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초밥·된장초밥 등 그림처럼 선보일 ‘초밥개인展’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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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의 경우 일본 조미료의 5인방으로 불리는 ‘사시스세소’를 안다. 그게 뭐지?
사는 사토(설탕), 시는 시오(소금), 스는 스(酢·식초), 세는 쇼유(正油·간장), 소는 미소(味曾·된장). 그게 다가 아니다. 간장도 타래(요리용 양념간장)·덴다시(天汁·덴푸라용 간장)까지 건드려야 한다. 거기다가 칠리분말·검정깨·오렌지껍질·산초·생강·김 등 7가지 재료가 들어간 꼭 ‘라면 분말수프’처럼 생긴 일본식 조미용 양념인 ‘시치미(七味)’까지 내밀면 겨우 일본 조미료 좀 안다는 소릴 듣는다.
초밥만 해도 참으로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일본 전역에 포진해 있다.
마니아는 앉는 자리도 프로답다. 셰프가 선 채로 초밥을 빚는, 작업대 구실을 하는 다이 공간을 멀리하고 구석 방으로 간다면, 그는 좋은 초밥을 먹을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초밥이 셰프의 손에서 떠나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대구에도 ‘초밥 하면 낸데’라는 셰프가 좀 있다. 하지만 대구의 초밥문화는 서울에 비해서 왠지 설익고 조금은 무례한 것 같다. 밥 위에 생선류를 올린다고 모두 초밥인 건 아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 메뉴를 실험하고 부족함을 발견하는 상상력과 창조력 가득한 셰프가 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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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안계미 사용…
전용 나무통에
밥 보관해 수분유지
일본식 계란찜은
기포 완벽 제거
“청소가 요리의 시작이자 끝…
제대로 된 셰프는 사시미용 칼
10여종 가져야…
서울 가서 충격
손님수준 높아
공부 안하면 안돼…
스키다시 아닌
회로만 승부”
◆ “저는 대학 안 들어갔습니다”
민병용 셰프(38).
현재 대구시 수성구 들안길 초밥전문점 ‘민수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20여년 경력의 그를 지난 9일 밤 9시에 만나 자정 무렵까지 쉼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자기보다 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많다”면서 인터뷰를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지난 3월20일 KBS 스펀지 ‘한점 승부’를 유심히 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최고의 초밥왕을 찾는 스시배틀 프로였기 때문. 우승자는 현재 서울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근처 두산인프라코어 지하에 있는 천상(天翔) 여의도 직영점의 셰프 정종태씨. 정씨는 고등어초밥으로 1등을 했는데 민 셰프는 “초밥왕을 찾는 자리에 대구 출신이 한 명도 뽑히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습니다. 저도 그들 못지 않은 초밥을 만들어 보여줄 수 있었는데….”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식당에는 그를 포함해 모두 13명의 셰프가 있다. 그는 꼭 축구감독 같다. 3인방 공격조는 김기홍·김도완·김수중. 김기홍은 사시미와 초밥, 김도완은 초밥과 물품구입, 김수중은 각종 소스 및 탕, 조림 등을 커버하고 있다. 막내는 보조로 있는 손희철씨(25). 다이석은 모두 8개, 룸은 8개.
2005년 12월, 꿈에 그리던 자기 초밥집을 갖게 됐다.
경남 거창 출신인 그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김영삼 정권 때 ‘신한국인’이란 말에 매료돼 요리사의 길로 들어선다. 경남 거창 가조에 있는 한 학원에서 3개월 요리를 배워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하지만 그 실력은 구구셈 하는 정도. 정식으로 식당에서 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고향을 떠나 맨 처음 달서구 송현동 승마장 근처에 있었던 대광초밥에서 요리의 기본기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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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정식. |
“요리의 출발은 청소인 것 같습니다. 올챙이들은 청소를 천하게 여기는데 그래선 크게 될 수 없죠. 어찌보면 청소가 요리의 시작이자 끝인지도 모릅니다. 청소를 잘 하고 식재료를 잘 장만해야 비로소 좋은 요리가 가능합니다. 요리 후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으면 식재료를 망칠 수 있습니다. 그 시절 선배들이 왜 청소부터 엄격하게 시켰는지 이제 조금 알 만합니다.”
하지만 주인과 주방장의 갈등으로 3개월 만에 그만둔다. 이어 현재 수성구 대우트럼프월드 자리에 있었던 금강초밥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때 대구 일식문화가 뭔가 좀 이상했다. 이런 게 초밥이 아닌 것 같았다. 흉내를 내는 것 같았다. 서울의 초밥문화가 궁금했다. 서울로 간다. 강남구 역삼동 상록회관 뒷골목에 있었던 한 초밥집이었다. 현재 ‘Mr 초밥왕’으로 불리며 강남구 청담동에서 스시효 오너셰프로 있는 안효주와 쌍벽을 이루는 국내 초밥 1세대 거장을 거기서 만난다. 매일 혼이 났다. 대구식 칼질이 ‘마구잡이’라는 걸 깨닫는다.
“칼질을 했는데 사부가 기겁하며 반년 이상 칼을 못잡게 하더군요. 숯돌에 칼 가는 것 하나도 정말 어렵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시미용 칼은 양 날쪽 쇠의 경도가 달라 갈 때도 더 강한 우측이 10번이라면 좌측은 2~3번 갈아야 되더군요. 일식용 칼을 ‘호죠(丁)’라 하는데 제대로 된 셰프는 최소 10여종을 가져야 하고 이들 칼도 용처가 각각 다릅니다. 생선과 육류를 자를 때는 데바호죠, 사시미를 만드는 사시미호죠, 채소류를 다듬는 우스바호죠 등으로 나눠집니다. 요리는 신성불가침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요리기구와 식재료에 대한 기본기부터 다시 배워야만 했습니다.”
