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인지와 형광 감지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인 안교한 포스텍 명예교수. 안 교수의 연구는 알츠하이머의 조기진단 가능성을 열었다. 경북도 제공
분자인지(分子認知)와 형광 감지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안교한 포스텍 명예교수를 지칭하는 수식어다. 안교한 교수는 '분자'란 도구로 물질과 생명 현상을 들여다보며 평생을 연구자로 살아왔다. 기초화학에서 출발한 그의 연구는 분자 감지 분야를 선도, 알츠하이머병의 조기진단 가능성을 열었다. 또 생명 현상 연구와 질병 진단에 중요한 형광 감지, 영상화 분야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안 교수는 앞으로 K과학자의 일원으로 경북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힘쓸 계획이다. "과학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며, 인류의 미래를 여는 열쇠"란 그의 신념은,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의 내일과 맞닿아 있다.
◆ 분자를 통해 생명 현장을 이해하다
1980년 서울대 화학교육과를 졸업한 안 교수는 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원(KAIS)에서 유기화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에서 신약 개발 연구에 참여하며 연구자로서의 첫걸음을 뗐다. 1년 여간 현장을 경험한 그는 1986년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창립 구성원으로 부임해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
38년간 교수직을 역임하며 그는 국내 유기화학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임상연구요원을 거쳐 하버드대 등에서 방문교수로서 연구의 폭을 넓혔고, 과기부 지정 우수연구센터(SRC)인 '분자-소재 융합계의 전자-광 거동 연구 센터' 소장으로 첨단 융합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또한 아시아 및 유럽 국가 간 연구자 교류 프로그램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며 한국 과학의 발전과 인적 교류를 위해 헌신했다. 그의 활동은 한국 화학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 간에 상호이해를 증진 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안 교수의 학문적 여정은 분자를 통해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형광 물질을 통해 보이지 않던 현상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분자의 형태·결합·반응을 탐구하던 기초화학이 그의 손에서 질병 진단과 의화학으로 확장됐다. '화학은 생명을 이해하는 언어'란 확신을 갖고 그는 생유기화학 분야 인재 양성과 학문 발전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
이광자 분자 프로브를 이용해 알츠하이머 질병을 유발시킨 살아있는 쥐의 뇌 속을 실시간 이광자 현미경으로 영상화한 자료. 포스텍 제공
◆ 의학과 산업으로 확장하는 '융합의 길'
안 교수의 연구 여정은 의학과 산업으로 확장되는 융합의 길이었다. 실제 그가 이뤄낸 대표적인 연구성과를 살펴보면 의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먼저 분자인지 연구 분야다. 그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고 'C3 대칭(정육면체 한 꼭지점에서 120도씩 세 번 회전시키면 원래 구조와 같아지는 성질)' 환경에서도 거울상 이성질체(분자식은 같지만 원자의 배열이 달라 성질이 다른 화합물), 즉 왼손과 오른손 구조와 같이 서로 포갤 수 없는 서로 다른 거울상 분자를 구분할 수 있음을 최초로 입증했다.
서로 다른 거울상 이성질체는 생체 내에서 전혀 다른 약리 효과를 나타낸다. 거울상체(한 쌍의 화합물이 서로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완전히 겹쳐지지 않는 구조)의 분자를 합성하거나 구분하는 것은 신약 개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안 교수는 형광 감지 연구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냈다. 화학 반응을 적용해 최초로 카르복시산 등 음이온을 형광 감지하는 연구를 소개함으로써 '반응 기반' 분자 감지 연구 분야를 확장하는데 기여한 것. 이러한 반응 기반 분자 감지 연구 분야는 약한 분자 간 결합을 이용하는 전통적인 분자 감지 접근법에서 보이는 낮은 기질 특이성이나 낮은 감도의 문제점을 극복해 냈다. 그만큼 괄목할 만한 학물적 발전을 이뤄낸 셈이다.
안 교수는 다양한 생체 물질에 대한 독창적인 형광 분자 프로브도 다수 개발했다. 특히 아민 신경 전달 물질의 항상성에 관여하는 모노아민산화효소-B(MAO-B)의 농도가 아밀로이드-베타 플라그(치매가 진행함에 따라 증가하는 단백질로 타우 단백질과 함께 중요한 치매 지표 물질)와 함께 높은 상관도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같은 연구 결과는 혈액 속에 존재하는 모노아민산화효소를 추적함으로써 치매를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형광 분자 개발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이광자 흡수(two-photon absorption) 형광체와 분자 프로브를 개발하는 연구를 통해 수용액에서 낮은 형광 특성을 보이는 이중극(dipolar) 형광체의 화학구조에 따르는 형광 특성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형광 특성을 향상시켰다.
또한 유기 형광체의 형광 특성이 수용액, 유기 용액, 세포 환경에 따라 현저한 차별성을 나타낸다는 것을 입증했다. 세포 내 환경은 수용액이나 유기 용액과는 전혀 다른 영상화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을 밝혀 낸 것이다.
◆ 학문을 넘어, 공동체로…경북과 함께 여는 미래
안 교수는 학계를 대표하는 리더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한국유기합성학회장, 대한화학회 부회장, 유기화학분과회장, 대한화학회 대구-경북지부장, 한국화학센서연구회장 등을 역임하며 국내 화학계의 성장을 이끌었다. 더불어 여러 국제 학술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화학계의 위상을 높였다.
그는 해외 여러 국가(일본, 중국, 폴란드 등) 간의 정기적인 학술 교류 프로그램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인적·학문적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와 발전을 도모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일본, 중국 등 국가에서 초청 강연상을, 국내에서도 장세희 학술상(2003년), 대한화학회 학술상(2013년),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도약장(2018년), 한국유기합성학회 학술대상(2020년), 대한민국 녹조근정훈장(2021년) 등을 수상했다.
안 교수는 40여 년간 오직 교육과 연구 분야에만 몰두해 왔다. 그의 실험실 불빛은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았고, 학생들과의 소통도 줄곧 이어졌다. 안 교수는 "결과에 앞서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연구자로서의 자세를 강조하며 제자들을 지도했다. 수많은 그의 제자들은 국내외 대학과 연구소, 제약기업에서 활약하며 한국 화학의 다음 세대를 이끌고 있다.
한국 과학의 미래를 위해 헌신해 온 안 교수는 경북도 K-과학자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의 지식과 연구 경험, 통찰력은 경북이 바이오 신약의 국제 허브로 도약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경북도는 △바이오·의료 분야 육성 △AI와 오가노이드(장기를 모방한 구조체) 기반의 항체 신약 개발 △독성 진단 시스템 △신약 전주기 플랫폼 등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장기 전략을 세워놓은 상태다. 또한 포항가속기연구소,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경북대병원,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공장 등 지역 바이오 산업 관련 학계와 연구소, 산업체와 힘을 모은다면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크다.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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