중단했던 노보텔 앰배서더 대구도 대구시티센터로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대구의 5성급 호텔인 대구 메리어트 호텔과 호텔 인터불고 대구 또한 건재하다. 그야말로 대구의 호텔 신(新) 전성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앞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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