◆ 대구 공짜 스키다시 천국…본 메뉴는 지옥
서울에 갔을 때 그의 나이는 28세.
“서울 올라 오기 전 대구의 초밥문화는 거의 횟집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죠. 공짜 스키다시가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초밥집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니 일본 본토처럼 모든 개별 메뉴에 가격이 매겨져 있더군요. 공짜는 없었습니다. 달랑 초밥 한 접시 갖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 단골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제가 선배에게 ‘스키다시를 듬뿍 줘야 불만이 없을텐데요’ 하니, 선배가 ‘회 먹을 때 회만 먹으면 되지 다른 건 필요없다’고 하더군요. 저한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당시 대구의 초밥 옆엔 ‘정통’이란 말이 붙기 곤란했다. 그냥 횟집의 부대 메뉴 중 하나가 초밥이었다.
자기만의 색다른 초밥, 손님도 원하지 않고 셰프들도 매너리즘에 빠져 그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냥 광어와 새우 정도, 저급한 분말 와사비만 발라줘도 흡족하게 먹었다. 분말보다 몇 배 더 비싼 생 와사비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니 초밥집도 횟집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저는 서울 단골의 질문 수준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평소 못 보던 메뉴가 나오면 그 식재료는 어디서 구입했고, 가격은 얼마고, 레시피에 대해서도 성가실 정도로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다이 앞의 셰프들은 전인미답의 경지를 찾기 위해 엄청 연구하더군요. 마구로초밥일 경우 참치는 죽을 때까지 헤엄치며 잠을 자지 않는 어종이란 정도의 전문적 정보를 알려주더군요. 손님수준이 높으니 자연 셰프들도 덩달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사부는 매일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갖고 왔지만 직원보다 먼저 출근했다. 오너셰프의 권위라는 게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 온다는 걸 절감한다. 공부를 하자! 민 셰프는 전문서를 사서 주경야독을 한다. 그리고 대구로 왔다.
◆ 민 셰프의 초밥라인
일단 일반 쌀보다 4천~5천원 비싼 의성 안계쌀로 초밥을 만든다. 밥을 지을 때 물과 쌀을 1대 1로 가지만, 햅쌀일 경우 수분이 많아 물을 조금 더 줄인다. 밥을 한번 할 때마다 40인분을 하는데 촛물은 설탕 3, 식초 2, 소금 1, 정종, 다시마, 레몬을 섞어 만든다. 초밥의 표준 온도는 인간의 체온과 같다고 보면 된다. 36.5℃,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실온에 노출시켜선 안된다. 그래서 초밥 전용 나무 용기인 ‘한다이(飯台)’를 사용하고, 초밥을 다이로 옮겨온 뒤에도 비닐을 깐 나무통에 초밥을 보관한다. 밥알이 마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축축한 수건 등으로 덮어놓아야 한다.
전채 요리로 나오는 일본식 계란찜인 ‘차왕무시’도 기포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차왕은 ‘찻잔’, 무시는 ‘찜’이란 뜻이다. 계란은 물과 1대 1 비율로 잘 저어주면서도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된다. 한꺼번에 60~70개를 찜통에 넣어 쪄내기 위해 찻잔에 나눠 부을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에 나무종이인 ‘우수히다’로 표면에 떠 있는 거품을 완전하게 제거한다.
초밥 종류는 계란·광어·돔·우럭·연어·참치·새우·전복·쇠고기·개불·아스파라거스 등이다. 초보자를 위해 먹는 순서를 알려준다.
“일단 계란초밥부터 먹고, 다음에 광어·돔·우럭 같은 흰살생선, 다음은 마구로 같은 붉은살 생선, 이어 고등어 같은 등푸른생선, 아나고, 쇠고기, 패류, 마지막엔 디저트 같은 아스파라거스 초밥순으로 먹어보세요.”
그는 밥알을 몇 개 뭉칠까?
광어처럼 오래 씹어야 되는 흰살생선일 경우 밥알을 좀 더 넣는데 보통 300알, 참치 등 부드러운 생선은 220알 정도면 충분하단다. 이는 어떤 경도를 가진 생선류가 올라가느냐에 따라 밥알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보리차가 안 보여 찾았다. 그건 여름에 내고, 대신 동절기엔 녹차류를 낸단다. 원래 이 맛에서 저 맛으로 잘 건너가도록 해주는 게 보리차인데 일식당에선 빼놓을 수 없는 메뉴이다.
점심특선은 1인분 2만원, 저녁 초밥정식은 3만(초밥 10 조각)~4만원(12 조각). 사시미초밥은 4만5천~8만원. (053)768-2727
◆ 향후 계획
지역에서 처음으로 초밥 개인전을 갖고 싶단다. 일명 ‘초밥디너쇼’. 쉬는 날인 일요일을 이용할 거란다. 1인분에 10만원 정도 내, 단골 및 지역 미식가를 부른다. 평소 시간 등의 제약 때문에 쉽게 낼 수 없었던, ‘이게 초밥’이란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민병용류의 초밥’을 그림처럼 선보이고 싶단다. 가령 과일초밥, 된장초밥 같은….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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