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김승준군, 또래의 언어로 전한 1년의 그리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침묵이 길어진 추모비 제막식 현장
슬픔을 넘어 기억으로, 한 학생의 선택이 남긴 울림
22일 대구 달성군 다사세천늪근린공원에서 열린 故(고) 박건하군 추모비 제막식에서 서재중학교 2학년 김승준 학생이 단상에 올라 고인을 향한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또래의 언어로 전해진 애도는 행사장을 긴 침묵 속에 머물게 하며, 한 아이의 이름이 남긴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게 했다.<달성군 제공>
22일 대구 달성군 다사세천늪근린공원에서 열린 '故 박건하군 추모비 제막식' 현장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화려한 의전도, 공식 발언도 아니었다. 또래 친구가 먼저 떠난 친구의 이름을 목놓아 불러가며 읽어 내려간 한 통의 편지였다. 서재중학교 2학년 김승준 학생은 이날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주면의 말소리는 잦아들었고, 침묵은 길어졌다.
김 군은 이날 편지 낭독을 통해 "네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나는 여전히 네가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를 잃은 뒤 흘러간 시간보다, 받아들이지 못한 마음을 먼저 드러낸 것이다 .
그는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어른들도 쉽게 하지 못할 결정을 너무 어린 나이에 해야 했을 너를 생각하면, 그 순간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지금도 마음이 무너진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누군가를 먼저 생각했을 너의 마음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김 군은 기억 속의 박 군을 "늘 밝고 웃음이 많아, 주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웃게 하던 친구"라고 했다. 그러면서 "네가 그런 (의로운) 선택을 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 많이 울게 만들었다"고 했다.
편지 내용은 슬픔에만 그치지 않았다. 김 군은 "너의 행동 덕분에 우리 친구들, 우리 학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너는 그걸 말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했다.
김 군에게 박 군은 그저 따뜻하고 웃음 많은 친구였다. 가끔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기도 한 소중한 친구였다. 김 군은 "그래서일까. 더 쉽게 잊히지 않고, 더 오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더 많이 챙겨주지 못해서, 고맙다는 말도 존경한다는 말도 그때 전하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편지글의 마지막엔 위로와 약속이 포함됐다. 김 군은 "너는 지금도 혼자가 아니다"며 "많은 사람들이 너를 기억하고, 고마워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김군은 "편히 쉬어. 우리는 너를 오래도록 기억할게"라고 말을 맺었다.
짧은 낭독이 끝난 뒤, 현장엔 정적이 감돌았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또래의 언어로 전해진 '애도의 글'은 한 학생의 선택이 남긴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게 했다. 추모비 앞에서 낭독된 편지글은 이름을 기억하는 방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진중하게 묻고 있었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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