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룡 교수<경북도 제공>
"의료의 중심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의학은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매 순간이 절박하다. 40년간 뇌종양 수술이라는 가장 험난한 의료 현장을 지켜온 김오룡 K-과학자(영남대학교 명예교수)가 한결같이 강조해온 원칙이다. 생명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의사의 책임을 가장 엄격하게 묻는 분야, 그가 선택한 신경외과는 당시 의사들조차 기피하던 고난도의 영역이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았고, 묵묵히 개척한 길은 한국 뇌종양 수술과 연구의 한 축을 세우는 기반이 됐다.
총장·기관장이 아닌, 다시 '의사이자 과학자'의 자리로 돌아온 그는 이제 경북의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K-과학자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경북 북부의 의료 공백 해소, 중증 응급체계 구축, 지역 의사 양성 등 그의 전문성과 경륜은 경북이 직면한 의료 불균형 문제 해결의 핵심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역 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문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가운데, 그가 지닌 임상 경험과 정책 감각이 더욱 절실해진 이유다.
◆ 뇌종양 수술 1천800건… 한국 신경외과의 토대를 세우다
대구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경북대 의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모두 마친 뒤, 1988년 영남대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만 해도 뇌종양 수술은 극히 위험하고 장비도 열악해 의사들이 기피하던 분야였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순간의 판단력, 고도의 집중력, 전신을 소모하는 체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영역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어려운 분야일수록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뇌종양 분야에 뛰어들었다. 젊은 시절 의료봉사 현장에서 체득한 '어려운 자리일수록 먼저 서야 한다'는 태도는 그의 선택을 오랜 기간 지탱한 가치였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선택 앞에서 그는 단 한 번도 뒷걸음하지 않았다.
그가 집도한 뇌수술은 총 4천300건. 그중 뇌종양 수술이 1천800건, 뇌손상·응급 뇌수술이 2천500건에 달한다. 이는 단순한 집계가 아니라, 국내 신경외과학의 발전 흐름을 그대로 관통하는 기록이다. 당시 국내 의료환경은 장비와 기술 모두 선진국과 큰 격차가 있었다. 그는 현미경 미세수술 기법 도입, 환자 감시장치 개선, 수술 접근법 연구 등 기반 확충부터 시작했다.
특히 응급 뇌출혈 환자 수술에서는 '골든타임' 개념이 확립되기 전부터 신속한 수술·집중치료 체계를 정착시키는 데 힘썼다. 이러한 축적된 경험은 영남대병원이 '뇌종양·뇌수술 분야의 전국적 신뢰 병원'으로 자리잡는 데 결정적 기여가 됐다. 환자·보호자가 "영남대로 가면 살릴 수 있다"고 말하던 시절, 그 중심에는 늘 김 교수가 있었다.
뇌종양 수술 모습-고가의 장비와 수술기구 및 보조인력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경북도 제공>
◆ 국제무대의 격차를 돌파한 연구자… 한국 뇌종양 연구 기반 구축
1990년대 초, 김 교수는 미국 Mayo Clinic, NYU, UCLA 등 세계 최고 신경외과 기관에서 연수하며 국제 의료현장을 직접 경험했다. 당시 선진국과 한국의 의료기술·장비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컸다. 그가 본 미국 병원은 체계화된 다학제 협력이 일상이었고, 고난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도 활발했다. 반면 한국은 수술 성공에만 매달려야 하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 대신 "한국에도 학문과 임상이 결합된 체계를 반드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귀국 후 전국 신경외과 의사들과 함께 '뇌종양연구회'를 창립했고, 이는 이후 '대한뇌종양학회'로 발전해 국내 뇌종양 연구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
서양의학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준을 넘어서, 한국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치료 지침을 정립하는 데도 앞장섰다. △미세수술 기구 도입 △환자 감시장치 고도화 △항암제 임상시험 설계 △다학제 진료 확대 등은 그의 역할이 컸다. 특히 국내에 없던 '표준화된 수술·치료 지침' 마련은 이후 전국 병원에 빠르게 확산됐다.
학술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신경외과 대표 교과서를 공저하며 학문과 임상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2020년 국제공동연구로 발표한 '뇌종양 전기장 치료(Tumor Treating Fields·TTF)'의 국내 임상효과 분석은 한국 데이터를 세계적으로 알린 사례로 주목받았다. 전기장을 활용해 암세포 분열을 억제하는 치료법이 실제 한국 환자에게도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제시하며 국내 의료진의 연구 역량을 각인시켰다.
대한 뇌종양학회에서 뇌종양치료를 주도하는 의학자들<경북도 제공>
◆ 교육·제도·학회를 이끈 리더… 한국 의학교육 혁신의 길을 만들다
김 교수의 영역은 병실을 넘어 교육과 정책, 학문 공동체로 확장됐다. 그는 1997년과 2001년 영남대 의대 부학장을 맡아 국내 최초의 의학교육 인증평가를 주도했다. 당시만 해도 전국 의대가 교육 체계 정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지만, 그는 방대한 자료분석과 교육개편을 이끌어 예비평가를 성공적으로 통과시켰다. 이는 한국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이끈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영남대병원 병원장(2005~2007) 재임 시절에는 연구 중심 병원체계 구축, 전공의 교육 프로그램 혁신, 근거중심의학 확립 등을 추진했다. 이후 대한뇌종양학회 회장, 대한신경외과학회 회장을 맡으며 국내 신경외과계를 '다학제 협력'과 '데이터 기반 치료' 시대로 이끌었다.
현재 그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구·경북심사평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의료정책의 합리성과 공정성 확립에 기여하고 있다. "신뢰는 반복된 검증에서 나온다"는 그의 소신은 연구실·수술실·강의실을 넘어 의료 제도 전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오룡 교수는 경북 의료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전국 최상위 수준의 한국 의료 시스템이지만, 그 혜택이 지역마다 동일하게 돌아가지 않는 점은 여전히 큰 과제다.
특히 △경북 북부권의 중증질환 사망률 △농산어촌 지역의 응급의료 접근성 △전원의 지연과 의료 공백 등은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다. 그는 지역 의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장기적 인재양성 + 단기적 의료전달체계 강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 의사 양성을 위한 의대 설립 △병원 간 협력 강화 △중증 응급 후송체계 정비 △간호·의료기사 인력 확충 등이 그의 구체적 제언이다. 또한 "임상과 연구가 연결되어야 지속 가능한 의료가 가능하다"며, 지역에서도 고난도 치료와 임상연구가 병행되는 생태계 구축을 장기 목표로 제시했다.
김오룡 교수가 대한신경외과학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경북도 제공>
◆ K-과학자로서의 새로운 사명… '사람 중심 의료'로 경북의 미래를 설계하다
이번 K-과학자 프로젝트에서 김 교수에게 주어진 역할은 경북 의료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실천적 과업이다. △경북 의대 설립 타당성 분석 △필수의료 전달체계 구축 △중증환자 후송 시스템 정비 △지역 의료통계 분석 등은 단순 자문이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의료시스템을 지켜낼 수 있도록 만드는 기초작업이다.
그의 비전은 분명하다. "의료는 기술이 아니라 신뢰이며, 신뢰는 생명을 지키는 체계에서 나온다." 그가 40년간 지켜온 철학은 이제 경북의 지속 가능한 의료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김오룡 K-과학자의 다음 행보는, 한평생 붙들어온 '사람 중심의 의학'을 지역의 미래로 연결하는 여정이다. 경북의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고, 어떤 지역·어떤 상황에서도 도민이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를 만드는 것이 그의 새로운 사명이다.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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