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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5)대구 대명동 '미누' 박주철

2012-05-18

간판 대신 자리한 레스토랑 ‘미누’의 상징
프랑스요리 하는 이 남자 파리 한 번 안가봤다는데…
양식 마니아들이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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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 하나하나의 물성과 먹는 법을 직접 테이블 서빙하면서 알려주는 '미누' 오너세프 박주철씨.

일단 간판이 없다. 그래, 오너셰프라면 그 정도 고집스러움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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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대신 자리한 레스토랑 ‘미누’의 상징 고양이 그림.

앞산순환도로 터널 구간을 지나 고가도로 바로 오른쪽으로 빠지자마자 앞산큰골6길로 우회전. 200여m 주택가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 골목 안에 고양이처럼 앉아 있는, 대구에선 상대적으로 보기 힘든 프랑스 레스토랑 ‘미누’가 나타난다. 세 번째 그 식당을 찾았는데 나름 만족도가 높았다.

프랑스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건물이 근사한 건 아니다. 퇴락한 70년대 스타일의 1층 양옥집을 자기 필 대로 리모델링해서 오픈했다. 간판은 미누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 그림 하나로 대체했다. 근처 레스토랑 도도멘션 주인 김도관씨가 고양이 그림 하나를 선물했는데 박주철 오너셰프(35)는 그걸 갖고 명함을 만들고, 페인트통만한 크기의 나무통에도 부착해서 가게 입구 화장실 지붕 위에 올려뒀다. 멀리서 보면 꼭 고양이가 손님이 오는 걸 멀찍이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미누는 어쩜 애숭이급에 속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젠 경력만이 능사는 아닌 세상이 도래한 것 같다. 자기 장르의 메뉴에 올인하면 매너리즘에 빠진 구닥다리 선배보다 더 깊이 있는 메뉴를 개발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대담하게도 프랑스 요리 전문점이라면서도 프랑스 유학 한번 다녀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양식 좀 안다는 마니아들은 이집 메뉴를 맛보고선 “대뜸 프랑스에 몇년 있다 왔느냐”고 질문한다. 트집을 잡으려면 모든 게 흠이지만, 그래도 미누는 일단 그 정도면 연착륙에 성공한 듯.

 퇴락한 70년대식 양옥 개조
 간판은 지붕 위 ‘고양이 그림’
 영양사 아내와 예약제 운영

 영어판 책으로 佛요리 독파
 낮에 배우고 밤에 메뉴 내놔

“화장 짙은 스테이크는 가라”
 데미글라스소스도 안 얹어
 부재료 최소화 고기質로 승부

 푸아그라는 절인 사과와 매치
 3대수프 부야베스 첫 선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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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핑을 최소화한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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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인 사과를 토핑한 푸아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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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수프인 ‘부야베스’

◆ 고시원에 배수진 치고 서비스 배워

영천 출신으로 계명대 환경과학과를 졸업했다.

참 말쑥하다. 피부가 정말 아이 같다. 친절이 몸에 스며들어가 있다. 알아보니 나름 서비스업계에서 산전수전 좀 겪었다.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부모 몰래 고시원에 배수진을 치고 서울 노량진 근처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했다. 운이 좋았다. 채용이 끝났는데도 그는 감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점장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았다. 이후 대구의 TGI 대구역점, 서울 VIPS 도곡역점, 나중에는 CJ푸드에 정식으로 채용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모 호텔 계열 아모제에서 운영하는 오므토라토란 오므라이스 전문점 신규매장 직원 교육도 담당했다.

그러다가 ‘이제 창업하자’고 다짐한다. 대구시 중구 동성로 금융결제원 근처 미스터피자 2층에서 보증금 5천만원에 월 300만원 임차료를 내면서 친구와 함께 ‘와인포차’를 연다. 15종류의 와인과 기본안주로 소시지를 내는 볼품없는 와인카페였다. 석달이 지나자 빚이 1천만원이 생긴다. 보증금까지 까먹는 단계에서 손님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손님이 너무 많이 오는 것도 불편했다. 초심을 잃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시 테이블 3~4개뿐인, 허름하지만 자신들의 체취가 묻어나는 공간을 차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황금동 복개도로 인근 원룸 주자창 옆 관리사무소를 용도변경해서 ‘모네꼴(프랑스어로 나의 학교)’을 연다. 13개 메뉴를 코스로 내며 1인분에 7만여원을 받았다. 참 대책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루의 반은 영어판 프랑스 요리책을 갖고 하나씩 요리를 독파해나가기 시작했다. 오전에 요리를 배워 밤에 메뉴로 내놓는 식이었다. 지역의 몇몇 고수의 레슨도 받았다. 선배들도 어이없어 했다. 그런데 그는 밀리지 않았다.

“예전 패스트푸드점에서 배운 건 조족지혈이다. 양식당 오너셰프는 공화국 하나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챙길 게 많더라.”

◆ 미누의 풀코스 정찬을 맛보다

건물 전면을 진자줏빛으로 칠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와인빛 벨벳천이 벽체를 육감적으로 감싸고 있다.

