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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로 온 외지음식들 -<중> 제주 고기국수와 안동 헛제사밥

2012-02-03
돼지국밥에 잔치국수를 합쳐놓은 것 같은 제주의 명물 고기국수. 중면 대신 채썬 묵을 넣으면 경북 북부 전통음식인 태평추를 연상시킨다.


제사상 같은 ‘제비원’식당의 안동헛제사밥 정식 한 상 차림. 고추장 대신 지렁이 놓여 있는 게 인상적이다.


서울 출신으로 사업차 제주로 갔다가 제주전통음식에 반해 대구에서 제주음식인 고기국수를 팔고 있는 유성현 사장.

■ “매콤하지 않은 제주맛 지켜라”

◇…대구에서 ‘제주’란 말이 들어간 상호로 나름 입지를 굳힌 식당은 수성구 범어동 법원옆에 있었던 제주가든이다. 1979년 시내 반월당 덕산탕 옆에서 ‘제주옥’으로 출발했는데 제주도 관광 특수를 누리기 위해 일부러 상호에 제주란 말을 넣었다. 이후 동인호텔 근처로 갔다가 90년대초 범어동으로 옮겨 적잖은 돈을 벌었다. 나중에 그 부지는 두산위브더제니스에 팔린다.

제주갈치 전문점은 2000년 들면서 붐을 이룬다. 국내 갈치는 크게 제주도의 은갈치와 목포의 먹갈치로 분류된다. 은갈치는 낚시로, 먹갈치는 그물로 잡는데 모두 9~11월이 제철이다. 대구의 경우 90년대까지만 해도 항공 수송료 때문에 ‘당일바리(‘그날 잡은 갈치’란 뜻의 제주도 선주들의 은어)’는 언감생심, 냉동갈치만 유통됐다. 89년 남구 봉덕동 봉명파출소 근처에서 출발, 현재 들안길로 이전한 정아갈치(대표 이상면)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갈치전문점. 뒤에 중구 삼덕동 제주테우갈치, 들안길 성산포갈치 등이 뒤따른다.

삼덕동 테우갈치는 ‘테우’란 제주 방언을 지역민들에게 전파한다. 테우는 ‘뗏목’을 가리키는 제주도 방언. 통나무 10여개를 나란히 엮어서 만든다. 길이는 5m, 너비는 2m 정도. 테우갈치는 테우에 실은 조리 모양의 그물로 잡은 갈치를 말한다. 본래 테우는 한라산에서 캐어 온 ‘구상나무(香木)’로 만들었다.

◆대구 첫 제주음식 전문점 수성구 상동의 ‘제주 고기국수’

수성구 상동에 있는 ‘제주 고기국수’는 제주음식 전문점이라 해도 될 정도로 제주풍이 짙다.

다들 어탕국수는 알아도 고기국수는 뭔가 잘 모른다. 돼지국밥에 밥 대신 소면을 넣은 ‘돼지육국수’ 스타일이다. 얼핏 경북 북부지방에서 유행하는 묵과 돼지를 넣은 전골처럼 끓인 ‘태평추’와 비슷하다. 국수 대신 모자반(톳)을 넣으면 제주도의 대표 국인 ‘몸국’이 된다.

제주 올레 특수 때문에 인기절정인 음식이 바로 고기국수. 제주시 삼성혈 바로 옆에 ‘제주 고기국수거리’가 15여년 전부터 형성됐다.

고기국수는 돼지사골 육수에 중면을 넣고 고명으로 삼겹살을 7~8점 얹은 것이다.

사장 유성현씨(53)는 서울 출신인데 사업차 제주도에 갔다가 된장을 베이스로 한 제주식 해물탕의 하나인 ‘오분자기(새끼 전복) 뚝배기’ 등 제주음식에 반해 결국 대구로 와서 전문식당을 연다. 유씨는 제주도 고기국수 골목에 있는 삼대국수로부터 2개월간 요리 비법을 전수했다. 2008년 7월 수성구 경신고 입구 로데오골목 근처에서 대구 첫 제주국수를 오픈했고 지난해 6월 지금 자리로 왔다.

얼큰한 육개장에 길들여진 마니아들은 ‘처음본다’ ‘설렁탕 같다’ ‘일본 라멘인 돈코츠 같다’ 등 반응이 다양했다.

어떻게 만들까? 사골 4개로 곤 초·재·삼탕 육수를 알맞게 섞어 기본 베이스 육수를 만든다. 제주식은 냄새 제거를 위해 약초 등을 넣지 않는다. 중면 사리도 제주 것이 더 굵다. 당근·유부·쪽파를 고명으로 얹고 고춧가루·깨·김가루를 올린다. 잔치국수 육수보다 훨씬 두껍다.

육지 족발보다 몇 배 더 쫄깃한 ‘아강발’도 낸다. 아강발은 제주식 족발요리. 족발 중 발목 아랫 부분만 사용한다. 바다 고둥의 일종인 보말을 갖고 끓인 보말미역국도 있다. 보말은 제주도 표선 시천리 어촌계에서 온다. 5~6월이 제철. 삶아서 속만 빼서 사용한다. 도마에 올린 암퇘지 삼겹살인 ‘돔배고기’도 대구에선 아직 낯설다.

유 사장은 “된장에 박아 삭힌 고추 장아찌를 내는 것 외 거의 제주도 본토식”이라면서 “일부 손님들은 더 매콤한 걸 원하지만 제주식 식당을 선언한 만큼 원칙을 고수할 작정”이라고 다짐한다. (053)761-3877


안동김씨의 한 문중 출신으로 친정 어머니로부터 배운 안동비빔밥을 대구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는 제비원 안주인 김은숙씨.

