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24년 지역별 의료이용통계 전수분석
경북 의료비 35% 타지로 유출… ‘순유출 1위’
대구가 번 외지 진료비 다 모아도, 경북 유출액보다 6천800억 적어
암·심뇌혈관 중증 환자, KTX 타고 서울 빅5로 쏠림
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경북도민의 관외 진료비 유출액이 한 해 2조 4천억 원을 넘어선 가운데, 인접 거점 도시인 대구를 거치지 않고 서울·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바로 향하는 '대구 패싱'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특히 암이나 심뇌혈관 질환 등 급성기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중증 환자일수록 지역 의료에 대한 불신과 인프라 부족으로 수도권 직행을 택하면서, 수도권 쏠림을 막아줘야 할 지역 의료 방파제가 제 기능을 못 하고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남일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역별 의료이용통계(2010~2024년)를 분석한 결과, 2024년 기준 경북도민이 관외에서 지출한 진료비는 총 2조4천391억 원에 달했다. 도민 전체 진료비(6조9622억 원)의 35%가 외부로 유출된 것이다.
특히 전체 진료비에서 외지인 유입분을 뺀 경북의 '진료비 순유출액'은 2조287억 원으로,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많았다.
◆"대구가 막아줄 줄 알았는데"… 뚫린 지역 의료 방파제
당초 의료계에서는 경북의 의료 수요를 인접한 광역시인 대구가 흡수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대구 의료기관들이 외부 환자를 유치해 벌어들인 총 수입은 1조7천593억 원으로, 경북 도민이 밖으로 나가 쓴 돈보다 오히려 6천798억 원이나 적었다. 경북에서 유출된 진료비 중 최소 7천억~1조 원 이상은 대구를 건너뛰어 서울·수도권으로 빠져나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의 '의료 블랙홀'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경북의 관외 유출 진료비가 2011년 9천976억 원에서 2024년 2조4391억 원으로 2.45배 증가하는 동안, 서울의 진료비 순유입액은 8조4578억 원으로 2.93배 폭증했다. 2024년 한 해 동안 전국 17개 시·도 의료비 순유입 총액 중 무려 72.8%를 서울 혼자 독식했다. 반면, 대구의 순유입 지분은 10.7%에 그쳤다.
이대목동병원의 무료 셔틀버스. KTX 등 광역 교통망 확충으로 '의료유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수도권 접근성은 급속도로 개선되었으나, 이를 완충할 '진료권역별 전원 체계(의료전달체계)'의 강제성은 없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 중증 환자일수록 '하루 40만원' KTX 서울행
이같은 의료유출은 농촌 군 지역보다 중증 환자가 많은 주요 도시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질환의 중증도와 수술 강도를 나타내는 '관외 입원 1일당 진료비 단가'를 분석한 결과다.
경북 주요 도시인 포항시 북구(41만 원), 구미시(37.9만 원), 영주시(36.1만 원) 주민들의 관외 입원 1일당 진료비는 경북 평균(36.5만 원)을 웃돌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들의 평균 관외 입원 체류일수는 8.7~13.2일로 짧았다.
입원 기간이 짧고 하루 단가가 40만 원에 육박한다는 것은 암 수술이나 심뇌혈관 질환 등 '급성기 고난도 수술'을 받기 위해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영덕·청도 등 농촌 지역의 관외 입원 단가는 25만~28만 원 선이었고, 평균 재원일수는 20일에 달했다. 고난도 수술보다는 대구·안동 등 인근 지역으로 요양성 입원을 한 경향이 컸다. 중증 고난도 환자일수록 대구를 패싱하고 서울로 향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지역 의료 인프라 격차와 수도권 대형병원 브랜드 선호 등의 이유로 경북지역에서 매년 진료비의 35%가 서울로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 인프라 폐허에 '지역 병원 불신' 상존… 네트워크 구축 시급
환자 유출의 1차적 원인은 지역 의료 인프라 격차에 있다. 여기에 '수도권 대형병원'을 향한 브랜드 선호와 지역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기름을 붓고 있다.
인구 260만의 경북에는 중증 질환을 전담할 상급종합병원이 단 한 곳도 없다. 암 진단 핵심 장비인 PET(양전자 방출 단층촬영기)는 경북 전체에 단 2대(안동·포항)뿐이다. 경북 내 12개 군 지역은 종합병원조차 없다.
