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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점검 시리즈] “예산 줘도 못 쓴다”…경북 22개 시·군, 5년간 예산 31조 미집행

2026-06-16 22:06

잉여금 매년 5조 이상…지자체 재정 구조적 문제
세수 부족했던 2024년마저도 6조5천억원 집행 안해
봉화·울릉 등 인구감소 지역 미집행률 30% 웃돌아
무리한 공모사업 추진, 지자체 재정건전성 위협
“중앙의 강한 통제 필요”…행정력 부족 쓴소리

■ 2020~2024년 경북 22개 시군 세입·세출 결산자료 전수 분석

경북 기초지자체에서 최근 5년간 다 쓰지 못하고 금고에 남긴 예산(결산상 잉여금)이 3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인구소멸 위기로 촌각을 다투는 군(郡) 단위 지자체들이 한 해 예산의 30% 안팎을 고스란히 묵히는 행정력 부재를 그대로 노출했다. 치밀한 계획 없이 예산부터 따내고 보자는 묻지마식 공모사업 유치와 사후관리 부실이 고질적인 예산 미집행 사태를 부르고 있다. 지역경제를 살려야 할 막대한 혈세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남일보가 경북 22개 시·군의 최근 5개 연도(2020~2024년) 세입 및 세출 결산자료를 전수 분석한 결과, 세입총계에서 세출총계를 차감한 '결산상 잉여금(이월액, 불용액, 보조금 반납액 등 포함)'은 총 31조403억원으로 집계됐다. 잉여금 발생 규모는 2020년 5조1천402억원, 2021년 5조1천548억원, 2022년 6조9천158억원, 2023년 7조2천875억원으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국가적인 세수 결손으로 각 지자체가 긴축재정을 편성했던 2024년에도 경북 22개 시·군은 총 6조5천420억원의 예산을 미집행 상태로 다음해에 넘기거나 불용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예산 미집행이 단기적인 현상이 아닌, 지자체 재정 운용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표=생성형AI 클로드 생성, 자료=경북도 22개 시·군청>

<표=생성형AI 클로드 생성, 자료=경북도 22개 시·군청>

◆군 단위 지자체의 행정력 부재 뚜렷


결산상 잉여금의 절대 규모가 아닌 '세입 대비 잉여금 비율(미집행률)'을 살펴보면 인구소멸 위험이 높은 군(郡) 단위 지자체의 행정력 부재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2024년 기준 예산 미집행 비율이 가장 높은 상위 5곳 모두 '군(郡)' 단위 지자체였던 것. 가장 높은 미집행률을 기록한 곳은 봉화군으로, 전체 예산 1조821억원 가운데 무려 33.0%인 3천572억원을 쓰지 못했다. 울릉군은 4천323억원 중 1천407억원(32.5%)을 남겨 뒤를 이었다. 이어 청송군이 전체 7천273억원 중 1천991억원(27.4%), 고령군 6천389억원 중 1천748억원(27.4%), 칠곡군 9천711억원 중 2천588억원(26.7%) 순이었다.


확보한 예산의 30% 이상을 쓰지 못한 봉화·울릉군은 전국 82개 군 단위 지자체의 평균 미집행률(약 21.0%)을 훌쩍 뛰어넘었다. 물론 대형 사업의 경우 계속비 이월 등 회계상 불가피한 이월액이 포함된다 하더라도, 1년치 전체 살림살이의 30% 이상이 다음해로 넘어가거나 불용되는 것은 애초에 집행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예산을 과다 편성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두 지자체의 미집행률은 전국 82개 군 중 각각 3위와 4위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행정역량이 예산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미집행률 5위(26.7%)를 기록한 칠곡군에서는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핵심과제인 '청년 정책' 예산조차 행정력 부재로 제때 쓰이지 못하고 삭감됐다. 지난해 12월 열린 칠곡군의회 제314회 산업건설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칠곡군은 '청년 이사비 지원사업' 예산 2천400만원을 삭감했다. 집행부가 밝힌 삭감 사유는 다름 아닌 "사업 인식(홍보) 부족과 요건 미충족에 따른 신청 인원 미달"이었다. 이에 구정회 칠곡군의원은 "예산을 반납하니 너무 아깝다. 집행부에서 조금 더 앞서갔으면 다 쓸 수 있는 예산이었다"며 늑장 행정을 지적하기도 했다.


