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춘우 엑스코 대표이사
대한민국 수출이 연간 7천억 달러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순항하고 있지만, 대구·경북 기업들이 체감하는 새해의 겨울바람은 여전히 매섭다. 자동차 부품, 기계, 섬유, 철강 등 실핏줄과 같은 지역 주력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 강화, 기술 전환 지연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긴 조정 국면을 견뎌왔다. 국가 전체의 지표와 현장의 체감 경기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지역 경제의 불안도 깊어지는 형국이다.
다행히 2026년 새해에는 지역 수출이 소폭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치 자체는 크지 않을지 모르나, 이는 단순한 회복을 넘어 산업 구조가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지금의 위기를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온 우리 기업들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KOTRA에서 33년간 해외 수출 현장을 누비며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수출의 해답은 보고서가 아니라 언제나 거친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마케팅, 인증, 물류라는 세 가지 장벽은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늘 우리 앞을 가로막아 왔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관세 장벽과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책상 위의 분석보다 바이어와 직접 만나 신뢰를 쌓는 현장의 노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실제로 수출에 성공하는 기업일수록 위기 때 전시회 참가를 오히려 늘린다. 시장이 혼탁할수록 바이어를 직접 대면해 경쟁사의 움직임을 읽고, 데이터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현장의 '행간의 정보'를 확보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는 단순한 진열장이 아니라 기술을 시연하고 인증 기준을 점검하며, 공급망 재편의 해법을 모색하는 가장 효율적인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냉동 김밥으로 미국 시장에서 완판 신화를 쓴 한 지역 기업의 성공 역시 전시회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이메일 대신 시식 코너에서 제품을 맛보고 기업의 진정성을 확인한 바이어와의 신뢰가 수출 장벽을 넘어선 것이다. 이는 디지털 무역 시대에도 왜 우리가 여전히 뜨거운 현장을 찾아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대구·경북 산업 내부의 체질 개선은 고무적이다. 미래 모빌리티로 기수를 돌린 자동차 부품업계, AI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장비, 급성장 중인 의료기기와 K-푸드는 지역의 새로운 엔진이다. 저가 공세에 맞서기보다 독보적 기술로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의 공급사가 된 지역 섬유 기업의 사례는, 우리가 이제 '가격'이 아닌 '가치'를 파는 시대로 진입했음을 증명한다.
앞으로 대구·경북은 아세안, 인도, 중동으로 시장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엑스코는 단순한 행사장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가장 효율적으로 세계와 만나는 '수출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와 '미래혁신기술박람회(FIX)'와 같은 전시회는 지역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의 주체로 도약하는 전초기지다.
수출은 기다림이 아니라 현장으로 나서는 용기의 문제다. 기업의 개척 의지, 지자체와 수출지원기관의 정책적 지원, 그리고 엑스코의 전시컨벤션 전문성이 결합된 '원팀(One-Team)'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026년, 다시 현장으로 나아가자. 지역 기업의 성공이 곧 지역의 미래라는 믿음으로, 대구·경북의 진가가 광활한 세계 시장에서 다시 한번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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