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결절로 `성악 유학` 중도 하차 "지금은 주방서 요리로 노래합니다"
자기 만의 맛에 대한 확신없으면 절대 식당 열지 말아야
음식의 깊은 맛은 요리실력보다 최고의 식재료에서 출발
열정 없고 기본도 없이 퓨전음식만 내 놓으면 문닫아야
![]() |
◇ 음지에서 양지를 겨냥하는 까를로
그는 기자와 갑장이었다.
그래서 더 진솔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지난 19일 오전 10시30분 동아백화점 수성점 맞은편 이면도로 상가는 초겨울 탓에 햇살도 뜸하고 그래서 아직 꿈나라에 있는 듯 했다. 심야로 갈수록 이 거리 표정은 반짝거린다. 메이저보다 마이너 상권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 거리 한켠에서 야생초 같은 자태를 지키고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까를로(CARLO). 흡사 내부는 갤러리 같고 공연장 같다. 지난 10월 봉산동에서 개인전을 가진 제이슨 젠킨스가 그린 요염한 여인의 자태가 인상적인 인물화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까를로는 이 집 오너셰프 김학진씨(51)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신세를 많이지고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 사부(師父)의 이름이다. 기자가 그를 보고 오너셰프라고 하자 그는 정색하며 손사래를 친다.
"아직 7년 정도 더 있어야 그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밑바닥에서 꿈과 절망을 동시에 만끽하며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
"스파게티도 100번 한 것과 1천번 해본 면발 수준이 다르듯 자고로 음식에 대해 뭘 안다고 하면 최소 십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한국은 셰프를 너무 쉽게 여기는 것 같아요."
그는 대화 중 가끔 눈시울을 조금씩 붉혔다. 팍팍한 지난 세월 탓이라라. 그가 직접 빼온 커피에 그가 직접 엄선한 영롱한 음악이 휘핑크림처럼 감돈다.
-어떻게 요리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는가.
"운명인 것 같다. 나는 원래 촉망(?)받는 테너였다. 고교 2년 때 조두남 작곡의 '선구자'를 한 옥파브 올려 불렀는데, 음악선생님이 그 소리에 무척 놀랐다. 그분의 권유로 성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셰프는 안중에도 없었나.
"물론이다. 계명대 음대를 졸업한 뒤 내 운명은 시험대에 오른다. 당시 나는 미국 필라델피아대에 입학하게 돼 있었다. 부모님들도 그렇게 여겼다. 그런데 운명의 사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동안 내가 알았던 전혀 다른 목소리를 가진 테너 김신환 선생님이었다. 충격이었다. 나는 엄정행류의 예쁘고 고운 목소리였는데 그의 폭발적이고 원시적인 파워에 단번에 사로잡힌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고 싶었다. 미국보다 이탈리아가 끌렸다. 부모님 몰래 1985년 미국행을 포기하고 이탈리아로 간다. 피렌체 콘서바토리(국립음악원 격)에 들어갔다."
◇ 유학가서 성대결절로 성악가 꿈 접고
-부모님이 상당히 실망했겠다.
"너무 실망해 나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의 가슴아픈 일도 부자간에 있었다. 이탈리아 상황도 설상가상이었다. 마지막 벨칸토로 불리던 지노베끼 교수한테 레슨을 받던 중 심각한 성대결절이 생겨 내 성악 인생도 끝이 나고 말았다. 목소리를 내보려하지만 울림이 날아가버리고 허물만 남은 목소리, 일명 '화이트 보이스(White voice)'로 전락하고 말았다. 1년동안 맘고생하다가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다. 고향으로 돌아갈까 싶었는데 부모님은 '오지마라'고 했다."
![]() |
-한국으로 돌아왔는가.
"절대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었다. 문제는 나는 이미 단수여권 시효가 끝나 불법체류 상태였다. 영사관에서도 빨리 국내로 돌아갈 것을 종용했지만 그대로 눌러앉았다. 성악을 그만두고 훗날 내 인생의 두 번째 사부가 되는 패션의류유통업 CEO였던 까를로가 이탈리아 관할 경찰청을 통해 체류허가증서를 만들어 주었고, 한국 영사관에서도 할 수 없이 그 서류를 토대로 피렌체 체류허가 1호 한국인 여권을 발급해줬다. 이탈리아는 좋은 친구가 있으면 안 되는 일도 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나라였다. 'All or Nothing'의 나라였다."
-이탈리아 음식과의 인연에 대해 말해달라.
"당시 피렌체에는 한국식당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어쩔수없이 이탈리아 현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상당수 유학생은 이탈리아 정통식을 못 먹고 한국식당 근처만 맴돌다 올 것이다. 돈이 없었을 때는 공산당에서 꾸려가는 무료급식소 음식도 먹었다. 파스타, 샐러드, 빵, 고기 한 점으로 구성돼 있어 결코 가난한 티가 나지 않았다. 후에 까를로 밑에서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비즈니스 음식을 먹었다. 그것이 훗날 내 자산이 된다. 이때 나는 이탈리아 요리에 관심이 많아 단골식당 셰프를 통해 하나씩 메뉴를 익혀나갔다. 집에 와서 배운대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무려 170여종의 정통 이탈리아 요리 레시피를 확보하게 됐다."