◆묻지마식 공모사업…사후관리도 안돼


예산 미집행 및 비효율적 재원 운용의 주원인으로는 사전 준비 없는 '묻지마식' 외부 재원 확보가 지목된다. 실제로 미집행률 상위권에 오른 지자체의 경우 무리한 공모사업 추진이 도리어 지자체의 재정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내부 비판이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황문익 봉화군의원은 지난해 10월 임시회에서 "지난 3년 동안 30여 건의 외부 공모사업을 유치했지만, 치밀한 사전 타당성 분석이나 중장기 운영계획이 결여돼 막대한 자체 예산만 낭비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고 지적했다.


2024년 3천572억원에 달하는 미집행 예산에 대해 봉화군 재정과 관계자는 "사업추진에 문제가 있어 이월시킨 금액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월금을 빼고 계산하면 양호한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어떤 큰 사업이 미뤄졌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대형 공모사업의 지연 사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관리체계의 허점을 드러낸 셈이다.


미집행률 2위(32.5%)인 울릉군 사정도 마찬가지다. 2024년 2월 열린 울릉군의회 본회의에서 홍성근 군의원은 가용부지가 턱없이 부족한 섬지역의 지리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국비확보에만 매몰된 집행부의 행태를 질타했다. 홍 군의원은 "국가에서 사업비를 100% 지원해 줘도 부지가 없어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 울릉군의 실정"이라며 "사전 부지도 확보하지 못한 채 공모사업을 끌어와 예산을 묵히게 되면 장기적인 지역발전을 저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행정절차상 문제로 확장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경북 고령군 우곡면 부례 관광지 전경.  <고령군 제공>

행정절차상 문제로 확장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경북 고령군 우곡면 '부례 관광지' 전경. <고령군 제공>

어렵게 예산을 집행해 건물을 지어 놓고도 텅텅 비워두는 '사후관리 부실' 사례도 확인됐다. 미집행률 4위(27.4%)인 고령군이 대표적이다. 김명국 고령군의원은 지난해 12월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대규모 시설물들의 방치 실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군의원에 따르면 93억원을 투입해 조성한 '부례관광지'는 위탁종료 후 새로운 사업 구상을 이유로 잠정 폐쇄된 상태다. 그는 "필요인력과 관리비용에 대한 철저한 사전 검토 없이 대규모 공모사업에 뛰어든 결과"라며 안일한 행정을 질타했다.


고령군 우곡면의 부례관광지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번듯한 건물과 시설물들은 굳게 문이 잠겨 있었고, 방문객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역 경제를 이끌겠다며 야심차게 시행한 대규모 공모사업의 결과물이 거대한 '유령 시설'처럼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고령군청에서 운영하는 고령군 관광상품 통합관리 홈페이지 내 부례관광지 코너에도 '시설물 보강 및 개선사업 추진중입니다. 추후 나아진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문구만 남겨 있었다.


고령군 관광진흥과 서성민 주무관은 "현재 부례관광지는 확장사업으로 2022년 10월부터 운영이 중단돼 있다. 126억원을 들여 8만4천㎡ 부지 확장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며 "행정절차상 문제로 부례관광지 확장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내년 착공을 목표로 유원지 조성계획 변경을 하고 설계 중"이라고 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예산 집행 지표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고령군 기획예산과 이슬비 주무관은 "2025년에는 미집행률을 낮추기 위해 기금을 조성하고 세출을 적극적으로 늘렸다"며 "특히 하반기에는 재정 신속집행의 성과를 인정받아 경북도 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한 만큼, 향후 결산상 잉여금이 과다하게 남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 전문가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제장치 시급"


군 단위 지자체뿐 아니라 예산 규모가 큰 시(市) 단위 지자체 역시 잉여금 누적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지난 5년간 결산상 잉여금이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포항시로, 총 2조9천489억원을 기록했다. 이어 경주시(2조3천706억 원), 안동시(2조2천368억 원), 구미시(2조151억 원)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 행정학계에서는 이 같은 막대한 예산 미집행 사태의 근본 원인을 지자체의 고질적인 무사안일주의와 행정력 부재에서 찾으며, 제도적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영남대 강광수 교수(행정학과)는 "대부분의 지역경제가 지자체 예산집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에도, 일부 과소지역 지자체장과 지방의회는 치열한 사업 기획과 예산집행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지방자치의 자율성 침해 논란이 있더라도, 중앙정부가 교부세 배분 시 분기별 예산집행률을 더욱 강력하게 연동시켜, 확보한 국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제때 풀릴 수 있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통제장치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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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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