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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외로움에 대한 대책

2025-12-16 06:00
이하석 시인

이하석 시인

#숨어 살기


쿠팡의 정보 유출 불안에도 그렇지만, 정보 시대에 뉘든 온전히 몸을 숨기기는 힘든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들어 '숨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금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호에 '숨을 은(隱)'을 쓰는 경우가 흔히 있어 왔다. 고려 말의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도은(陶隱:이숭인), 야은(冶隱: 길재) 등 '4은'이 대표적이다. '은'은 '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목은은 목동으로, 포은은 채마 밭 가꾸는 농부로, 도은은 질그릇장이로, 야은은 대장장이로 몸을 숨기고 살려는 욕망을 드러낸 셈이다. 정계나 시국의 소란을 떠나 시정의 가장 낮은 직업들이면서도 삶의 기반이 되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은'의 뜻을 심오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런 소박한 삶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고려말의 혼란 속을 부대기며, 그런 꿈을 꾸었을까?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파란이 뒤따랐다. 잦은 유배로 끌려다녔으며, 새로운 국가를 세우기 위함이라는 명분 아래 처참하게 피살되기도 하는 등 삶이 살얼음 위의 몸 가누기 같은 지경이었다.


조지훈의 시 '낙화'에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라는 구절이 자주 되뇌여진다. '묻히다'는 '간직되고 드러나지 않는 상태로 남게 되다'라는 뜻이다. '숨어 사는 삶'과 다르지 않다. 시 '낙화'는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우수적으로 표현, 한국 지식인의 한 전형인 은사의 체념과 달관의 멋을 부린다고 평해진다. '청록집'(1946년)에 실린 것으로, 일제 강점기 말에 씌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숨어 사는 것은 '지키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 시기에는 드러나면 자칫 후대에 친일이라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게 일제에 교묘하게 얽어 매였던 시대라, 뜻있는 지식인들은 의식적으로 몸을 숨겨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호에 '숨을 은'자를 쓰는 이유 역시 자신을 지키려는 뜻이 담겨 있었으리라, 그러나 세상사가 그냥 놔두지 않으니, 호의 뜻대로 숨어 살기는 실로 지난했던 것이다.


#외톨이


적극적 숨어 살기가 아니라 사회 구조상 어쩔 수 없이 숨어 사는 이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의 부각이 그것이다.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그런 문제가 불거졌다.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장기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나 그 상태를 일컫는 말이 '히키코모리'다. 1990년대 초부터 심각한 사회적 증상으로 발전, 일본어 사전인 '고지엔' 2008년 판에 이 말이 수록되었다. 한국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그 문제가 우리에게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국민 대다수가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 정책 참여 플랫폼 '국민생각함'을 통해 3,216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응답자의 86.7%가 현재 우리 사회의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매우 심각' 또는 '심각'하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은둔·고립 문제가 특정 연령층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위험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주로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정부의 은둔형 외톨이 지원 정책이 중장년층 등 전 세대를 대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은둔은 히키코모리처럼 '극심한 경쟁 사회에 대한 두려움, 학교나 회사에서 느끼는 고립감, 집단따돌림, 지나친 부모 의존으로 자립성을 키우지 못한 경우, 심각한 자신감의 결여로 인한 자해적 심리상태' 등이 그 원인이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도 한몫한다.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도 자존감을 확인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어서 이들의 사회적 격리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의 즐거움


은둔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나의 경우 산책이나 가벼운 여행을 통한 소소한 즐거움을 곧잘 자랑하는데, 그런 걸 포함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은둔을 즐기는 것이다.


관련 책들도 보인다. 신기율의 '은둔의 즐거움', 데이비드 빈센트의 '낭만적 은둔의 역사'를 비롯, 삶 속에서 찾는 자기만의 은둔을 옹호하는 책들이 의외로 꽤 나오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 책들은 '안전하고 생산적인 고독'이란 말을 즐겨 쓴다. 그 고독은 무엇보다 자기 선택이 만들어낸다고 적극성을 부여한다. "개인은 자유롭게 고독한 상태로 들어가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고독 할부'라는 말(신기율)도 통용된다. 여행 등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반복해서 고독의 양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혼자'라는 감정을 느끼는데, 곧 '외로움'이 아닌 '고독'이라는 삶의 본질적 상황을 더 경험하는 기꺼움을 맛보는 것이다. 이런 고독은 몸과 마음을 열어서 '삶의 면역'을 높이기도 한단다.


데이비드 빈센트는 은둔을 '회복적 은둔'과 '회피적 은둔'으로 나눈다. 후자가 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갖는다면, 전자는 자기 회복을 향한 적극적인 충동에 의해 이루어지기에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고 한 스님은 말했지만, 그것은 대자유의 자각으로 지탱되는 내려놓은 상태의 '텅빈 충만'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자연과의 감응과 교감을 통한 내밀한 관계의 즐거움도 고독의 기꺼움을 내세운다.


어쨌든 영국에서 2018년에 신설한 외로움부(Ministry for Loneliness)와 2021년에 일본의 고독 고립 담당 장관직 신설이 고독과 고립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시사하는 예라 할 것이다.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고독 시대'를 적극 문제 삼아야 할 때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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