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내고 다시 만든다”…선천성 기형·중증 외상 환자에 새 길을 여는 기술
하루 1㎜의 기적…수개월간 자라나는 ‘새 뼈’의 원리
상업화 논란 속에서도 원칙 지킨 골연장 수술의 기준
러시아 쿠르간·볼티모어에서 대구까지, 김 학회장의 집념
변형교정 분야의 미래를 말하다…“젊은 의사들이 다시 뛰어들게 만들겠다”
김성중 대한골연장변형교정학회장( W병원 정형관절외상센터장)이 골연장·변형교정 분야의 향후 학회 운영 방향과 수술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김성중 대한골연장변형교정학회장( W병원 정형관절외상센터장)이 골연장·변형교정 분야의 향후 학회 운영 방향과 수술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정형외과 수술에서 뼈는 보통 맞춰 붙이는 대상이다. 부러진 부위를 맞추고 철판과 나사로 고정하는 것이 교과서적 치료다. 그러나 김성중 W병원 정형관절외상센터장(원장)은 "필요하다면 뼈를 잘라, 다시 길게 만들어 붙인다"고 했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잘려 나간 환자, 선천성 기형으로 발을 땅에 딛지 못하던 아이, 양말조차 벗기 힘들어하던 단중족지증(짧은 발가락) 환자가 그의 수술대에서 새로운 다리와 발을 얻는다. 김 센터장은 최근 대한골연장변형교정학회장에 취임했다. 대학이 아닌 민간 종합병원 원장이 이 학회 수장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골연장은 진행형
골연장·변형교정 수술의 뿌리는 러시아 시골 도시 쿠르간이다. 일리자로프 박사가 전쟁 부상자와 공장 노동자의 골절, 만성 골수염을 고치고자 고안한 외고정 장치에서 시작됐다. 뼈를 인위적으로 절골한 뒤, 링 모양 금속틀로 하루 1㎜씩 서서히 벌려 새 뼈가 자라게 하는 방식이다.
김 학회장은 전공의 시절 우연히 관련 증례를 접한 뒤 "기존 정형외과 수술로는 도저히 손댈 수 없던 환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충격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2002년 러시아 쿠르간 일리자로프센터에서 3개월간, 이듬해 미국 볼티모어 사이나이병원 국제사지연장센터에서 1년간 연수를 받았다.
"러시아에서는 언어도 통하지 않고 수술 환경도 열악했지만, 믿기 힘든 케이스들을 매일 봤다"며 "볼티모어에서는 그 기술이 체계적인 이론과 워크숍으로 정리돼 전 세계 의사들에게 전파되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누군가는 이 힘든 분야를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절단 일보 직전 다리, 10㎝ 뼈 새로 만들어 걷게 해
골연장·변형교정 수술이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등장하기 때문이다. 김 학회장이 들려준 사례도 대부분 그렇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로 종아리뼈가 산산이 부서진 40대 여성은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때 "차라리 의족이 낫지 않겠냐"는 얘기까지 들었다. 혈관·신경은 가까스로 연결했지만 뼈는 5~10㎝ 가까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감염이 심한 부위를 과감히 잘라내고, 남은 뼈를 절골한 뒤 외고정 장치로 서서히 끌어올린다.
"하루 1㎜씩, 몇 달 동안 뼈를 늘린다"며 "처음엔 철제 틀에 둘러싸인 다리를 보고 가족들도 놀라지만, 늘어난 공간을 새 뼈가 채우고 결국 환자가 자기 발로 걸어 나가는 걸 보면 '이 수술을 그만둘 수는 없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키 키우기 수술, 돈 되는 수술로만 보면 위험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에서 '키 키우기 수술'이 상업적으로 홍보되면서 골연장술이 도마에 오른다. 김 학회장은 이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원칙적으로 골연장술은 교통사고, 종양, 선천성 기형, 왜소증처럼 기존 치료로는 답이 없는 경우에 써야 한다. 충분한 경험 없이 따라 하는 병원이 생기는 게 가장 걱정이다. 뼈가 안 붙거나 신경 마비가 오면 환자는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도 미용 목적 수술을 "아주 예외적인 경우, 오랜 상담 끝에 10건 남짓 시행했을 뿐"이라고 했다. "키 몇 센티를 위해 건강한 뼈를 일부러 부러뜨리는 건, 외과의로서 늘 망설이는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젊은 의사들이 매력을 느끼게
대한골연장변형교정학회는 올해부터 영문 약칭 'ASAMI Korea'를 떼고 정식 명칭을 앞세우기로 했다. 특정 기구와 인물 이름에 의존하던 학회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은 변형교정 분야를 포괄하겠다는 의지다. 김 학회장은 가장 먼저 학회 운영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일에 나선다.
"요즘 학회는 모두 법인으로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 부스비·후원금이 개인에게 흘러가면 안 되고, 재정도 공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우리 학회도 이미 법인 전환을 마쳤고, 상근 사무국 대신 대학병원 비서를 파트타임으로 고용해 최소 비용으로 행정을 꾸리고 있다"고 했다.
그의 임기 목표는 뚜렷하다. 첫째는 교육이다. 학회 차원의 연수강좌와 워크숍을 늘려 젊은 정형외과 의사들이 실제 기구를 만져보고 골연장 원리를 몸으로 익히게 한다는 구상이다.
"작년 연수강좌에서 가짜 뼈에 직접 핀을 박고 링을 조립해보게 했더니, 전공의들이 '이런 수술이 있는 줄 몰랐다, 나중에 꼭 배우고 싶다'고 했다"며 "그런 경험이 쌓여야 이 분야를 맡을 후배가 생긴다"고 했다.
둘째는 학문적 기반이다. 학회는 현재 영어 교과서를 참고해 국내 최초의 '골연장·변형교정 한글 교과서' 발간을 준비 중이다. 김 학회장은 "20년 넘게 쌓인 경험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세대가 바뀔 때마다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장기 목표도 있다. 그는 "인도·이탈리아·호주·영국은 국제 ASAMI 학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한국은 아직 한 번도 못 했다"며 "회원 수가 늘고 저변이 넓어지면 언젠가 서울이나 대구에서 세계 석학을 초청해 국제학회를 여는 것이 학회 숙원"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힘든 수술
골연장·변형교정 수술은 고된 작업이다. 수술 시간이 길고, 외고정 장치를 차고 수개월을 버텨야 하는 환자와 함께 의료진도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 경영측면에서 다른 인기 분야보다 유리한 것도 아니다.
"미세수술로 잘린 손가락을 밤새 붙이는 의사들처럼, 골연장은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수술이 아니다. 하지만 한 번 제대로 성공했을 때 환자가 보여주는 변화는 어떤 수술과도 비교하기 힘들다"며 "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던 분이 다시 직장으로, 학교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이 수술을 계속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는다"고 했다.
이어 그는 "젊은 의사들이 이 분야를 '힘든데 꼭 필요한 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형외과에서 골연장과 변형교정은 아직도 미개척지다. 대학이냐, 수도권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환자 곁에서 얼마나 오래, 얼마나 성실하게 붙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앞으로 의사들을 북돋우는 울타리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강승규
사실 위에 진심을 더합니다. 깊이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