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큰 아들은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다. 얼마 전 아들의 절친이 전교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선거 운동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옆에서 지켜보니, 요즘 초등학교 전교회장 선거는 웬만한 어른 선거 못지않았다.
후보 등록부터 철저한 원칙이 있었다. 최소 10명의 추천인이 있어야 후보로 나설 수 있었다. 후보 등록이 끝나면 추첨으로 기호를 정했다. 다음 날부터 후보들은 등교 시간에 맞춰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원은 최대 4명까지 가능했고, 팻말과 어깨띠 등 제한된 방식으로만 운동할 수 있었다. 현수막은 아예 금지됐다.
아들은 절친의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아이들은 선거를 앞둔 주말 우리 집에 모여 선거 전략을 세웠고, 공약과 포스터 디자인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포스터 사진을 찍기 위해 옷을 바꿔가며 다양한 포즈를 취했고, 여러 디자인 가운데 최고의 작품을 골랐다. 아들의 절친은 평소에 '티니핑' 캐릭터 인형을 가방에 달고 다니던 것이 유명했다. 아이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캐릭터를 살려 '핑크혁신당'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포스터도 핑크색으로 예쁘게 꾸몄다. 나는 옆에서 툴 사용법과 밝기 조절 정도만 알려줬을 뿐, 모든 과정은 아이들이 스스로 해냈다. 어려워하면서도 재미있어하며 협력하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아이들의 선거 공약도 예전과는 달랐다. 단순히 "웃음이 가득한 학교를 만들겠다" 같은 막연한 약속이 아니라 "금요일마다 바나나 우유를 제공하겠다", "식수대에서 찬물이 나오게 하겠다", "휴대폰 충전함을 설치하겠다"처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내용이 많았다. 아이들은 친구들이 진짜로 원하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이어야 표를 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선거송도 직접 만들었다. 녹음한 선거송을 휴대폰 벨소리로 바꾸며 "이건 위법 아니야"라며 똑 부러지게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났다. 선거 기간 아이들은 친구끼리 편의점 1+1 상품도 나눠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작은 행동도 부정행위가 될 수 있다고 칼같이 지켜내는 모습에 내심 감탄했다.
결과는 드라마틱했다. 단 한 표 차이로 아들의 절친이 전교회장에 당선됐다. 아이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떡볶이 파티를 계획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지난 대선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는 선거 과정에서 과도한 비방과 의심스러운 공약들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그 어른들의 선거를 보고 배우며, 훨씬 성숙하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바로 이런 작은 실천에서 시작한다는 걸 아이들에게서 다시 한번 배운다. 초등학생들이 보여준 작은 민주주의가 반갑고 든든하게 느껴진다.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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