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지난 10월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OECD가 주도하는 '교원 및 교직 환경 국제 비교 조사(TALIS) 2024' 결과를 발표했다. 54개국의 교사 12만 명, 교장 1만 1천 명이 참여했고, 한국에서는 3천477명의 교사와 173명의 교장이 응답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고 답한 교사가 21%로 조사 대상국 중 1위였다. 임용 고사에서 10대 1에 가까운 치열한 경쟁을 거쳐 교사가 되었는데, 왜 후회한다고 할까?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 민원 대응, 과도한 행정업무, 학생 생활지도 부담, 잦은 갈등 상황과 사회 인식 변화가 교사 소진을 가속한다고 답했다. 이 요인은 대부분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다.
교직은 감정 노동과 사회적 책임의 무게로 인해 어려운 직업임이 분명하지만, 생명 위협을 느끼거나 심리적 트라우마에 노출되거나 지속적인 감정 노동을 하거나 경제적 불안정과 극한 경쟁에 노출되는 직업도 적지 않다. 그런데 교직은 단순한 직업 이상의 사명감을 요구한다. 교직은 단순한 역할 수행에 그치지 않고, 학생의 인생을 책임지는 전문성과 윤리성이 필요하다. 결국 교직의 핵심 질문은 '직업인으로 머무를 것인가, 전문인으로 설 것인가'이다. 다시 말해 '교사 정체성'의 문제에 귀결된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실행되는지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는 교육 외 분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초보 감독 김연경'은 외면받았던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리고, 7전 4승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팀을 해체한다는 압박 속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인상적인 장면과 발언이 많았지만, 필자가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폭넓은 경험에서 나온 전문성과, 상황에 맞춰 즉각 실행이 가능한 지도 방식이었다. 김연경은 상대 전술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영상과 피드백 자료를 통해 선수들에게 사전 학습을 시켰다. 훈련에서는 실습·교정·반복을 끊임없이 이어갔으며, 경기에서도 서브 방향, 블로킹 타이밍, 공격 루트까지 실시간으로 지시했다. 작은 실수도 명확하게 짚되, 최선을 다한 시도에는 즉각적으로 격려했다. 불과 몇 주 만에 선수들은 스스로 성찰하고 성장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는 스포츠 지도자의 이야기지만, '전문성·분석·실행·피드백·성찰'이라는 기본 요소는 교육 현장에서도 적용된다.
교직은 학생의 삶을 설계하고 미래를 열어주는 일이다. 그래서 망원경적(望遠鏡的) 시야와 현미경적(顯微鏡的) 분석을 동시에 갖춘 '전문가'인 교사가 필요하다. 전문성의 핵심은 윤리적 주체성, 교육 철학, 수업 설계 능력, 학생을 성장으로 이끄는 판단력이다. 전문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 회복과 성찰을 통해 다져진다. 따라서 교사에게도 '적절한 실패 경험'은 성장의 중요한 거름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왜 교사는 힘든가?'가 아니라, '교사가 어떻게 다시 전문인으로 설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물론 현실은 쉽지 않다. 제도적 지원과 업무 경감, 사회 인식 개선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와 동시에 교사 스스로 전문적 자긍심을 회복하려는 의지도 중요하다.
교직의 본질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에 있다. 교사가 수업을 통해 학생의 가능성을 깨우고, 그 경험이 다시 교사의 보람으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때, 교육은 비로소 제 역할을 다한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피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실패를 성장 에너지로 전환하려는 노력이다. 교사가 흔들리면 학생이 흔들리고, 학생이 흔들리면 결국 미래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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