■ “고추장 없는 비빔밥 사수하라”

◇…비빔밥만큼 지역색이 강한 음식도 드물다. 특히 반가의 비빔밥은 요리 과정이 무척 까탈스럽고 엄격하다. 안동의 한 문중은 들어가는 나물 크기와 색깔까지도 정해놓았다.

안동찜닭과 간고등어, 그리고 안동국시는 이미 대구음식으로 편입됐지만 ‘안동식 비빔밥’은 아직 대구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10여년전 팔공산 자락에 안동 헛제사밥 전문점 2곳이 론칭됐지만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고 문닫고 말았다. 대신 강원도 정선발 곤드레밥 정식이 헛제사밥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 달서구 대곡동 ‘제비원’

안동비빔밥의 본질은 뭘까?

달서구 대곡동 대진중·고 근처에 ‘안동비빔밥’ 전문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2009년 오픈한 ‘제비원’이다.

제비원은 숱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옛날 관리들이 묵고 가던 여관의 일종인 원(院)이었던 제비원은 안동시 이천동 연미사에 있는 보물 115호 12.38m 마애여래입상을 의미한다. 국내 대표적 무가(巫歌)로 불리는 ‘성주풀이’에도 ‘성주의 본향이 바로 제비원’이란 구절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은 지맥을 끊기 위해 칼로 석불의 목을 잘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는 안동주조회사의 소주 이름도 제비원.

본관이 안동인 안주인 김은숙씨가 남편 문경훈씨와 함께 안동비빔밥을 축으로 한 안동헛제사밥 정식을 차려내왔다. 박달나무 같이 야물고 오디빛 툇마루를 보는 것 같다.

쇠고기전, 황태구이, 홍합조림, 간고등어전, 동태·부추전, 두부선 등이 스테인리스스틸 제기에 담겨져 나왔다. 비빔밥에 등장한 나물을 분석해봤다. 오이·고사리·도라지·표고버섯·숙주나물·얼갈이 배추·콩나물 등이 한 줌씩 도리뱅뱅이처럼 앉아 있었다. 그런데 고추장이 없다.

김씨는 “안동비빔밥에는 절대 고추장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말했다. 헛제사밥용 비빔밥에 고추장을 넣는다는 건 된장에 물엿을 넣는 것과 진배없다고 본다. 밥을 넣고 젓가락으로 비벼 한 줌 먹어봤다. 나물간이 예사롭지 않다. 짭짤하면서도 담백하고 그러면서도 느끼하지 않다. 여느 식당 비빔밥은 나물을 별도로 간을 하지 않는다. 그냥 잡다한 재료를 넣고 고추장에 비벼먹도록 해서 풋내가 나고 결국 나물 맛은 사라지고 고추장 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동에선 그런 비빔밥을 ‘본배없는 밥’으로 멀리한다.

“안동 선비들은 식사할 때 절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숟가락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나물을 입 안으로 넣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입에 들어가기 쉽고 입술에 걸리지 않도록 나물을 1~2㎝ 짧게 썰어냅니다. 그게 여느 비빔밥과 다른 점일 겁니다.”

오이도 속을 파서 잘게 썰어 소금으로 약간 절여 30분간 둔 뒤 이를 꽉 짜 다시 센불에서 참기름으로 볶아낸다. 배추도 물이 나지 않도록 데쳐 꽉 짠 뒤 사용해야 하고, 콩나물도 굵은 건 맛이 없어 숙주처럼 가는 게 원칙이다. 콩나물은 다른 나물보다 더 오래 익혀야 제맛이다. 여름철에는 말린가지도 별미로 낸다.

김씨가 특별하게 여기는 고명이 있다. 김가루처럼 보이는 미역가루다. “친정 어머니는 늘 ‘미역숙지’라고 했어요. 미역을 잘게 썰어서 참기름 두른 프라이팬에서 10분 정도 볶으면 우전차처럼 잘게 말려듭니다. 그냥 해초류를 넣으면 다른 나물과 잘 섞이지 않죠. 집안 어른들은 이 고명이 없으면 안동비빔밥이라 하지 않을 정도로 귀하게 여깁니다.”

전주비빔밥에 나오는 당근도 안동에선 천박스럽게 여겨 넣지 않는단다.

개업할 때 부친한테 눈총도 많이 받았다.

“개업 현수막에 안동김씨 무슨 무슨 파라고 알렸더니 아버지가 ‘집안 팔지마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부부는 제대로 된 안동비빔밥을 만들자고 다짐하면서 안동댐 근처 유명 헛제사밥집을 찾았는데 자신들이 생각한 반가의 맛이 아니라서 무척 실망했단다.

“우리 비빔밥은 나물마다 간이 잘 배이도록 나물 한 가지씩 프라이팬에서 볶아 내는 게 특징이죠. 나물 모두 제 맛이 나면서도 먹을 때는 어우러진 한 가지 맛이 나야 됩니다. 이게 요리의 포인트입니다.”

부부가 가장 안타까울 때는 손님들이 너무 싱겁다면서 고추장을 갖다 달라고 할 때다. 잘 설명해주면 다들 이해한다.

이집 육개장은 옛날 맛이 감돈다. 더 깊고 맑은 맛을 위해 일반 쇠기름 대신 갈비뼈에 붙은 기름만 고집한다.

일반 안동비빔밥은 6천원. 곁반찬까지 맛보려면 하루 전에 예약해야 된다. 헛제사밥정식은 1만2천원. (053)633-5338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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