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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지방소멸, 누가 만들고 있나

2025-11-24 06:00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최근 한 분에게서 "소멸하는 농촌에 엄청난 돈을 투입할 것이 아니라 인근 도시로 이주시키고 그 지역은 자연공원으로 만드는 것이 낫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러한 말은 통계청의 2024년 합계출산율 0.72명이라는 수치와 맞물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불안과 체념을 더욱 부추긴다. 하지만 농촌은 쇠락해가는 곳이 아니라 도시민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생명의 터전이다. 농촌을 살리지 않고는 건강한 도시도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말 지역은 소멸될 운명인가, 아니면 소멸하도록 만들어지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방소멸은 단순한 인구 감소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는 대도시 중심의 수탈 구조와 지역차별 체제가 지방소멸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창출된 가치가 수도권과 대도시로 끊임없이 유출되는 구조적 불균형이 지방쇠퇴를 낳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 청년이 떠나고, 산업이 무너지고, 공동체가 약화되는 현상은 모두 이러한 구조적 수탈의 결과다. 그럼에도 국가 정책은 지역 쇠퇴의 원인을 '인구'라는 단일 지표로 단순화해왔다. 이러한 관점은 '마스다 보고서(2014)'가 제시한 지방소멸 프레임에 따른 것이다. 마스다는 20~30세 여성 인구 감소를 기준으로 '소멸 가능성 도시'를 지정하고, 대도시 중심의 집중 투자를 주장했다. 즉, 지방은 국가발전을 위해 '정리·축소'해야 할 공간이 된 셈이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우리 사회에 무비판적으로 유입되었다는 점이다. 인구소멸 지수는 저출산과 청년 유출이라는 제한적 통계를 근거로 '소멸위험지역'을 선언했고,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이 지정되었다. 이렇게 지방소멸은 하나의 '사회적 사실'처럼 굳어졌지만, 구조적 수탈과 지역불평등은 베일에 가려졌다.


한국의 지역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수도권 중심체제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대기업이나 대학 등 핵심 자원들은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되었고, 농촌과 중소도시는 쇠퇴를 '자연현상'처럼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았다. 결국 지역의 사회경제적 유출이 청년층 이탈을 낳았고, 지역이 '소멸 위험지역'으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 구조를 성찰하기보다, 지방소멸 담론을 오히려 '통치수단'으로 활용했다. 소멸지수는 단순하고 자극적이어서 정책수단으로 편리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지방정부조차 이 프레임에 호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북 의성군 사례처럼, 지자체는 '소멸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인구 늘리기, 대기업이나 산업유치 경쟁에 매달리고 있다. 1조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의 확보 경쟁은 지방 간 갈등을 심화시켜 결국 중앙 집중화와 대기업 의존성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지방소멸을 말할 때 지역 주민은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문제는 지방의 '인구'가 아니라 주민의 '자치 권리'가 없다는 것, 그리고 청년 유출이 아니라 청년을 떠나게 만드는 '구조'에 있다. 더구나 지방 소멸은 도시민의 건강과 안전망이 붕괴되는 도시의 생존 문제이다. 기후위기 시대 농촌은 도시의 푸드 시스템과 K-푸드 산업을 떠받치는 새로운 블루칩이며, 농촌의 회복 없이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불가능하다. 과거의 토건식 개발이나 대기업 자본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민주적 자치기반을 회복할 때만이 비로소 지역이 살아난다. 지방소멸은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만들어져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는 힘은 결국 지역 주민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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