최근 70대 부친의 위암 치료를 위해 서울을 오가는 정성인(48·경북 영천)씨는 "대구 지역 대학병원에 예약했더니 집안 어른들에게 '부모 마지막 길에 자식이 도리를 안 한다'며 혼이 났다"며 "결국 서울 대형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광호(50)씨 역시 "장모님의 간암 치료를 위해 10년간 대구 지역 병원을 섭렵했지만 결국 병을 제대로 잡아낸 곳은 서울 병원이었다"고 했다.
의료기관과 인력의 서울 편중도 '대구 패싱'을 심화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병·의원과 약국, 보건소 등을 포함한 전체 요양기관은 10만3천803곳으로, 이 가운데 2만4천887곳(24.1%)이 서울에 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은 전체 47곳 중 14곳(29.8%)이 서울에 있다. 또 전체 의사 10만9천274명의 28.1%인 3만689명이 서울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역 의료 악순환'의 늪…진료비 유출, 재정악화와 투자 감소 불러
환자들의 서울 직행은 단순한 진료비 유출에 그치지 않는다. 환자와 보호자가 KTX를 타고 서울을 왕복하며 지출하는 교통비, 장기 재원 및 진료 대기를 위한 숙박비, 간병을 위해 직장을 쉬면서 발생하는 생산성 손실 등 '간접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지역 의료 체계의 구조적 악순환이다. 중증 환자가 대구·경북을 외면하면서 지역 대학병원들의 재정이 감소해 최첨단 의료 장비 도입과 우수 의료진 영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투자가 줄어들면 진료 역량이 떨어지고, 이는 다시 지역 주민의 불신을 키워 서울 직행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는 지역 의료 연관 산업 전체를 고사시키고 지역 주민 전체의 '생명안전망'을 위협하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 평소 중증 환자를 치료하며 역량을 유지해야 할 지역 거점병원이 무너지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대형 사고 등 서울로 갈 시간조차 없는 1분 1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에서 지역 주민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치명적 공백이 발생한다.
한동선 포항세명기독병원 병원장은 "경북지역 환자가 서울로 가는 것은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도 부족에다 수도권 대형병원에 대한 막연한 브랜드 선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병원장은 "경북의 진료비 순유출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 거점병원의 중증·응급진료 역량을 실질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존의 역량 있는 종합병원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실력 있는 의료진을 확충하고, 고난도 진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지역에서도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다'라는 신뢰를 만드는 것만이 수도권 의료 쏠림을 줄이는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평가 체계, 지역에 불리…지자체 간 행정 분절에 책임
전문가들은 '대구 패싱'의 근본적 원인이 개별 의료진의 실력이나 환자들의 개인적 선호를 넘어 정부의 실패한 의료 제도와 지자체 간 행정 분절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 체계가 지역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진료 권역을 나누면서도 정작 병원 지정 평가 시 수도권과 지역 대형병원에 동일한 인력·장비·환자 구성 비율 기준을 적용한다. 인구와 자원이 집중된 수도권 대형병원은 고득점을 받아 지정과 재투자의 선순환을 이어가는 반면, 인구 절벽을 겪는 경북 지역은 상급종합병원 평가 기준조차 맞추기 어려운 구조다.
민복기 대구시의사회장도 "대구의 상급종합병원은 중증·고난도 최종 치료에 전념하고, 경북의 거점병원은 응급 초동 치료와 회복기 의료를 맡는 식으로 기능을 명확히 나누고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야 한다"며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의대, 병원계가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지역 의료 파탄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KTX 등 광역 교통망 확충도 '의료 유출'을 가속화했다. 수도권 접근성은 급속도로 개선되었으나, 이를 완충할 '진료권역별 전원 체계(의료전달체계)'의 강제성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 환자가 원하기만 하면 1·2차 의료기관의 진료의뢰서 한 장으로 수도권 3차 병원 예약이 제한 없이 가능하다. 권역 내 거점 병원(대구권 상급종합병원)을 반드시 거치도록 강제하거나 수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차등적 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다 보니 KTX가 '서울 병원행 셔틀'로 전락한 셈이다.
지방자치단체 간 광역 의료 협의체의 부재도 사태를 키웠다. 대구의 상급종합병원과 경북의 시·군 거점병원을 하나의 의료 생태계로 묶어 응급·중증 환자를 신속히 전원하고 회복기 환자를 지역으로 회송하는 실질적인 광역 연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정흡 전 경북대병원 교수(예방의학과)는 "환자들의 수도권 대형병원 선호 심리도 작용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지역 의료진과 기관이 실력으로 승부해 환자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며 "과거 대구가 모발이식 분야 권위자를 앞세워 수도권 환자들을 불러 모았던 성공 사례를 다양한 분야로 계속 확장해야 '대구 패싱'을 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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