![]() |
◇ 성악가 NO, 사업도 망하고…이탈리아 요리 셰프로 변신
-이탈리아에서 식당을 오픈했는가.
"IMF 외환위기 때 나도 이탈리아에서 하던 사업이 망했다. 날 도와준 까를로가 "이제 곧 한국에도 이탈리아 음식 붐이 일 것이니 고향에 가서 이탈리아 식당을 열라"고 권유했다. 그 일환으로 피렌체에서는 꽤 큰 규모의 제로제로란 식당에서 6개월간 마씨 밀리아노 오너셰프한테 요리를 배운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요리술은 아마추어 수준도 못됐다."
-음식 사부한테 혹독한 지적을 많이 받았겠다.
"사부는 처음부터 음식을 가르치지 않았다. 식당 경영주로서 갖춰야 될 소양교육에 중점을 뒀다. 3일간 손님과 종업원 동선을 익혀라고만 했다. 집에서 취미로 음식 만드는 것과 외식사업을 차원이 다르다는 걸 깨우쳐 준것이었다. 식당은 끼니때가 아닐 때는 고요하지만, 끼니때는 북적댄다는 걸 인식시켜줬다. 그리고 하산을 해서 대구로 와서 자리를 깔았다."
![]() |
-대구와서 장사를 하니 처음에는 어떻던가.
"2007년 4월 대구로 와서 현재 자리에서 오픈을 한다. 부지선정에서부터 실패였다. 여기는 형식적으로는 변화가 같은 데 실은 아니었다. 1년반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손님이 한 명도 들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정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개업한 여름, 사부도 대구에 왔는데 너무 후미진 골목에 문을 연 것 같다고 염려해주었다. 나는 정통 스타일의 파스타를 냈다. 밍밍하고 단순했다. 10명 중 6명은 '파스타가 왜 이래요', 그중 4명은 '아저씨 제대로 하시네요' 하더라. 긍정적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주로 유학파 성악가이거나 외국 경험이 많은 비즈니스맨이었다. 정통스타일 중 초창기 메뉴에서 사라진 게 많다. 대구 사람들은 국물이 좀 있고, 자극적인 걸 좋아하더라. 30g짜리가 17만원에 들어오는 고급 향신료 샤프란을 넣어줘도 잘 몰라주더라. 그러니 명 셰프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달라지고 있다. 본토 스타일에 중독된 마니아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 후배들한테 한 수 가르쳐주고 싶은 게 뭔가.
"본토 셰프들이 내게 항상 한 말이 있었다. 요리는 시간의 예술이다. 맞다.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란 지적이다. 처음에는 개량컵이 필요하지만 같은 음식을 한 만 번 정도 만들면 컵이 필요없는 것이다. 자기 맛에 확신이 없으면 절대 식당하지마라. 죽도록 고생하고 망한다. 기본이 완성되기 전에 레시피를 절대 변형시키지마라. 아마추어일수록 새로운 식재료를 많이 넣어 특이한 걸 만드려고 하는데 그러면 영원히 자기 음식 못 만든다. 재료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다수 원가 대비 식재료비가 25%가 넘어면 망한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도 50%가 넘는다. 다시말해 이윤을 추구하면 결국 음식은 구렁텅이로 떨어지고만다. 제발 돈 때문이라면 다른 사업을 펼쳐라. 음식에 대한 설렘, 그리고 열정이 사라지면 음식 맛도 메말라버린다. 대구와 보니 일반 셰프들이 너무 레시피 공개에 인색하더라. 그걸 공개하면 자기 자리가 없어지는 줄 아는데 모두 공개해도 만드는 이의 숙련도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까를로 TIP
여기 음식값은 정말 착하다. 안심스테이크 코스도 2만9천원, 랍스터 연어 스테이크 코스도 3만5천원이다. 물가를 감안할 때 그렇게 받아 남는 지 모르겠다. 셰프의 이루지 못한 꿈 때문인지 매월 유명 성악가 등을 불러 매월 마지막주 금·토요일에는 살롱음악회를 연다. 식사 포함 3만~5만원선(예약 필수). 지금까지 33번 열었단다. 출연자에게 적잖은 개런티도 지급한다. 이탈리아 요리교실도 2008년 4월부터 열었고 현재 100명의 졸업생이 있다. 초·중·고급 모두 10강좌이고 수강료는 30만~50만원. 김 셰프가 가진 모든 레시피를 공개한다니, 본전이 아깝겠는가.
이날 기자는 전채로 토스카나식 토마토, 포르치니 버섯 부르스켓타와 거위간이 어우러진 안티 파스토 토스카노(Antipasto Misto Toscano), 엑스트라버진 오일, 코냑, 샤프란으로 맛과 향을낸 스파게티인 스파게티 알로 자페라노(Spaghetti allo zafferano), 토스카나 지방에서 가져온 포르치니 버섯으로 만든 탈리아텔레 알라 풍기 포르치니(Tagliatelle alla funghi porcini), 토스카나식 채끝 등심 스테이크인 비스테카 디 만조(Bistecca di manzo), 그리고 지중해식 야채와 치즈 샐러드, 디저트로 100%초콜릿,호두 ,코인튜르향의 정통 유럽식 수제 케이크인 브라우니(Brownie)를 먹었다. 오랜만에 접대(?)를 받았다고 해야 하나. (053)781-5655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