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버너 위 불판서 익어가는 ‘추억의 맛’
시간이 멈춘 그곳, 대구 ‘삼육식육식당’
‘통삼겹’ 시대까지 지켜온 ‘옛날 삼겹’의 미학
대구 중구 인교동의 노포 '삼육식육식당'의 삼겹살 메뉴.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 '옛날식' 삼겹살로 유명하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기름이 '좔좔' 흐르는 삼겹살 한 점이 간절해질 때면, 발걸음이 절로 향하는 곳이 있다. 대구 중구 인교동 골목의 노포, '삼육식육식당'이다.
가게 앞에 서면 1980년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간판 왼쪽 빛바랜 돼지 사진과 '삼육식육식당'이라는 상호, 그 아래 적힌 '단체연회석 완비'라는 문구는 한때 이곳이 얼마나 문전성시를 이뤘는지를 짐작케 한다.
식당 내부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화려한 인테리어나 세련된 조명을 기대하고 문을 열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 세대의 눈에는 "뭐 이리 낡은 식당이 다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법도 하지만, '식육식당'이라 적힌 직설적 상호는 왠지 모를 신뢰감을 준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고기를 굽는 방식이다. 가스버너 위에 불판을 올리고, 그 위에 쿠킹 호일을 깐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지만,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다.
삼겹살의 형태 또한 요즘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2000년대에는 솥뚜껑 삼겹살, 2010년대 이후로는 육즙을 가두기 위해 두껍게 썰어내는 '통삼겹'이 대세가 됐다. 하지만 삼육식육식당은 고집스럽게 옛 방식을 고수한다. 냉동 대패삼겹살보다는 두껍지만, 통삼겹보다는 얇은, 딱 한 입 크기로 썰어낸 '옛날식' 삼겹살이다.
상에 오르는 반찬들은 기교 없이 정갈하다. 고추찜, 시금치나물, 콩나물무침, 오이무침 등은 식당 반찬이라기보다 어머니가 차려준 가정식에 가깝다. 모두 주방에서 직접 손으로 다듬고 무쳐낸 것들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자꾸만 손이 가는, 깊은 '손맛'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낡은 노포를 찾는 손님 층이다. 중장년층만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20대 손님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노라면, 기자는 1990년대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묘한 향수에 젖곤 한다.
글·사진=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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