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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광장에서 함께하는 법을 배우다

2026-02-02 06:00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엄마와 오일장에 갔다. 영하의 기온이 무색할 만큼 시장은 활기찼다. 이른 명절 준비로 이것저것 사다 보니 장바구니가 묵직해졌고, 그럴수록 엄마의 기침은 더 잦아졌다. 70대 초반의 엄마는 며칠 뒤 약속된 여행을 못 갈까 봐 마음을 졸였다. 그런 엄마와 약국에 들렀다가 시청 앞 카페로 들어갔다. 유자차를 주문하고 볕이 드는 창가에 앉자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창밖을 향한 엄마의 시선은 내가 유자차를 건네도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광장에서는 어떤 공개 행사를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연단으로 쏠렸지만, 내가 주목한 곳은 연단의 마이크도 현수막도 아니었다. 연단 옆에 서 있는 수어통역사였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그 자리는 이미 '이 말이 누구에게까지 닿을 것인가'를 먼저 묻는 듯했다. 누군가를 뒤늦게 챙기는 장치라기보다, 처음부터 '함께 듣는 자리'로 광장을 열어두는 신호처럼 보였다.


유자차를 마신 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광장의 차가운 바닥은 사람들의 빈틈없는 온기로 서서히 누그러졌다. 곧이어 발언이 시작됐다. 첫 문장과 함께 통역사의 손과 표정이 즉시 움직였다. 말이 이어질수록 손짓은 더 빨라졌고, 표정은 더 분주해졌다. 그 장면을 보며 알았다. 공공의 말은 '무엇을 말했는가'로만 남지 않는다. 누가 더 크게 말했느냐보다, 누구까지 함께 들을 수 있었느냐가 그 말의 온도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공동체의 '품'은 마음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자리를 설계하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그날 내가 본 것은 통역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를 실천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함께'란 말은 언제나 속도의 문제로 이어진다. 요즘 우리의 일상은 빠르게 바뀐다. 편리함과 효율이 앞서며 새로운 방식이 표준이 된다. 그러나 속도가 빨라질수록 누군가는 뒤처진다. 오일장에서도 그런 순간을 자주 본다. 카드단말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는 어르신, 계산대 앞에서 모바일 쿠폰이나 QR결제를 망설이다가 조용히 뒤로 물러서는 사람. 변화는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다가오지 않는다. 누구에게는 문이 되지만, 누구에게는 문턱이 된다. 그 문턱 앞에 멈춘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다시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일 것인가.


답은 '마음'이 아니라 '자리'다. 먼저 내어주는 자리다. 공동체는 단일한 목소리로 굴러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소리로 듣고, 누군가는 손끝으로 듣는다. 중요한 것은 모두를 한 가지 방식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대로 참여할 자리를 남겨두는 것이다. 경사로 하나, 자막 한 줄, 글자 큰 안내문, 그리고 무대 옆 수어통역의 자리 같은 작은 선택들이 많아질수록 자리는 넓어진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손잡이가 된다. 그 손잡이가 많아질수록 공동체의 품은 더 오래, 더 깊게 사람을 붙든다.


나는 이웃 도시에 살지만, 친정이 있어 이곳을 자주 오간다. 떠나 살아도 후배들은 이곳에서 삶을 배운다. 그래서 더 바란다. 다음 세대가 맞이할 고향은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경사로가 하나 더 놓이고, 자막이 한 줄 더 붙는 일처럼 작은 장치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이어준다. 광장에서 본 수어통역의 자리도 그런 '작은 손잡이'였다.


어느새 엄마의 기침이 잠시 멎어 있었다. 그날 광장에서 엄마에게 손난로를 건네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한다. 내가 엄마의 작은 기침에도 먼저 반응하듯, 누군가의 작은 신호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결국 공동체의 '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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