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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교의 경영으로 읽는 세상 이야기] 차라리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쓰라

2025-10-15 06:00
서민교 대구대 명예교수·(전)총장직무대행

서민교 대구대 명예교수·(전)총장직무대행

최근 당정에서 쏟아진 금리 발언이 문제다. 대통령이 "고신용자의 이자 부담을 늘려 저신용자의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하자, 여당 원내대표도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는 역설적"이라 가세했다. '이자놀이' '전당포식 영업' 등 약탈적 금융 논란과 금융 약자 배려라는 측면에서 발언 취지는 이해되지만, 그 접근 방식은 문제가 많다.


첫째, 금리는 돈의 위험을 반영한 사용료다. 신용이 낮으면 빚을 갚지 못하거나 연체 위험이 크다. 따라서 더 많은 사용료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금융사의 약탈적 고금리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저신용=고금리, 고신용=저금리'라는 메커니즘 자체를 역설이라 하는 것은 시장의 근간을 부정하는 일이다. 또한 고신용자의 금리를 높여 저신용자의 금리를 낮추자는 주장은 무사고 운전자의 보험료를 올려 사고 다발 운전자의 보험료를 깎아주자는 것과 같다.


둘째, 금융은 복지 정책이 아니다. 금융을 복지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시장은 왜곡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정부의 취약계층 보호는 복지 차원의 재정지원과 함께 일자리 창출로 소득을 높여 취약계층이 스스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때 재원의 일부를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은행이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셋째, 고신용자를 역차별하고 저신용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 고신용자가 반드시 부자가 아니다. 소득이나 재산이 적더라도 성실하게 빚을 갚으며 신용을 관리해온 사람들이 저금리를 적용받는 것은 당연한 보상인데, 왜 이것을 역설적이라고 하는가?


넷째, 저신용자에게 무리하게 저금리를 적용하면, 은행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오히려 대출 문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취약 차주들은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게 되고, 선의로 시작된 정책이 정작 그 대상을 더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게 된다.


취약계층 금융 애로를 덜어주려는 정부와 여당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정책이 추진 동력을 얻으려면 합리적인 논거와 대안의 제시가 필요하다. 금리든, 배 가격이든 정부가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되도록 피해야 하며, 시장 원리를 무시한 경제정책은 필패라는 것이 경제학의 오랜 가르침이다. 당정의 금리 언급이 시장 원리를 가벼이 여기는 현 정부의 과도한 개입주의적 편향을 드러낸 건 아닌지 우려된다. 앞으로 금리 논란 같은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쓰려는 불행한 시도가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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