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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흥분하면 지는 것이다

2025-07-28 06:00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지구가 뜨겁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홍옥 사과보다 지구가 더 빨갛게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1942년 8월1일 기록한 40도가 76년 동안이나 기상 관측 사상 최고 더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더위하면 대구다. 분지 지형과 높은 습도가 만들어내는 대구 더위에 적응할 때쯤 전학 온 서울도 이제 39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한반도에서 더위를 피할 곳은 없어졌다.


지구 온난화로 날씨가 점점 뜨거워지는데 우리 인간 사회는 스스로도 발열하고 있다. 화나거나 짜증날 때 열받는다는 표현을 쓴다. 화가 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심박수 증가와 체온 상승이 일어난다. 이러한 분노를 억누르면 화병(火炳)이 된다. 화병을 예방하기 위해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면 괜찮은가.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이 화병에 걸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권력을 가진 지배층은 분노를 표출하고, 피지배층은 분노를 억누른다. 집에서는 가장이, 회사에서는 사장이나 회장이,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분노 표출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주 격노했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 극심한 분노나 노여움을 말하는 격노의 폐해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대통령의 격노로 젊은 군인의 억울한 죽음이 덮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이를 밝히기 위한 특검이 출범하였다.


"정치지도자들의 정당한 분노는 아름다운 일이다." '국부론'으로 잘 알려진 애덤 스미스가 또 다른 역저 '도덕감정론'에서 한 말이다. 중요한 것은 분노가 정당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당함은 중립적 방관자가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절제되고 조절된 말과 태도에서 나온다고 한다. 경험칙상 중도층은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할 줄 아는 지도자를 신뢰했다.


질의 중에 버럭 소리 지르며 목소리 데시벨 경쟁을 하는 국회의원. 법정에서 당사자나 변호사에게 그것도 모르냐며 면박을 주는 판사. 다 알고 있는데 부인하면 탈탈 털어서 먼지나도록 해주겠다고 겁박하는 검찰, 경찰, 국세청, 금감원, 공정위, 감사원 등 권력기관. 이들의 정당하지 못한 습관적 분노를 지켜보며 국민은 화병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흥분하지 마라. 흥분하면 지는 것이다." 얼굴이 쉽게 붉어지고, 목소리가 큰 필자에게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다. 어른 말씀에 틀린 것 없다고, 살면서 쌓은 크고 작은 실수의 대부분은 흥분을 조절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탄핵된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권력자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모두 분노 조절 실패와 연결되어 있다.


벌써 3번이나 연달아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취임하였고, 모든 권력기관에 법조인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만나 본 법조인 중에 가장 쉬운 상대는 쉽게 흥분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었다. 반면에 웃는 얼굴로 논리정연하게 조목조목 반박할 수 없도록 설득하는 상대가 가장 어려웠다. 더욱이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설득하는 경우에는 결과와 상관없이 존중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에서 민정수석에 임명된 봉욱 전 대검 차장검사의 분노에 대한 자기 관리는 소개할 만하다. 필자가 서울대 로스쿨에서 법조윤리를 강의하면서 그에게 검사의 직무윤리에 대한 특강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강의도 훌륭했지만, 정말 인상 깊었던 것은 검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화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모든 고위 공직자가 그처럼 분노를 조절할 줄 안다면 국민은 이 여름 더위도 견딜만할 것 같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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