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골목 따뜻한 환대, 외국인들도 감탄
위생 문제에도 웃음과 배려는 대구의 매력
28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의 국수 골목이 활기를 띄고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겨울을 앞둔 늦가을. 지난 28일 점심 무렵 서문시장에는 찬바람을 막으려 패딩 깃을 세운 사람들이 북적였다. 평일임에도 골목은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최근 서울 광장시장의 '불친절·바가지'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대구의 대표 전통시장은 어떤 분위기인지 확인하고자 한국 생활 7년 차 외국인 크리스티안(35)와 함께 둘러봤다. 보다 솔직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칼국수 골목'. 노상 식당 조리대에서는 막 끓인 육수의 김이 낮게 번졌고, 면을 건져 올리는 상인들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좌석이 좁아 어깨가 스칠 만큼 붙어 앉았지만 손님들은 뜨거운 국물에만 집중한 채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골목을 따라 걷는 동안 들린 호객 멘트는 "여기 자리 있어요", "따뜻해요", "둘러봐도 똑같아요" 정도였다. 한 상인은 크리스에게 "컴온, 칼국수 베리 딜리셔스"라고 서툰 영어로 말을 걸기도 했다.
옆 손님이 몸을 조금 비켜주며 자리를 내주자 간신히 앉을 수 있었다. 메뉴는 칼국수·칼제비 5천원, 비빔국수·냉칼국수 6천원. 사진 메뉴판 아래에는 영어와 중국어 설명이 함께 적혀 있었다. 음식은 금세 나왔다. 스테인리스 그릇에는 김이 오른 칼국수가 가득 담겨 있었다. 크리스는 첫 입을 맛본 뒤 멈추지 않고 국물까지 비워냈다. 사장은 그 모습을 보고 면을 한 국자 더 덜어주며 "양이 부족했지?"라고 웃었다.
칼국수의 맛과 가격은 크리스에게 충분히 합격이었다. "5천원에 이런 한 끼가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다만 위생 평가는 냉정했다. 모든 조리 과정이 한 색의 고무장갑으로 처리되는 모습을 두고 "시장 특성은 이해하지만 완전히 위생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점도 아쉽다고 했다.
식사 도중 맞은편 좌판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커플이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박스를 받침 삼아 올린 쟁반이 간이 식탁이 됐고, 두 사람은 뜨거운 칼국수를 연신 들이켰다. 잉글랜드 출신 아담(22)과 웨일스 출신 하나(22)는 "어제 대구에 도착했는데, 호텔이든 시장이든 모두 친절했다"고 말했다. 칼국수에 대해서도 "양이 많고 먹기 편하다. 처음 보는 반찬도 맛있다"고 했다. 상인들이 서툴지만 먼저 영어로 말을 건네려 했던 점에 대해 "마음이 전해져 좋았다"고 했다.
골목을 빠져나올 즈음 크리스는 서문시장의 규모를 보며 "시장 진짜 크다. 끝이 없는 미로 같다"고 말했다. 후식으로 향한 호떡집 앞에는 이미 긴 줄이 서 있었다. 상인은 통로가 막히지 않도록 "조금만 옆으로 서주세요"라고 조용히 안내했다. 호떡을 맛본 크리스는 "한국에서 먹은 호떡 중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이어 들른 옛날과자 가게에서는 5천원어치를 담자 사장이 과자를 한 움큼 더 챙겨줬고, 크리스가 한국어로 감사 인사를 건네자 "한국말 잘한다"며 서비스를 한번 더 얹어줬다. 매대는 정돈돼 있었고 플라스틱 용기들도 깨끗했다.
28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은 외국인 아담(왼쪽)씨와 하나(오른쪽)씨가 칼국수를 먹고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몇 달 전 얼음 재사용 논란이 있었던 생선가게들도 살펴봤다. 전반적으로 단정했다. 갈치와 고등어는 얼음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고, 조기와 문어 등은 비닐로 덮여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주변 역시 어수선한 흔적 없이 정리돼 있었다. 한 상인은 "원래 이렇게 해왔다. 사건 이후 더 신경 쓰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모든 구역이 매끄러운 건 아니었다. 일부 노점 상인은 잠시 앞에 서 있자 "비켜요, 장사 방해돼요"라며 날 선 목소리를 냈고, 카드 결제를 묻자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안 돼요"라고 짧게 답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런 사례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호객행위가 적어 조용히 이동할 수 있다는 인상도 강했다.
서문시장은 최근까지 '한국관광 100선'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구를 방문한 외국인 선호도에서도 83타워, 팔공산 케이블카 다음으로 높은 순위다. 하지만 시장이 받아온 평가가 늘 좋지만은 않았다. 선거철이면 정치권이 시장을 찾았다. 때로는 다른 이슈를 덮으려는 방문도 있었다. 그러면서 서문시장의 일상이 정치 이미지로 비쳐졌고, 온라인에는 이를 조롱하는 글도 쏟아졌다. 한 상인은 "서문시장을 정치적으로 소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대구를 대표하는 시장 그대로 봐달라"고 말했다.
이지영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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