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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경남 합천 황매산] 금빛 물결 일렁이는 만추의 속삭임

2025-11-06 20:03
황매평전은 1990년대까지 목장이었다. 낙농업이 사라진 자리에 억새가 태어나 번성했고 지금 황매평전의 억새군락이 40㏊에 이른다.

황매평전은 1990년대까지 목장이었다. 낙농업이 사라진 자리에 억새가 태어나 번성했고 지금 황매평전의 억새군락이 40㏊에 이른다.

낮고 조용하게 가슴을 연 휴게소를 통과해 평원으로 들어선다. 물줄기 하나가 골 따라 흘러오고, 물가에는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는 수목들이 늘어서 있다. 방금, 눈부신 은빛 억새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들은 느티나무와 팥배나무와 단풍나무에 둘러싸인 억새들이다. 그러나 먼 고원을 가득 뒤덮은 억새들은 이미 누렇다. 어제의 바람이 억새의 은빛 까락을 안고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다. 순간, 억새 대궁이 금빛으로 번득이며 바람과 눕는다. 언제나 자신만의 다정함을 모두 보여 주려고 하는 숲 때문에 오늘이 어제가 아니어도 좋다.


황매평전 초입의 잔디광장. 황매산 군립공원 입체 사인 뒤로 단풍과 어우러진 억새 군락지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황매평전 초입의 잔디광장. 황매산 군립공원 입체 사인 뒤로 단풍과 어우러진 억새 군락지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황매산은 높이 1천113m의 고봉이다. 정상으로부터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 아래 해발 800-900m에는 광활한 고위평탄면이 펼쳐져 있는데 이를 황매평전이라 부른다.

황매산은 높이 1천113m의 고봉이다. 정상으로부터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 아래 해발 800-900m에는 광활한 고위평탄면이 펼쳐져 있는데 이를 '황매평전'이라 부른다.

◆ 황매평전


황매산(黃梅山)은 합천과 산청의 경계에 자리하는 높이 1천113m의 산이다. 소백산맥에 속하는 고봉으로 북쪽으로는 덕유산과 가야산, 남서쪽으로는 지리산의 고봉준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정상으로부터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 아래 해발 800~900m에는 광활한 고위평탄면이 펼쳐져 있는데 이를 '황매평전'이라 부른다. 원래 이 일대는 산철쭉 자생지였다고 한다. 오랫동안 화전민들이 살았고 그때는 '새터분지'라 불렀다 한다. 그러다 1980년대 정부의 축산 장려 정책으로 이곳은 대규모 목장이 되었다. 소와 양들은 독성이 있는 철쭉만 남기고 잡목과 풀을 모두 먹어치웠다. 목장은 1990년대까지 운영되다 문을 닫았다. 낙농업이 사라진 자리에는 억새가 태어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억새와 철쭉은 번성했다. 지금 황매평전은 억새군락이 40㏊, 철쭉 군락이 30㏊에 이르며 봄, 가을마다 축제가 열린다.


축제는 지났고 억새꽃의 절정도 지났다. 입동의 황매산에 눈을 꼭 감게 하는 눈부신 은빛 물결은 없다. 하나 때때로 억새 숲이 금빛으로 일렁이면 마음을 진정시킬 때처럼 가슴을 쓰다듬는다. 군데군데 떡갈나무로 장식된 이 광활한 평원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어떤 길은 말랑말랑하고 깨끗하다. 어떤 길은 딱딱하고 따뜻하다. 또 어떤 길은 푹신푹신하고 촉촉하다. '억새관람 안내도'에는 2개의 코스가 소개되어 있다. 억새군락지의 가운데로 나있는 A코스는 1.35㎞, 군락지의 외곽을 크게 도는 B코스는 2.60㎞다. 어떤 길이어도, 아무 길이어도 상관없다. 얼른 거닐고 싶고, 보다 빠른 다리로 머물고 싶은데 쨍한 하늘,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태양, 따가운 햇살, 선득한 바람, 마른 풀 내음 때문에 느슨히 걷고 더디게 멈춘다.


