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역할의 중요성과 그 무게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요즘 청소년들은 밝고 활달하며 자신감 있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들의 속마음은 겉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학교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내면에는 높은 스트레스와 불안, 낮은 자존감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비교로 인한 위축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 등이 그들의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많은 아이가 크고 작은 어려움을 홀로 감내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적이나 단기적인 성취가 아니라, 자녀의 정서적 건강과 마음의 안정을 먼저 살피는 일이다.
공자는 논어의 '양화편'에서 '성상근야, 습상원야(性相近也 習相遠也)'라고 했다. 사람의 타고난 성품은 비슷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배우고 자라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지금 청소년들이 자라는 환경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다. 예전에는 교실과 운동장, 마을 공동체가 성장의 무대였다. 이제는 스마트폰, 유튜브, SNS, 온라인 게임이 일상과 가치관 형성의 중심이 됐다. 학습, 여가, 인간관계 등 많은 부분이 디지털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들의 생각과 정체성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
플라톤은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영혼이 형성된다"라고 했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디지털 콘텐츠 소비는 단순한 취향 표현이 아니라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편향되거나 과도할 때 생긴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정서적 피로가 누적된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보며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날이 많고, SNS에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자존감이 흔들린다. "SNS에서는 다들 잘 사는 것 같아요. 저만 뒤처진 느낌이에요. '좋아요' 숫자에 따라 기분이 왔다 갔다 해요." 한 학생의 고백은 다수의 청소년이 얼마나 불안정한 정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성숙한 자아는 왜곡된 정보나 해로운 관계에 쉽게 휘둘릴 수 있다.
급속한 변화 속에서 부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단순히 '얼마나 오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가?'를 통제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아이가 무엇을 보고, 누구와 소통하며, 어떤 가치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자녀가 자주 시청하는 유튜브 채널을 함께 보며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관심사를 이해할 수 있다. 디지털 공간을 무작정 차단하기보다는, 자녀와 함께 합리적인 규칙을 만들고 자기조절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루소는 "자연 속에서 자유를 주되, 질서를 심어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지금 청소년에게 자연은 바로 디지털 세계다. 부모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녀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가이드가 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이다. 부모는 그들의 세계를 존중하며, 함께 탐색해 나가는 동반자여야 한다.
학업과 진로 문제 역시 청소년들에게 큰 부담이다. 요즘 아이들은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어떤 대학에 가야 할지, 무슨 직업을 선택할지 고민한다. 그러나 성급한 준비와 조기 결정이 언제나 유리한 것은 아니다. 이른 목표 설정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해칠 수 있으며, 정작 중요한 '자신만의 길'을 찾는 기회를 빼앗을 수도 있다. 자녀 스스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깊이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부모는 그 답을 대신 주는 존재가 아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사람이다. "목적지를 모른 채 떠난 항해에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라는 말처럼, 자기만의 방향 없이 살아가는 삶은 외부의 작은 풍랑에도 쉽게 흔들린다.
부모는 자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아이가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지지하고 믿어주는 버팀목이 돼야 한다. 부모의 삶은 말보다 훨씬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일상,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 실수했을 때 책임을 인정하는 용기 등은 자녀의 인격과 가치관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부모가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다루고, 크고 작은 실패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 자녀가 좌절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며 지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오늘날 부모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지만, 동시에 가장 숭고하고 가치 있는 책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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