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진 변호사
사범대학에 입학한 그 해 세 살 터울 남동생은 공고에 입학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매우 강했던 엄마에게 아들은 당연히 대학, 그것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존재였는데, 남동생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엄마에게 반기를 들었다. 모자(母子) 사이 갈등이 커져만 가던 어느 날 남동생은 마침내 가출을 감행했다. 엄마는 전전긍긍하며 밤을 꼴딱 새웠고, 날이 밝자마자 동생 친구들 집에 전화를 돌렸지만(휴대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들의 행방을 확인하지 못하고 끝내 드러누웠다. 두 해 전 사고로 갑작스레 남편을 잃고 어쩔 수 없이 가장이 된 엄마는 막내아들 걱정에 가게 문을 열 생각도 않고 이불 속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찍어내고 있었다.
엄마를 대신해 동생 학교를 찾아갔다. 담임선생님을 만나 동생이 학교도 결석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00이가 가출한 것 같다, 엄마가 충격에 빠져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내 말에 선생님은 냉정하게 말했다. "담임이라고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학생들 일일이 다 쫓아다닐 수도 없잖아요. 어제 하루 집에 안 들어왔다고 곧장 학교로 찾아와요? 아, 그리고 00이 정도면 아무 문제없는 학생입니다. 하루 이틀 안에 집에 올 테니 걱정 말고 집에 가서 기다리세요."
다행히 동생의 가출 감행은 만 24시간 내로 끝이 났지만(선생님의 진단이 정확했는지도 모른다), 결석한 학생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 선생님의 존재는 교사의 꿈에 젖어 있던 사범대학 1학년인 내게 이상적 교사의 환상을 산산조각 내고 불편한 학교 현실을 각인시킨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30년도 더 넘은 그 일이 다시 떠오른 건 '공고선생, 지한구'를 읽으면서다. '가난한 페인트 공의 아들'로서 교사가 된 것을 온전한 자신의 노력으로 쓴 성공스토리로 여겨온 저자는 공고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 서사의 상당 부분 역시 운에서 시작됐다는 걸 깨닫는다. 가난해도 성실히 일하는 부모님이 있는 가정환경 자체가 엄청난 자산이 되는 곳. 부모의 재력과 학력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세상이지만, 재력이나 학력 따위는 다 필요 없고 부모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둘 다가 어렵다면 엄마, 아빠 중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난다. 부모를 대신해 동생 밥을 차려주고 동생 차비는 챙겨주지만 정작 자신은 버스 탈 돈이 없어 걸어서 학교에 와야 해서 매번 지각을 하는 아이, 학교라도 나와야 이야기할 사람이 있고 한 끼라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아이의 사연,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나쁜데도 안경 하나 맞추지 못하고 학교를 다녀 읽고 쓰는 기초학력마저 너무 부족한 아이 등등. 그런 사연을 읽으며 나는 지난 날 '저런 사람이 선생을 하다니' 하는 심정으로 분노했던 공고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선생님에게도 저런 아이들이 수두룩했을 터인데, 교육열에 불탄 나머지 하루 가출에 난리를 쳐대는 우리 가족이 얼마나 유난스러워 보였을까.
어쩔 수 없이 대학 대신 사회를 나가는 아이들, 공부가 아닌 취업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있다. 고등학생 다섯 명당 한 명꼴인 그 아이들이 자라서 이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간다. 그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지한구 선생님처럼 그들을 지역 사회의 이웃들로 길러내는 선생님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사회여야 한다. 30여년 전 만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선생님께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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