황매산 무학샘에서 발원한 가회천이 휴게소를 둥글게 지나며 흐른다. 가회천은 신등천이 되었다가, 양천이 되었다가, 남강이 되었다가, 낙동강이 된다.

황매산 무학샘에서 발원한 가회천이 휴게소를 둥글게 지나며 흐른다. 가회천은 신등천이 되었다가, 양천이 되었다가, 남강이 되었다가, 낙동강이 된다.

황매산 가회천 발원지 일대에 작은 연못과 습지수림대가 형성되어 있다. 태고의 시간처럼 환상적인 광경이다.

황매산 가회천 발원지 일대에 작은 연못과 습지수림대가 형성되어 있다. 태고의 시간처럼 환상적인 광경이다.

합천의 첫물, 무학샘. 무학대사가 무학굴에서 수행하던 때 이 샘물을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옛 화전민과 목장 농가의 식수로도 활용되었다.

합천의 첫물, 무학샘. 무학대사가 무학굴에서 수행하던 때 이 샘물을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옛 화전민과 목장 농가의 식수로도 활용되었다.

◆ 고원의 냇물을 따라


냇물을 따라간다. 가볍고 편안하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자유롭게 서 있는 잔디광장을 지나고, 태고의 시간처럼 환상적인 습지수림대를 경건하게 스친다. 길 가의 작은 꽃밭에는 투구꽃, 자주쓴풀, 층꽃나무, 고추나물, 미역취, 물레나물, 솔체꽃, 플록스, 목향유, 오레가노, 산꼬리풀, 꽃범의 꼬리가 알쏭달쏭 살아간다. 목수국 정원이 펼쳐진다. 꽃들은 둥근 꽃차례 그대로 말라 탁한 갈빛으로 바랬다. 오래 맑고 어여쁘느라 애썼다. 수국 정원을 지나면 은백색 잎의 보리수나무가 휘청거린다. 구릉진 고원의 바람 속에서 보리수나무는 문득 크레타의 올리브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그런가 보다. 몇 번이나 들었다. "엄마야 꼭 올리브 나무 같다야." 팥알 같은 열매들이 풍년이고 만추다. 사람들은 보리수나무에 바짝 매달려 열매를 따먹고, 까르르 즐거운 웃음이 새처럼 가지를 흔든다.


작고 동그란 샘이 나타난다. 황매산 850고지, 이곳이 가회천의 발원지라 한다. 샘가에 '합천의 첫물, 무학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무학샘'은 무학대사를 가리킨다. 고려 충숙왕 14년인 1327년 합천 대병면 성리에서 태어난 그는 황매산 정상부의 무학굴에서 수행하였는데, 그때 이 샘을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옛 화전민들도 이 샘을 사용했고, 목장이 운영되던 시절에는 농가 식수로도 활용되었다. 황매의 가회천은 합천 가회면 함방리에서 신등천이 되었다가, 신안면 장죽리에서 양천이 되었다가, 산청군 원지에서 남강이 되었다가, 경남 의령에서 낙동강이 된다. 무학샘이라는 이름보다 '합천의 첫물'이라는 수식이 근사하다.


전망 좋은 해발 910m의 고지는 별빛언덕이다. 여기서 방탄소년단의 리더인 RM이 솔로음반 뮤직 비디오를 찍었다고 한다.

전망 좋은 해발 910m의 고지는 '별빛언덕'이다. 여기서 방탄소년단의 리더인 RM이 솔로음반 뮤직 비디오를 찍었다고 한다.

평탄면에서 가장 높은 능선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길을 경계로 오른쪽은 산청, 왼쪽은 합천이다.

평탄면에서 가장 높은 능선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길을 경계로 오른쪽은 산청, 왼쪽은 합천이다.

