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8기 대구경북 22개 시군구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 내역 분석
교육·보육 줄어들고 관광과 '복합' 카테고리 증가
정주인구 안착 대신 관광 중심 '생활인구'에 안달
신조어·외국어 남발로 이름 보곤 알 수 없는 사업
전문가 "탈락 없이 '일단 준다'식의 배분은 잘못
이제는 '돈' 아닌 다른 방법으로 지방소멸 막아야"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매년 1조 원을 쏟아붓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의 궁극적인 목표는 청년의 '유입'과 '정착'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정작 뼈대가 되어야 할 교육과 보육 투자는 바닥이고, 그 빈자리를 단기 관광객과 '생활인구(특정 지역에 3시간 이상 체류하는 인구)'를 노리는 하드웨어 구축 사업이 꿰차고 있다. 정체불명의 외래어 간판을 단 채 껍데기 시설만 지어 올리는 기금의 변질된 실태를 영남일보가 전수 분석했다.
■생활인구= 특정 지역에 3시간 이상 체류하며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으로, 정주인구·체류인구·외국인등록인구를 합산해 산정하는 지표. 거주하거나 업무·관광·쇼핑 등으로 체류하는 모든 인구를 말한다.
지방소멸대응기금에서 문화·관광성 '복합' 분야 사업의 비중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각종 워케이션이나 '한달살기' 등 단기체류형 숙소건립이나 관광인프라에 지속적으로 기금이 투입돼 실효성에 의문을 남긴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영남일보 DB>
◆ 정착의 핵심 '교육·보육' 홀대, 관광객만 노린다
지역에 청년이 정착해 가정을 꾸리기 위해선 최소한의 정주 여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교육과 보육인데, 지방소멸기금의 관련 사업은 처참한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영남일보가 지방소멸대응기금 2천109개 사업을 전수 분석(2022년~2025년)한 결과, 교육과 보육을 합친 사업 비중은 2022년 15.6%에서 2025년 5.3%로 추락했다. 교육 분야는 2022년 53개에서 2025년 16개로, 보육 분야는 26개에서 12개로 급감했다.
교육과 보육 부문의 빈자리는 '문화·관광'과 '복합' 분야 사업이 채우고 있다. 문화·관광 분야 사업은 2022년 130개, 2023년 139개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해 왔다. 2024년(114개)에서 2025년(81개) 들어 표면적인 수치는 줄어들었지만, 실상은 다르다.
특히 2024년부터 폭증한 '복합 분야 사업(2025년 190개)'의 면면을 살펴보면 식당, 카페, 힐링 정원, 주차장 조성 등 사실상 관광객 유치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불과했다.
경북도의 '경북살이 청년실험실', 의성군의 '살아보고 선택하는 의성', 상주시의 '이안스테이', 봉화군의 '봉화에서 살아볼 家, 일해볼 家' 등 '한 달 살기'나 '워케이션' 같은 단기 체류 목적의 숙소 건립 사업이 대다수다.
이러한 문화·관광과 한달살기 체험 편중 현상은 지자체들이 지역사회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인구유입은 뒷전이고, 당장 눈에 보이는 단기적 경제 효과만 노려 관광객 등 생활인구 유치에만 애를 쓰고 있음을 증명한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붕괴는 방치하면서, 껍데기뿐인 관광 시설물만 지어 올리는 데 소중한 소멸 기금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울진에 살고 있는 김미연(54)씨는 "주민은 줄어드는데 관광객용 숙소 같은 건물들을 자꾸 지어서 어쩌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체류형이라 해도 그들이 짧게는 며칠, 길어도 몇 달 살고 '여기에 정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을지 의문"이라고 현실을 꼬집었다.
물론 생활인구가 정착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임규채 경북연구원 사업지원본부장은 "워케이션 등 단기체류로 일단 청년이 정착할 수 있는 구조를 파악하게 한 후 자연증가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며 "정주여건 조성이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고령층의 귀향으로 인구를 늘리는 것이 한계를 극복하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박준상)=생성형AI 클로드, 자료=행정안전부>
'보금자리' '청년거주'를 비롯, 각종 시설건립 등 하드웨어 구축에 편중된 지방소멸대응기금은 부지매입이나 공사지연 탓에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집행률을 추락시키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영남일보 DB>
◆'일단 짓고 보자' 하드웨어 쏠림… 집행률 0% 자초했다
본질을 잃은 외형 쏠림 현상은 고스란히 기금 집행률의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경북의 473개 기금 사업 중 50.5%가 시설 건립 등 '하드웨어' 구축에 편중되어 있다. 주거 분야 사업의 70.1%, 문화·관광 분야의 66.3%가 단순 건축 공사다.
이러한 하드웨어 건립과 특정 분야 쏠림 현상은 기금 집행률을 추락시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경북 영천시는 전체 사업의 50%를 문화·관광 분야에 집중했고 2024년 집행률 0%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전체 사업의 53%를 문화·관광에 쏟아부은 울진군(집행률 19.9%)이나 역시 심각한 집행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획기적인 소프트웨어(프로그램) 개발 대신 만만한 대형 시설물 짓기에만 매달리다 보니 부지 매입과 공사 지연에 발목이 잡혀 돈을 쓰지도 못하는 스스로 마비 상태에 이른 것이다.
청도군 기획예산실 최규문 실장은 "행정안전부에서 파악하고 있는 자료는 실제 집행률 자체를 집계하는 것이고 지자체는 각 부서에서의 사업별 진도율을 파악하고 있어 수치상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소프트웨어 사업은 바로 집행 가능하지만 보금자리·문화센터 등과 같은 하드웨어 사업은 부지 사정이나 공사기간에 따라 집행이 늦어지니 집행률도 낮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도 뒤늦게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 3월 "시설 위주 투자를 극복하고 사람 중심의 소프트웨어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뿌려진 기금의 방향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윤정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탈락이 있는 구조가 아니고 '일단 준다' '어쨌든 써라'는 식의 배분과 운영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혁신적인 방안을 고려해볼만 한데 '돈'으로 지방소멸을 해결하려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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