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추석을 앞둔 9월26일, 우체국쇼핑에서 평소 고마운 분들께 보낼 선물을 주문했다. 소소한 먹거리를 고른 뒤, 받아 보실 분들의 밝은 표정을 미리 그려보기도 했다. 내가 주문한 물건이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도착하는지, 품질은 괜찮은지 확인할 겸 내게도 하나 보냈다. 그런데 한 달 보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물건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물건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왜 늦는지, 언제 배달되는지, 환불은 가능한지조차 알 수 없는 채로 그저 기다리고만 있다는 점이다.
주문 당일 저녁,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 소식은 들었지만, 그 영향이 인터넷 우체국까지 미칠 줄은 몰랐다. 국가적 재난이니 일정 부분은 소비자가 감내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달 보름이 지나도록 안내 문자 한 통 받지 못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 불편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답답한 마음에 우체국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지만, 무심한 ARS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인내심을 시험했다. 어렵게 연결된 상담원에게 주문 번호를 알려주자 돌아온 말은 '죄송합니다. 저희도 알려드릴 정보가 없습니다'였다. 고객센터조차 아무런 안내를 하지 못한다면, 소비자는 어디에서 답답함을 풀어야 한단 말인가.
궁금한 마음에 우정사업본부 누리집을 찾아보니, '우체국쇼핑 재도약을 위한 대규모 할인 행사' 보도 자료가 눈에 띄었다. 화재로 운영이 중단되어 피해를 본 중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한 행사로, 소상공인의 회복과 재도약을 응원하는 상생의 장을 마련했다는 내용이었다. 좋은 취지다. 우정사업본부 본부장 직무대리는 '국민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참여'를 호소했다.
그러나 보도자료와 공지 사항을 아무리 찾아봐도 불편을 겪은 국민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우체국쇼핑 채팅 상담 창에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9월26일)로 인해 일부 우편서비스 이용 및 우편물 조회가 제한되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복구시간은 확실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최대한 빠르게 복구하겠습니다'라는 무표정한 안내문만 덩그러니 있었다.
무엇을 양해하라는 말인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겠으니 그리 알아라'라는 말인지, '화재 사고인데 어쩌라고?'라는 말인지. 주문할 때 즉각 반응하던 태도와는 전혀 달랐다. 한 달 넘게 이어진 기다림 끝에 남은 것은 허탈감과 배신감이었다. 추석 선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받아야 할 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우체국에 대한 불신감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물건이 아니라 그 과정을 대하는 '태도'다. 시스템 오류보다 관계자의 무감각이 더 문제라는 말이다. 사고가 나더라도 고객에게 상황을 알리고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우체국쇼핑은 사설 온라인몰이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가 운영 주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브랜드이자,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가 서비스다. 그렇다면 최소한 복구 상황 공지, 환불 절차 안내 등은 기본이어야 하지 않을까.
'관심'을 보이고 '참여'할 국민이 바라는 것은, 문제 상황에서 관계자가 보이는 책임 있는 태도, 그리고 '당신의 불편을 알고 있다'라는 최소한의 소통이다. 즉각적인 소통과 투명한 정보 공개, 복구를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그 첫걸음일 것이다. 불편은 참을 수 있어도, 무책임과 불통은 참기 어렵다. 우체국이 진심 어린 태도로 국민을 대할 때 국민도 마음을 다시 열 것이다. 시스템 복구만큼 시급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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