◆ 별빛언덕에서 하늘계단으로


억새 숲으로 들어선다. 앞을 알 수 없는 좁은 오솔길을 헤치며 연보랏빛 액자를 가진 하늘만 보고 간다. 내내 잎이 스쳐도 아프지 않다. 전망 좋은 해발 910m의 고지는 '별빛언덕'이다. 여기서 방탄소년단의 리더인 RM이 솔로음반 뮤직 비디오를 찍었다고 한다. 드라마 '킹덤'과 '미스터 선샤인' 등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별빛언덕'에서 정상을 바라보며 서쪽으로 향한다. 평탄면에서 가장 높은 능선에 다다르면 오른쪽은 정상, 왼쪽은 황매평전에서 가장 유명한 산불감시초소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정상을 오르는 무시무시한 계단을 모질게 외면하고 남쪽으로 향한다. 능선 따라 난 이 길을 경계로 서쪽은 산청이고 동쪽은 합천이다. 산청에서 세운 황매산성이 멀고 먼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축성되었다는 황매산성은 조금 더 남쪽인 모산재 정상부에 위치한다. 이곳의 황매산성은 드라마 '지리산' 촬영을 위해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혹 서문지는 아닐까 곰곰 생각해 본다. 산성에서 능선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화강암 돌길인데 그 모습이 꼭 성벽 길처럼 생겼다. 울퉁불퉁한 돌길이 다시 포근해지면 곧 해발 1천m에 위치한 초소 전망대다. 날이 좋으면 남해까지 보인다는데 사실일까. 오늘 남해는 보이지 않지만 온 세상이 다 보인다.


황매산성이 먼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다. 드라마 지리산 촬영을 위해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은하수 보기 좋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황매산성이 먼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다. 드라마 '지리산' 촬영을 위해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은하수 보기 좋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황매평전에서 가장 유명한 산불감시초소 전망대. 해발 1천m에 위치해 있으며 아래로 하늘계단이 이어진다.

황매평전에서 가장 유명한 산불감시초소 전망대. 해발 1천m에 위치해 있으며 아래로 하늘계단이 이어진다.

전망대 앞에서 '하늘계단'이 가파르게 남동쪽으로 내려간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들이 올라온다. 허리에 두른 퐁신퐁신 한 외투가 파닥파닥 리듬을 탄다. 서먹하지만, 스치는 얼굴들에게 다정한 감정과 우정을 느낀다. 저 아래 휴게소 건물이 보인다. 휴게소의 이름은 '철쭉과 억새 사이'다. 건물은 '합천의 첫물'이 흐르는 모양에 맞춰 반원형이고, 주변 풍광을 가리지 않으려 최대한 몸을 낮춰 단층이다. 건물 중간 중간에 허(虛)를 두어 풍경과 길이 통하도록 했고 건축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에 동화되는 콘크리트와 철과 유리를 썼다.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한국건축가협회상 등 상 많이 받은 건축물이다. 지역주민이 만든 영농조합에서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건축비의 절반가량을 부담했다고 한다.


먼데서 보니 정말 철쭉과 억새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음, 철쭉과 억새 사이에는 겨울이 있고, 여름이 있고, 휴식이 있고, 또 저기 금빛으로 그늘진 비탈을 휘청휘청 전진하는 부부와 딸이 있다. 남편을 지탱한 아내의 한 손이 연신 남편 입가를 닦아내는 동안 딸은 모든 짐을 지고 천천히 보조를 맞춘다. 이것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랑 같은 무언가가 사이를 가로질러 빛난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12번 광주대구고속도로 고령IC로 나간다. 33번 합천대로를 타고 가다 금양교차로에서 합천읍내 방향으로 간다. 제2합천교를 지나자마자 우회전해 합천영상테마파크 방향으로 간다. 영상테마파크를 지나 직진하면 합천댐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회양삼거리다. 진주, 황매산군립공원 방향으로 좌회전해 황매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공원 입구다. 계속 올라가 해발 850m의 정상주차장이나 그 아래 은행나무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황매평전이 바로 목전이라 남녀노소 부담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 공원입구에서 출차 체크를 하며 후불제다. 비수기 기준 기본 4시간에 중, 소형은 4천원, 대형은 1만원, 4시간 시간당 1천원이 가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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