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평가지표 확정·발표 혼선에 ‘TK 패싱’ 우려 고조
국가 치의학 R&D 66% 소액 과제 난립… “첨복단지 연계로 경쟁력 높여야”
대구, 비수도권 압도적 1위 치과 생태계 보유… “정치 공약 넘어 성과 중심 평가를”
대구 동구 신서혁신도시에 조성된 '첨단의료복합단지' 운영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케이메디허브 전경. 대구시 제공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을 둘러싸고 보건복지부의 평가지표 확정과 공모 절차가 혼선을 빚으면서 대구 지역 의료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당초 일정이 번복되는 사이 정치적 공세가 개입할 여지가 한층 커졌기 때문이다. 대구 치의학계는 정치논리에 밀려 외면받는 최근 일련의 'TK 패싱' 흐름을 막기 위해 공정한 공모를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대통령 공약, 스펙인가"…정치논리 들이대는 천안
복지부는 국립치의학연구원 공모를 위한 평가지표를 8월말 기준으로 확정했다. 공표 시점을 10월 이후로 미루겠다던 기존 입장을 번복한 셈이다. 정작 본격적인 공모 절차 개시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 경쟁 후보지 간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충남 천안시는 지난 14일 충남도와 함께 복지부를 찾아 "국립치의학연구원 천안 설립이 제20대와 제21대 대통령 지역 공약에 연속 반영된 핵심 현안인 만큼, 공약대로 천안지역 설립을 확정해달라"고 건의를 했다. 일종의 정치적 요구인 셈이다. 복지부가 당초 연구원 설립 지정 절차를 공모로 변경하자 입지적 강점 등 유치 논리를 보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 유치위원회는 "공약 여부가 아닌 객관적 연구 역량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국립치의학연구원은 국내 치의학 및 치과산업의 연구개발(R&D)과 육성을 전담하기 위해 설립이 추진되는 국가 연구기관이다. 복지부가 설립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유치 후보지는 대구를 비롯한 천안, 광주, 부산이다. 대구를 빼면 지난 6·3 지방선거를 통해 모두 여당이 단체장을 맡고 있거나 여당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센 지역들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진행한 연구용역 조사 결과, 이들 4개 후보 부지는 모두 기본적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정량평가에서 결판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복지부가 '정치적 균형 발전' 같은 정성적 평가지표에 가산점을 다소 과도하게 부여한다면 대구가 또다시 고배를 마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억 이하 소액 과제 66%…뿔뿔이 분산된 치의학 R&D
대구가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배경엔 대한민국 치의학 R&D가 직면한 절박한 위기 의식이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최근 5년간 국가 치의학 R&D 과제 중 1억원 이하 소액 과제 비율이 무려 66.2%(5천만 원 이하 39.7%, 1억 원 이하 26.5%)에 달한다. 국가 차원의 대형 인프라나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채 소액 과제로 뿔뿔이 분산돼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치의학 R&D는 이미 구조적 병목현상에 갇혀 '폐사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게 대구지역 치의학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 후보지의 치과산업 집적도·경제규모 현황. 대구시 제공
◆'생산·수출·인프라' 비수도권 압도적 1위…준비된 대구
이처럼 영세하고 파편화된 치의학 R&D 구조를 극복하고 국가 차원의 대형 종합 연구를 즉각 추진하기 위해선 이미 완비된 치과 산업 인프라와 원스톱 지원 체계를 갖춘 지역에 연구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가데이터처(2024년) 자료를 보면, 대구의 치과 산업 생산액(4천983억 원)과 부가가치액(3천586억 원)은 전국 2위권이다. 또 기업 수(43개)와 종사자 수(1천615명)는 전국 3위로 비수도권지역에선 압도적인 1위의 위상을 갖고 있다.
수출 경쟁력은 독보적이다. 지난해 대구의 의료기기제품 수출액은 2억2천만 달러로 경기·서울에 이어 전국 3위를 차지했다. 이 중 임플란트 수출액(1억7천900만 달러)이 전체의 81%를 차지한다. 메가젠임플란트·덴티스·스누콘 등 국내 10대 임플란트 기업 중 3개사 본사가 모두 대구에 있다.
특히 대구는 치의학 연구원 유치 후보지 중 유일하게 '국가 첨단의료복합단지(K-MEDI hub)'를 보유하고 있다.
허영주 대구시치과의사회장은 "첨단의료복합단지 내 의료 기관들이 집적해 있어 시제품 제작, 시험평가, 전임상·임상, 인허가까지 동일 단지에서 연계할 수 있는 '원스톱 기반'을 갖췄다"며 "연구원 설립 즉시 가동이 가능한 유일한 도시"라고 강조했다.
치과 관련 대학 재학생(2천694명)과 치기공·치위생 재학생(2천262명) 규모도 대구가 가장 크다. 그만큼 대구가 치의학 기초·연구개발에서 경쟁도시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셈이다. 대구가 유치 후보지로 점찍은 동구 동내동 부지(1만1천660㎡)는 즉시 착공이 가능하다. KTX 동대구역 및 대구국제공항과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전국 주요 거점과의 접근성 및 확장성이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국 6대 거점 KTX역에서 후보지까지 평균 소요시간도 대구가 가장 짧았다.
◆대구 유치위원회, 평가 공정성 확보에 '사활'
지난 19일 이만희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면담을 마친 국립치의학연구원 유치추진단. 왼쪽부터 안창현 경북대 치과대학장, 이원혁 대구유치위원장, 이만희 위원장, 예선혜 경상북도치과의사회장, 박세호 유치추진단장. 대구시 제공
최근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등에서 지역 소외를 경험한 대구·경북 의료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에 지역 치과계와 학계는 정치 논리를 배제한 공정한 평가 절차 마련을 국회에 직접 촉구하고 나섰다.
지역 치과계 대표단은 지난 19일 이만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전격 면담했다. 대표단은 이 자리에서 "국립치의학연구원은 지역 균형발전과 대한민국 치의학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인프라"라며 "정치적 외풍 없이 공정한 공모 절차를 거쳐 최적지에 설립될 수 있도록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건의했다.
이날 면담에는 박세호 국립치의학연구원 유치추진단장, 이원혁 대구유치위원장, 안창현 경북대 치과대학장, 예선혜 경북도치과의사회장이 참석했다.
박세호 유치추진단장은 "대구는 치의학 연구개발부터 전임상, 인허가, 생산, 해외 진출까지 전 주기 지원이 가능한 준비된 도시"라며 "복지부 공모 기준에 지역의 우수한 산업 인프라와 입지적 강점이 면밀히 반영될 수 있도록 국회 및 유관 기관과 지속적으로 소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원혁 대구유치위원장도 "연구원은 특정 지역의 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치의학 연구와 산업의 미래를 위한 국가 연구기관"이라면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어느 지역이 연구원을 통해 가장 큰 국가적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입지가 결정돼야 한다. 공약에 언급됐다는 이유가 입지 선정의 유불리를 좌우해선 안 된다"고 단언했다.
이어 "평가위원들도 각종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고, 정량·정성평가 기준과 배점을 사전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어느 지역에도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 공정함이 필요하다. 연구원 본연의 기능과 직결된 기준에 따라 당당하게 경쟁하겠다"고 밝혔다.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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