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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메일] 역지사지: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기

2025-08-11 06:20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2025년 최근 방영된 tvN 주말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얼굴만 닮았을 뿐 모든 것이 다른 쌍둥이 자매가 서로의 삶을 바꾸며 진짜 사랑과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기획 의도로 제작됐다. 배우 박보영이 대조적인 쌍둥이 '유미지'와 '유미래'를 모두 연기하며, 단순한 체인지 스토리를 넘어 섬세한 인간 이해와 사회적 공감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미지는 고등학교 시절 유망한 단거리 육상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꿈을 접고, 고향에서 단기 아르바이트와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그는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는 말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자신을 다잡는다. 반면 유미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금융 공기업 기획전략팀에 입사해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지만, 선천적 심장병과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깊은 상처를 숨긴 채 완벽함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유미지는 삶을 포기하려는 미래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내가 너로 살아보고, 네가 나로 살아보는 게 어떨까?"


이 한마디로 시작된 삶의 교환은 두 사람의 현실을 완전히 뒤바꾼다.


유미지는 미래의 자리에 서자마자 깨닫는다. 직장 내 성추행을 은폐하는 조직의 침묵, 고개 숙이는 동료들, 그리고 미래가 느꼈을 고독이 유미지의 몸 안으로 스며든다. 그는 어느 날 분노 섞인 목소리로 외친다. "사슴이 사자한테 도망치면 쓰레기야? 돌고래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살려고 숨은 거야."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를 향한 일갈이었다. 유미래 역시 유미지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농촌의 들판, 허름한 장갑과 흙 묻은 작업복. 그곳에는 느리지만 무거운 시간과, 고단함 속에 피어나는 온기가 있었다. 소소한 자유와 인간적인 관계의 의미를 유미래는 처음으로 체감한다. 서로의 자리를 살아본다는 것은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구조 속에서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직접 겪는 일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알게 된다.


한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작품의 결을 더욱 깊게 만든다. 변호사 이호수는 과거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청력을 일부 상실했지만, 누구보다 타인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쓴다. 건물주 김로사(본명 현상월)는 타인을 위해 죄를 대신 뒤집어쓴 채 살아온 과거를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오래 걸리더라도, 너를 읽어주는 사람이 나타날 거야." 여기서 '읽어준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 척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품어주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공동체와 사회적 연대의 전제 조건이다.


드라마의 결말에서 유미지는 심리상담사를 꿈꾸며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유미래는 유미지의 자유로움 속에서 균형을 배운다. 호수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며 변화를 선택한다. 이들의 변화는 '자리 바꾸기'가 어떻게 사람을 성장시키고 관계를 재구성하는지를 증명한다.


상대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기본 이치다. 동양 고전에서 역지사지는 '자리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공자는 이를 군자의 필수 덕목으로 보았고, 맹자는 "측은지심은 인의의 단서"라고 했다. 유교에서 '서(恕)'의 덕목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실천 원리이며, 이것이 곧 역지사지의 핵심이다.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 리더십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리더는 구성원의 현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존재가 아니라, 그 현실 속으로 직접 내려가 함께 겪는 존재여야 한다. 이는 단순한 예의 차원을 넘어, 인식·감정·실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능력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반복되는 산재 사망 사고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고 모든 사망 사고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소년공 시절, 기계에 팔이 끼어 장애를 입은 산재 피해자였던 만큼, 이미 '그 자리에 서 본 자'로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당신 조직의 리더는 과연 어떠한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자리 바꾸기'의 상상력과 실행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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