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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새벽 배송은 죄가 없다

2025-11-13 06:00
이은경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이은경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지난 8월, 쿠팡 시흥 캠프에서 포장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쓰러져 숨졌다. 부인은 같은 현장에서 일했지만, 남편이 쓰러지던 순간에도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 누가 쓰러졌다는 소리에 신경이 쓰였지만, 작업이 밀리면 욕을 먹겠다는 생각에 계속 일을 했다고 한다. 뒤늦게 알고 보니 남편이 죽어있었다.


쿠팡에서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의 수는 전체 산업 현장 평균의 10배가 넘는다. 배송 트럭 안에서, 물류센터에서 '모두 벼랑 끝에 있는 기분'으로 '개처럼 죽을 듯이 뛰'다가 죽음을 맞았다, 일주일째 잠도 거의 못 자고, 폭우와 급류에 휩쓸리며, 1주일 63시간, 1시간에 20곳 이상 물건을 포장하고 배달한 사람들이었다.


일상의 재난이 되었으나, 쿠팡의 시스템은 멈추지 않는다. 개인적인 문제, 지병, 외부 업체 소속. 죽은 이들에 대한 쿠팡의 변명은 한결같고,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부인해 본들, 결과와 본질은 명확하다. 살고자 나온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것. 그건 일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는 새벽 배송을 포함하여.


새벽 배송 금지가 논의되자 여론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쿠팡의 변명처럼, 본질을 외면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맞벌이 부부, 워킹맘은 어쩌라고', '새벽 배송은 생활 필수 인프라이자 공공재', '소비자가 호구인가', '장사 접으란 말?'과 같은 소비자와 자영업자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택배 노동자도 불만이다. 이들의 현실은 소비자가 겪어야 할 불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새벽 배송 그걸로 먹고 산다', '우리가 일하겠다는데 대체 왜?', '쿠팡은 중소기업 평균보다 좋은 일자리다'


노동자 건강권 보호라는 쟁점은 사라지고, 새벽 배송을 유지할 것이냐 없앨 것이냐 찬반의 선택지만 남았다. 건강과 소득, 규제와 자유, 소비와 윤리라는 사회적 고민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런 논쟁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틀렸다.


인간이 만든 사회는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자유'와 '선택'이라는 논리 아래 쉽게 도덕과 법의 한계를 넘어서면 안 된다. 장기밀매, 매춘과 마약은 그렇게 금지되었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 몸을 상품으로 내놓는 순간 인간은 수단이 되고 존엄은 포기된다.


무엇보다 그들의 상당수는 자유로운 계약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사실상 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강요된 생존이다. 그 결과 개인은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없고, 사회는 불평등과 구조적 착취가 일상화된 극단의 모습이 될 것이다. 돈의 논리가 인간의 경계를 넘는 순간, 인간의 존엄은 사라진다.


새벽 배송 논쟁을 계기로 인간과 노동과 삶에 대한 좀 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소비자는 누리는 서비스에 응당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며, 기업은 충분한 임금과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국가는 위험하고 착취당하는 노동 환경을 바꾸는 제도를 만들고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구조를 바꿔서 생명을 지키면 된다.


새벽 배송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죽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은경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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