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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과학자 열전] 4. 남홍길- 생명의 시계 거슬러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다

2025-11-10 16:21
남홍길 대구가톨릭대 역노화연구원장은 노화조절 메커니즘을 제시하며 식물노화 분야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경북도 제공

남홍길 대구가톨릭대 역노화연구원장은 노화조절 메커니즘을 제시하며 식물노화 분야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경북도 제공

'나이란 시계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 시계를 멈추거나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궁금증이자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다. 인류는 언제쯤 노화를 극복하고 젊음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남홍길 대구가톨릭대학교 역노화연구원 원장은 인류의 오랜 꿈인 '불로장생'의 실마리를 풀어낸 장본인이다. 생체 시계의 비밀을 밝히고 역노화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그는 역노화 연구를 기초과학 분야를 넘어 산업으로 확장시키며 과학이 인류의 삶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노화 극복을 향한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는 K-과학자로서 경북을 역노화 산업의 국제 허브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힘을 보탤 계획이다.


◆ 꽃에서 찾은 노화의 비밀


남 원장의 호기심은 어릴적부터 남달랐다. 1982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에도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갈 정도였다.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에선 분자유전학을 연구했다.


6년 만에 귀국한 그는 포항공과대 생명과학과 창립 멤버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며 한국 생명과학의 초석을 다졌다. 그의 탐구 주제는 철저히 학문적이면서도 인류 보편의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과학은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을 통찰하는 학문'이란 철학을 가졌기 때문이다. 노화 연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 원장의 노화 연구 출발점은 식물이었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개화 시기와 생체 리듬을 결정짓는 'GIGANTEA' 유전자를 발견했다. 그는 이같은 성과를 1999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식물노화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순간이었다.


이후 '빛을 받아들이는 단백질의 신호 안정화 기전(셀, 2005년)', 'miRNA 회로를 이용한 노화의 나이별 조절 (사이언스, 2009년)' 연구는 학계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식물에서 출발한 그의 연구는 동물 노화연구로 이어졌다. '노화된 췌도 조직의 회춘(Rejuvenation)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PNAS, 2014년)', '운동 속도와 잔여 수명의 연결고리를 밝힌 논문(Nature Comm., 2015년)'은 젊음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했다.


남 원장은 연구의 폭을 점차 넓혀갔다. 세포 노화의 기본 단위인 RNA 단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 노화를 조절하는 지를 탐구하며, 노화 시계를 이루는 분자적 톱니바퀴를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특히 동·식물 비교를 통해 노화의 공통된 원리들을 제시했다. 이는 '노화는 종마다 다르다'는 단편적 시각을 넘어 노화를 좀더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스탠퍼드대와 함께한 미세 물방울(Microdroplet) 연구를 통해 세포 크기의 작은 물방울 안에서 생명 반응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촉발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생명 현상은 반드시 세포 안에서만 일어난다'는 기존 상식을 뒤흔든 이 발견은 마치 우주 탄생의 한 장면처럼 생명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젖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노화 시계(Aging clock)'와 'Oscillatory code(진동 코드)'란 개념을 정립했다. 유전자의 발현이 단순한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리듬과 파동의 언어로 조율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마치 음악의 리듬이 곡 전체의 흐름을 만들 듯 유전자 리듬이 생명체 노화를 좌우한다는 통찰이었다.


국제 학계는 그의 연구에 주목했고 논문 인용은 빠르게 늘어났다. 2024년도 세포 노화(Senescence) 연구 분야 순위 23위에 오르며 그는 글로벌 석학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구글 스칼라 기준 논문 인용 횟수는 2025년 현재 2만5천회가 넘고, h-index(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자연수로 표현한 것) 78(한국 컴퓨터공학과 교수들의 평균은 약 30정도)을 기록 중이다.


한국과학상(대통령상, 2006년), 청암과학상(2009년), 대한민국학술원상(2009년), 호암과학상(2014년) 등 그가 받아든 상들만 해도 한국 과학계에서 그의 위상을 엿볼수 있다.


위대한 발견과 성과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낮추며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남 원장은 자신에 대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개척자라기 보다 우주와 세상에 흩어진 질서를 감지해 연결하는 안테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남홍길 대구가톨릭대 역노화연구원장은 경북도 K과학자로 청송 AI역노화 연구 산업 단지 조성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경북도 제공

남홍길 대구가톨릭대 역노화연구원장은 경북도 K과학자로 청송 AI역노화 연구 산업 단지 조성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경북도 제공

◆ 경북을 역노화 산업의 국제 허브로


남 원장이 이뤄낸 성과의 진면목은 연구실 밖에 있다. 그는 치매 치료제 기술을 기업에 이전했고, 유전자 치료제 스타트업도 이끌었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 역노화 기능성 화장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과학 연구의 성과가 식품, 신약, 화장품, 치료 기술 등 실생활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남 원장은 '과학의 성과가 지역 사회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실천하고 있다. 과학은 사회와 인간을 이롭게 하기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현재 그는 대구가톨릭대 역노화연구원 원장으로, 또 중국 선전의 아시아 항노화연구소 과학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올 하반기부터는 경북도 K-과학자로 위촉돼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이미 원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먼저 청송군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역노화 연구·산업 단지를 조성해 경북을 역노화 산업의 국제 허브로 발전시키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농산물 기반의 역노화 화장품·식품 소재를 발굴하고 천연물 신약 개발 등 지역 자원을 활용한 산업화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역노화 클리닉·웰니스 센터, 실버센터 사업 등 의료·보건 실증 단지를 조성하는 일에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경북 북부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관광자원을 갖추고 있어 관광과 웰니스 산업과의 연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남 원장은 신기술 개발과 창업을 연계해 지역 특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중국 선전 연구소와 협력해 청송 역노화 연구·산업단지를 국제 네트워크와 연결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청송은 AI 기반 농업·관광·의료가 융합된 신개념 산업단지로 발전할 수 있다"며 "단순한 연구 거점을 넘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이끄는 '미래형 문명 모델'로 자리매김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단순히 노화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수명 연장과 AI 기술혁명의 결합을 통해 미래 세대가 누릴 건강한 삶과 문명을 준비하는 것이다. 또한 경북이 세계 과학기술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과 산업·인재·환경을 함께 키워내겠다고 강조한다.


남 원장의 발걸음은 이제 역노화 연구를 넘어 경북의 미래, 다음 세대의 밝은 내일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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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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