주방에는 박 셰프와 영양사 자격증을 가진 아내 김은희씨 둘만 있다. 철저하게 예약시스템으로 운용한다. 맛보다 재료에 올인한다.

맨먼저 작은 럭비볼처럼 생긴 바게트가 나온다. 직접 구웠다. 아뮈즈 부쉬(Amuse Bouche·전채요리)는 토마토와 치즈, 바질이 어우러진 카프레제. 녹색·하얀색·빨간색이 어우러진 마치 이탈리아 국기 같은 초간편 샐러드 같다. 그리고 치킨 스테이크, 애플민트 셔벗, 스테이크, 부야베스, 퐁당 쇼콜라, 홍차 순으로 나온다.

이날은 몇 가지만 샘플링으로 먹어봤다. 사과 설탕절임을 토핑으로 한, 팬에서 구은 푸아그라(거위간)를 냈다.

푸아그라. 대구에 흔할 것 같은데 실은 수요가 거의 없다. 일부 단골이 프랑스 등에서 푸아그라 음식을 맛봤다면서 한번 메뉴로 내놓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대구에는 없어 서울과 부산 라인을 움직여 구했다. 안심의 10분의 1 크기밖에 안된다. 지난 3월부터 내기 시작했다. 냉동 푸아그라는 팩을 제거한 뒤부터 2주일 내 사용해야 된다. 포트와인에 절인 사과를 올린 건 순전히 감각 때문. 푸아그라의 겉면이 카오야(중국 베이징덕)의 껍질처럼 파삭거린다. 조금 짭조름하면서도 20%는 달콤함이 묻어 있다. 너무 익어도 조직이 손상돼 안된다. 완전히 달아있는 팬에 올리고 10초내 양면에만 불기운 주고, 나머지는 잔열이 푸아그라의 속을 익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다음은 스테이크.

정말 덧칠을 하지 않아 꼭 여중생 ‘쌩얼’ 같다. 요리 교본에 따른 스테이크 요리인가. 탄수화물을 보충하기 위해 통감자 놓고, 올리브오일에 살짝 볶은 아스파라거스, 타원형으로 깎은 당근 등을 올리는데 그는 걸쭉한 데미글라스소스조차 붓지 않았다. 대신 표고버섯과 별사탕만하게 썬 토마토만 조금 올렸다. 고기용 씨겨자를 접시 가장 자리에 한 움큼 얹어뒀다.

“대구의 상당수 스테이크가 너무 화장이 짙은 것 같다. 소스가 너무 강하고 꾸밈 음식인 가니시도 너무 현란하고 많아 스테이크 본질의 맛을 가리고 있다. 그래서 돈가스 먹는지 스테이크 먹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재료의 본질만 살리고 여타 부재료는 극소화하자는 게 제1원칙. 고기가 좋다면 굳이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각오.

소스를 배제한 스테이크. 과연 기존 선배들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실 이 바닥에선 선배가 왕이고 신이다. 전수한 메뉴에 대해 그냥 답습을 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반문도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역 양식문화가 정체된 것 같다. 스테이크에 소스가 들어가건 들어가지 않건 그것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고, 다름의 문제이기 때문에 누가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 부야베스 대구에서 첫 선

마지막으로 시연을 보인 건 프랑스의 대표적 해물요리인 부야베스.

20만원짜리 프랑스제 무쇠로 만든 용기인 ‘르 쿠르제’는 열을 오래 머금고 있어 부야베스에 딱 어울린다. 들어가는 재료를 적어본다. 홍합·바지락·도미·새우·관자살·이집트콩인 칙피·페페론치노, 평균 4일 정도 걸려 우려낸 걸쭉한 스톡을 15분 남짓 끓여낸다. 육수에 노란색이 풍겨난다. 꽃수술만 따서 말린 샤프란 향신료를 넣었는데 이것도 가격이 워낙 비싸 원가만 생각하는 셰프는 쉽게 넣기 어렵다.

“제가 대구에서 처음으로 부야베스를 선보인 것 같다. 이제 몇 집 더 선보이는 곳이 보이는 것 같더라. 이 음식은 세계3대 수프로 유명하며, 프랑스 김치·된장찌개 정도로 보면 된다. 일명 ‘어부의 수프’란 별명도 갖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부야베스도 수프의 일종이니 스테이크 이전에 나오는데 그는 순서를 바꿔 스테이크 뒤에 배치시켰다. 반응이 더 좋았다. 부야베스에는 소금도 첨가하지 않는다. 해산물 특유의 짠맛만 있어도 충분하단다.

“우린 평범한 재료를 갖고 조금 특별한 메뉴로 만들고 싶어한다. 대다수 재료는 칠성시장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는 손님 한명 한명에게 직접 내오는 메뉴의 레시피와 먹는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 친절함이 호텔 매니저급이다. 매달 새로운 메뉴도 한두 개 개발한다. 항상 칼날 위에 선 기분으로 산단다.

풀코스 정식은 3만5천~5만5천원(부가세 10% 미포함). 대명9동 484-9 (010)8773-8699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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