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녹층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금속…‘영구 보전’ 염두
유가족 뜻 반영해 재질 선택…“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깊어지길”
훼손이 아닌 축적, 기억을 담는 방식의 변화
22일 대구 달성군 세천늪근린공원에 세워진 故(고) 박건하군 추모비에 어린 소년이 새를 놓아 보내는 형상이 부조로 표현돼 있다. 조형물 속 아이의 실루엣과 날아오르는 새들은 물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다 숨진 박 군의 숭고한 선택과 그 마음이 지역사회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음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박 군은 정부로부터 의사자로 지정되고 대구시와 달성군에서는 각각 의로운 시민과 의로운 군민으로 지정됐다.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고(故) 박건하 군을 기리는 추모비는 '영구적인 기억'을 전제로 설계됐다.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깊어지도록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추모비는 내후성이 뛰어난 '코르텐강'으로 제작됐다. 코르텐강은 대기 중에서 자연스럽게 표면이 산화되며 녹층이 형성되는 저합금강이다. 이 녹층은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 별도 도장작업 없이도 높은 내구성을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일반적인 금속 부식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를 보호하는 단단한 층을 형성해, 구조적 안정성을 높인다.
유가족의 의견을 반영해 선택된 이 재료는 '훼손'이 아닌 '축적'을 전제로 했다. 바람과 비를 맞으며 표면이 변화하는 과정 자체가 재료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외형은 조금씩 변하지만, 그 안은 더 단단해지는 특성 때문이다.
22일 대구 달성군 세천늪근린공원에서 열린 故(고) 박건하군 추모비 제막식에서 유족들이 추모비 앞에서 헌화하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이번 추모비는 물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다 숨진 박 군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으며, 박 군은 정부로부터 의사자로 지정되고 대구시와 달성군에서는 각각 의로운 시민과 의로운 군민으로 지정됐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달성군은 이 같은 재질 선택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더 깊어지길 바라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 한 순간의 희생을 고정된 형태로 남기기보다, 시간과 함께 의미가 쌓이는 상징물로 기록하겠다는 취지다.
결국 코르텐강으로 제작된 추모비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기억의 방식에 대한 선택이다. 아픔과 상처를 안은 채 점점 단단해지는 금속처럼, 박 군을 향한 추모 역시 시간 속에서 공동체의 기억으로 깊어지길 바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추모비는 앞으로도 세천늪근린공원 한켠에 자리하며 계절과 날씨를 고스란히 견뎌낼 것으로 보인다.
강승규
사실 위에 진심을 더합니다. 깊이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