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한동대 교수
질문 하나로 시작해보자. 지금 국회의원의 이름과 소속 정당을 줄줄이 꿰고 있는가? 아마 대부분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지금 당신이 사는 동네의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의 이름은 아는가?
내가 기억하는 첫 정치인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국회의원이었다. 당시엔 지방자치가 없던 때라 그는 우리 동네의 유일한 정치적 아이콘이었다. 국회의원 이름이 찍힌 달력 아래에서 그 사람의 됨됨이와 행적을 반찬처럼 나누던 어른들의 밥상 대화가 또렷이 남아 있다. 어린아이였던 나조차 그 이름과 얼굴을 아직도 떠올릴 만큼, 적어도 내게 그 시절 정치는 동네 안에서 살아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정쟁에는 분노하면서도, 정작 내 일상을 지탱하는 '진짜 정치'에는 무심하다. 국회의원이 국가의 큰 담론을 다룬다면, 동네 정치인은 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안전, 매일 걷는 공원의 환경, 심야의 가로등 불빛, 우리 동네 도서관의 운영 시간 같은 일상의 문제를 다룬다. 그럼에도 우리는 먼 곳의 정치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집 앞의 정치는 무심히 지나친다.
그 무심함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2022년 지방선거 투표율은 50.9%로, 4년 전보다 10%나 낮아졌다. 불과 4년 만에 많은 유권자가 침묵을 선택한 셈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더 나쁜 정치를 불러온다는 오래된 경고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가 지방정치를 외면하는 사이, 지역의 목소리는 중앙정치의 소음에 묻혀 왔다. 청년들은 '지방정치가 내 삶과 무슨 상관이냐'며 냉소하고, 일부 정치인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며 분열을 부추긴다.
투표장의 풍경도 서글프다. 후보가 누구인지보다 '어느 당 소속인가'가 투표의 유일한 기준이 될 때가 많다. 정치를 공적 가치로 대하기보다 자극적인 스포츠처럼 관람하고 소비하는 태도다. 무례함을 소신이라 착각하고, 사실과 논리 대신 조롱과 편 가르기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을 주민의 대표로 선택하는 순간, 우리 동네의 품격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반복해온 우리 자신도 이 풍경을 만드는 데 한몫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좋은 정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내 삶의 구체적인 불편을 고쳐가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학교 진입로가 정비되고, 방치되던 마을 공터가 아이들의 놀이터로 바뀐 사례들은 결코 드물지 않다. 좋은 지방정치는 주민을 구경꾼으로 두지 않고, 적극적인 참여자이자 동반자로 세운다.
결국 정치는 사람이다. 좋은 정치인은 화려한 이력서가 아니라 성실한 일상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법과 원칙을 마땅히 지키는 사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 무례를 용기라 포장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 그리고 맡은 소임을 묵묵히 감당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우리 동네를 지킬 때, 좋은 정치는 비로소 현실이 된다.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이번에는 질문을 바꿔보자. 이 사람이 어느 당 소속인가가 아니라, 그의 말에 거짓은 없었는가. 분열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는가. 섬김과 봉사가 몸에 배였는가. 작은 약속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는가.
"모든 국민은 자신에게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 이 뼈아픈 말대로라면 정치는 결국 우리를 닮는다. 우리가 무관심하면 무관심에 걸맞은 정치가 자리 잡고, 우리가 제대로 사람을 보면 사람다운 정치가 시작된다. 여의도 정치가 뉴스라면, 동네 정치는 삶이다. 그 삶이 시작되는 곳은 여의도가 아니라 우리가 딛고 선 이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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