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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쿠사츠의 밤

2026-01-26 06:00
장수영 수필가

장수영 수필가

요코하마에 도착한 이튿날 아침, 은밀한 호기심을 안고, 도쿄 북서쪽 산속에 자리한 쿠사츠 온천을 향해 길을 나섰다. 오후가 되어서야 유황 냄새 물씬 풍기는 온천마을, 료칸에 짐을 풀었다.


해가 지기 전에 계곡을 따라 산책을 나섰다. 개울에 흐르는 온천물에 발을 담그며 해가 산마루를 넘어가기를 기다렸다. 어두워지자 료칸에서 준비해둔 유카타를 입고, 바구니에 속옷과 수건을 챙겨 나섰다. 산 언저리 노천탕 입구는 남녀 탈의실로 나뉘어 있고, 탈의실을 지나 복도를 통과하면 하나의 남녀 혼탕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며 들어섰는데, 빌려준 황토색이 낯익었다. 우리나라 찜질방에서나 볼 법한 반바지와 티셔츠를 받아들고 두 아들과 입구에서 헤어졌다. 내심 기대한 것은, '남녀 혼탕'이었는데.


몸을 헹구고 노천탕 안으로 들어갔다. 간접등 아래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탕 안에서 기다리던 아들을 찾아 웃으며 한마디 툭 던졌다. "이게 뭐야, 이건 찜질방이잖아." 혼탕에 대한 호기심이 깨진 엄마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아들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엄마는 무슨 상상을 한 건데, 남녀가 같이 들어가면 그게 혼탕이지." 태초의 풍경을 상상했던 나는 아들의 일침에 웃고 말았다.


탕 안 사람들은 저마다 수건을 접어 정수리에 얹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얼굴만 내놓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수건을 머리에 얹고 몸을 담갔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무렵, 거대한 체구의 스모 선수가 정수리에 수건을 얹고 온몸을 출렁거리며 들어왔다. 뱃살이 처져서 허벅지를 덮고, 가슴은 배 위에 얹힌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그는, 보란 듯이 탕 중앙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가 발을 뗄 때마다 온천물은 파도처럼 출렁였다. 곧이어 그의 아내인 듯한 호리낭창한 미모의 여인이 들어왔다. 그때였다. 바위에 기댄 남편 옆으로 다가서던 여인이 그만 미끄러지며 물속으로 빠졌다. 거구의 스모 선수가 독수리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빛의 속도로 그녀를 들어 올렸다. 탕 안의 물이 거세게 일렁였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꽂혔다. 스모 선수는 병아리 같은 아내를 품에 포옥 안았다. 그 장관을 지켜보던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탕 밖으로 떠밀려 나왔다.


아들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내가 불경스러운 상상을 했다고 생각했을까. 그저 낯선 문화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었을 뿐이라는 해명을 어찌할까. 유황 냄새 짙은 쿠사츠의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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