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는 상형문자다. 심심풀이로 모양이 재미있는 한자를 구경해 보자. 오목할 요(凹), 볼록할 철(凸)은 유치하고 우습다. 입 구(口), 날 일(日), 달 월(月) 역시 고민의 흔적이 없는 글자다. 가둘 수(囚)는 간단하나 의미심장하다. 둘러처진 벽 속에 사람이 갇혀 있다. 죄인, 포로, 인질 등 딱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표현할 때 쓴다.
간사할 간(姦)은 심하다. 페미니스트가 분개할 글자다. 여자 셋이 모였는데, 옳지 않다, 나쁘다는 뜻도 있다. 남자(男) 셋이 모이면 어떻다는 글자는 없다. 한자가 만들어진 시대의 반영이다. 요즘 이런 글자 만들었다가는 집중 포격으로 잘게 부서져 가루(분쇄 粉碎)가 될 것이다.
울릴 굉(轟)은 그럴 듯하다. 수레 여러 대가 모였으니 요란할 수밖에. 천둥소리, 폭발음, 폭포소리에도 이 글자를 쓴다. 물 아득할 묘()는 운치 있다. 물이 넘실넘실, 출렁출렁거린다.
힘쓸 비()는 안쓰럽다. 노력은 모름지기 힘들게 마련이다. '성내다, 노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노력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도 애석하게 실패와 좌절을 만나기도 한다. 분하고 억울하다. 그게 인생인데 어쩌랴.
돌무더기 뢰(磊)를 이름으로 삼은 청년이 있다.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굴, 복원에 참여하고 있다. 유적군 중 '차우 싸이 떼보다'라는 사원의 현장 관리 책임자가 스물다섯 살 중국 청년 왕레이(王磊)다. 베이징대학에서 전통 건축학을 전공한 공학도다. 앙코르는 돌무더기 유적이다. 그는 그곳에서 원도 한도 없이 돌무더기와 함께 지내고 있다. 팔자는 이름대로 간다.
한자는 상형문자임과 동시에 표의문자(뜻글자)다. 요즘 신세대들은 심심풀이 삼아 뜻은 무시하고 글자모양만 가지고 놀이를 한다. 한자를 놀이도구로 삼는 것만도 기특하다. 관심의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깊어질 것을 믿는다. 그들이 발견한 글자 몇 개를 소개한다.
일찍 증(曾)=팥빙수, 그림 도(圖)=디스켓, 모일 회(會)=아이스크림, 강 이름 과()=에프킬라, 버금 아(亞)=모래시계, 밝을 철(喆)=무 두 개, 첫째 천간 갑(甲)=파리채, 너 이(爾)=대문 등이다. 모양을 익히고 뜻을 알고 그것을 활용하는 길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70년대 한글 전용은 효율성 강박증의 산물이다. 요즘 다시 한자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자검정자격시험에 대한 관심도 높다. 중국의 도약과 무관치 않다. 약간의 한자를 알면 동양문화를 이해하는 데 용이하다. 일본글자는 한자의 곁가지다.
북한의 열악성은 한자를 배척한 교육에 책임이 크다. 북한 지식인조차 한자를 모르는 이가 많다. 유일한 우호국인 중국에 가서 상점 간판조차 읽지 못하니 딱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실감한다.
충동적·즉흥적 사고와 행동은 한자를 배척한 때문이란 연구가 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뜻글자적 규범을 버리고, 행동하고 후회하는 소리글자적 규범 때문이라는 연구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는 낡은 격언을 다시 생각한다.
최근 1~20년간은 웅변의 시대다. 달변과 궤변이 뒤섞여 창처럼 펄럭인다. 눌변과 침묵은 들어앉을 옹색한 골방조차 없다. 사색 없는 행동만 쓰나미처럼 몰려다닌다. 대박과 흥행이 시대적 소명으로 신봉된다.
정보가 권력인 세상이라 한다. 성공과 풍요를 톡톡히 제공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에는 따뜻한 가슴, 뜨거운 피가 없다. 싸늘한 철분만 있다. 언어는 정보 전달의 도구임과 동시에 감정, 정서, 사랑의 전달 도구다. 무수한 연애편지를 써본 이들이 인간을 사랑할 줄 안다. (*)
(대진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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