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2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리커브 여자 개인전 16강에서 임시현이 화살을 쏘고 있다. 연합뉴스
총욕약경(寵辱若驚)이란 말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대략 '칭찬이나 비난은 똑같은 것이니 그런 것에 휘둘리지 말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 경전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실천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사람인 이상 우리는 칭찬을 받으면 으레 기분이 좋아지고, 반대로 비난을 들으면 그만 분통이 터지고 만다. 그 와중에 가장 불행한 사례는 바로 전 국민적인 칭찬을 듣다가 갑자기 그것이 맹비난으로 전환되는 케이스일 것이다. 말 그대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급전직하하게 되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다. 당사자가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라면 모든 것을 감내하고 반성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별 것 아닌 일로 과한 비난을 받는 경우는 참으로 딱하지 않을 수 없다.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파리 올림픽 3관왕 임시현 선수는 최근 SNS에 잘 모르고 올린 한 표현 때문에 맹비난에 시달렸다. 임 선수는 곧 직접 사과문을 올렸지만, 사과문 자체가 또 네티즌들의 비위를 거스른 탓에 한 바탕 여진까지 치렀다. 고작 2003년생 어린 선수라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 일이었다. 난 유명인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지난 10년째 불특정다수의 대중에게 매일매일 리플을 받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힘든 일을 겪는 어린 친구들을 붙잡고 꼭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
첫째, 특정 시점에 악플이 홍수와 같이 달릴 때는 절대 그것을 붙잡고 하나하나 읽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은 처음 이런 일을 겪으면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악플들을 정독하게 된다. 스스로 대범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그러나 나를 포함한 주위의 수많은 내 직종의 사람들을 보아온 바, 쏟아지는 악플을 이겨낼 수 있는 강철 멘탈의 소유자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정 시점까지는 버티는 것처럼 보여도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의 멘탈은 여지없이 '피로 파괴'되는 선박처럼 쩍 갈라져 두 동강이 난다. 그러니 악플은 어떠한 경우에도 읽지 마라. 절대로.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플 사태를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된다.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이상, 최소한의 책임감은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때는 동료를 적극 활용해 악플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가족이나 연인 등은 안 된다. 그들 또한 악플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동료는 3자이므로 악플을 읽어도 충격을 크게 받지는 않으며, 쓸데없는 악감정이 깨끗하게 휘발된 사태의 핵심만을 제대로 전달해줄 수 있다.
셋째, 악플이 달린 원인까지 파악했다면 이제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또 건조하게 사과해야 한다. '이게 사과까지 할 일인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사과문을 통해 결백 호소, 동정 유도, 억울함 설명 같은 것을 시도해서도 안 된다. 나아가 악플러들과 '기싸움'을 벌이거나 '촌철살인' 같은 것을 슬쩍 집어넣는 것은 최악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은 대중과 싸우는 사람'이라는 명언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을 공격하는 대중에게 더 이상의 빌미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의연한 태도는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또 다른 대중을 내 편으로 만들어 결국은 역풍을 불게 한다.
나는 대한체육회나 각 종목 협회 차원에서 이런 사태를 대비한 프로토콜을 만들어서 앞으로 어린 선수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적절하게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한다. 정글과 같은 SNS 시대에 '총(寵)'에 우쭐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욕(辱)' 때문에 좌절하는 것만은 어른들이 잘 관리해 주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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