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걸그룹 뉴진스가 소속사 복귀를 선언했다. 뉴진스와 소속사 어도어/하이브 사이의 분쟁이 뉴진스 완패로 일단락된 것이다. 어도어는 대형기획사인 하이브가 만들어 민희진 프류듀서에게 맡긴 자회사다. 민희진이 어도어에서 프로듀싱한 뉴진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 지난해에 하이브는, 민희진이 어도어 또는 뉴진스를 탈취하려 한다며 감사와 소송을 진행했고 민희진의 카톡 메시지 증거 등을 제시했다. 민희진은 억울하다며, 부당한 감사였고 하이브가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뉴진스는 어도어와의 신뢰가 파탄났다며 전속계약이 해지됐다고 선언했다. 이에 어도어/하이브는 뉴진스 활동금지 가처분과 전속계약 유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잇따라 하이브의 손을 들어줬다. 뉴진스 활동금지 가처분을 인용했고, 뉴진스의 이의제기도 거듭 기각했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계약 유효확인 본안 소송의 결과도 뉴진스의 패배였다. 법원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판결문들이 나왔는데 요약하면, 민희진이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자신이 어도어를 독립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며 '어도어와 멤버 통합 구조의 기초를 파괴하는 입장에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민희진이 탈취 기도를 한 것이 맞고, 뉴진스와 어도어의 신뢰관계를 파괴한 것은 소속사가 아닌 민희진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본안 소송 판결에선 민희진이 독립 모의를 했다며 그 근거로 '민 전 대표의 카카오톡 대화 내역에 의하면'이라고 적시했다. 민희진은 카톡 메시지 증거가 조작이고 부당한 감사로 취득했으니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그 메시지를 정당한 증거로 본 것이다.
가처분 인용에 대한 뉴진스의 항고를 기각하면서 재판부는 '전속계약을 준수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판시했다. 바로 이것이 이 사태를 케이팝 업계가 주목하는 논점이다. 소속사에서 아티스트와 계약하고 프로듀서에게 프로듀싱을 맡겼는데 그 과정에서 프로듀서와 아티스트가 유착해 계약을 파기하는 행위가 정당화된다면 케이팝 업계의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 이번에 뉴진스는 소송이나 위약금 지급 등 정당한 절차 없이 말로만 계약해지를 선언했는데, 이런 식이면 모든 계약이 무의미해진다. 우리 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다.
놀라운 건 일부 언론, 변호사, 누리꾼 등이 민희진 뉴진스의 말만 듣고 뉴진스를 지지했다는 점이다. 뉴진스 측은 주장하고 하이브는 증거를 제시했는데 사람들은 하이브를 비난했다. 뉴진스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선언했을 때도 그것이 '뉴진스의 묘수'라면서 옹호했다. 우리 사회의 합리성과 윤리의식이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태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계약을 지켜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은 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하이브와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집단 공격을 퍼부어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하이브가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는 황당한 루머를 퍼뜨리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만연하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케이팝 업계의 질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과거엔 주로 기획사들이 문제였다. 그래서 여전히 기획사를 불신하다보니 이번에 덮어놓고 소속사를 비난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케이팝 스타가 국제스타가 되면서 권력이 커졌고 기획사가 대형화하면서 일선 프로듀서와 아티스트가 유착해 소속사를 흔들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러한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뉴진스 사태가 일깨웠다. 시민사회 차원에선 말과 인상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증거로 판단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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